지금부터 10년 전, 가족과 함께 태국에 여행갔던 적이 있다. 소위 말하는 패키지 관광이었고, 나이 많은 노인 5명을 포함해 일행은 15명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가이드는 30대 초반의 총각이었는데 성격이 싹싹하고 말벗이 돼주어 노인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하루는 이곳저곳 야외 관광을 마치고 돌아오는 미니버스 안에서 가이드가 은근히 노인들의 눈길을 의식하면서 약간 주저하는 말투로 오늘 밤 좀 야한 쇼가 있는데 함께 구경 가실 분은 미리 예약해달라고 했다. 한국에선 볼 수 없는 특별한 쇼라는 말에 노인들도 호기심이 발동한 나머지 대부분 한 번 보러가겠다고 신청했다.

쇼가 진행된 장소는 자그마한 계단식 공연장. 막상 가서 보니 다른 한국 관공객팀이 이미 좋은 자리를 대부분 차지하고 있어서 여기저기서 한국말이 왁자지껄하게 들려왔다. 시골의 해외관광 계모임에서 단체로 온 것 같은 30여 명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이었다. 어느 단체든 꼭 한 명은 있기 마련인 넉살 좋은 할아버지가 큰소리로 친구를 불렀다.

“이보게 김 영감, 제일 잘 보이는 앞자리로 와봐. 여기가 명당일세 그려.”

옆에 앉아 계신 할머니의 눈치를 좀 보더니 이내 김 영감님은 슬그머니 맨 앞자리로 내려갔다. 그런데 다른 곳에서는 불평이 터져 나왔다. 둘째 줄의 계단 좌석에 앉아있는 사람들이 영감님의 머리가 앞을 가려 잘 안 보인다고 야단이었다.

“워~매! 그래 알았소…. 그럼 이렇게 하면 잘 보이겠나?” 하면서 친구의 무릎에 기대 옆으로 반쯤 누웠다. 한바탕 소동으로 공연장은 웃음바다가 되어 분위기는 적당히 편안해지고 약간은 들뜨게 되었다. 필자는 중간쯤에 위치한 계단 좌석에 앉아서 공연을 보았는데 내용이 자못 파격적이었다. 무대에 태국인 남녀가 등장해 실제로 여러 가지 체위를 선보이며 성행위를 하는 것이었다. 예상치 못한 놀라운 공연이 이어지자 할아버지들은 한마디 말도 없이 출연자들에게 시선을 집중하였다. 하지만 할머니들은 달랐다.

아마도 이런 충격적인 장면을 조용히 보면서 여성 특유의 모성본능이 생겨났는지 모르겠다. 한 할머니가 혀를 끌끌 차면서 “훌떡 벗은 저 여자들이 불쌍하네. 거참 안됐구먼”이라고 말했다. 다른 두세 명의 할머니도 잠시 동조하는 말을 하더니만 이내 조용히 열심히 쇼를 구경했다.

그런데 나의 바로 뒷좌석에 앉은 할머니는 유독 계속 혀를 차면서 계속 “에이구, 에이구, 민망해라”를 되풀이했다. 뒤를 살짝 돌아다보니 할머니는 ‘에이구’ 를 마치 민요의 후렴구 같이 중얼거렸다.

앞사람의 머리 때문에 잘 안 보일 때마다 고개를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는 등 정신이 없더니만 그것조차 귀찮은지 이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주문처럼 ‘에이구’를 외면서도, 정신을 집중해서 여전히 고개를 돌려가며 보고 있는 할머니를 물끄러미 쳐다보면서 은근히 웃음이 나왔다.

호텔로 돌아와 침대에 누워 곰곰이 생각했다. 우리에게 성(性)이란 어떻게 인식되며, 성문화는 어떤 과정을 거쳐 현재의 모습이 되었는가. 우리의 삶에서 가식이란 무엇이며 당당하고 자연스럽다는 것은 뭘 의미하는가. 왜 우리는 삶의 가장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의 표현인 성을 진솔하게 바라보지 못하는가.

한국인들은 상대방이 성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드러내면 민망하다고 비난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뒤에서는 성을 매매하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이중성을 보이고 있다. 우리 성문화의 바람직한 방향은 뭘까. 상념으로 뒤척이며 방콕에서의 하룻밤을 보냈다.


이재형 미트라한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