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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희망을 함께 나눠요] '윌슨병' 최영호 씨네
남매 모두 발병 청천벽력 "희귀병 연구해주세요"
체내에 구리 축적돼 간·뇌 손상 일으켜
획기적 치료제 없이 기약없는 투병생활





간과 뇌에 중금속인 구리(Cu)가 과도하게 축적되어 간경화와 뇌손상 등을 일으키는 희귀병인 ‘윌슨병’은 국내 유전성 대사이상 질환 70여 종 중 발생 빈도가 가장 높은 병이다(한림대의료원 2006년 자료).

현재 국내 추정 환자 수는 대략 1,000여 명 정도. 15세 이전에는 주로 간질환이 나타나고, 15세 이후에는 신경 증상이 두드러진다. 조기에 발견하면 적절한 식이요법과 약물치료로 일상 생활 유지가 가능하겠지만, 심각한 간질환과 뇌손상을 초래한 경우 장애를 안고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

2002년 12월 설립된 ‘윌슨사랑회’ 최영호(40) 회장의 두 자녀는 윌슨병 환자들 중에서는 그래도 비교적 가벼운 축에 든다.

첫째 준영(11ㆍ초등학교 5학년) 군이 처음 윌슨병 증세를 보인 것은 5세 무렵. 감기를 달고 지내더니 치료를 받아도 병원에서 응급실 신세를 질 정도로 상태가 악화됐고, 얼굴에는 허옇게 버짐이 폈다.

그러나 뚜렷한 원인을 찾지 못하고 속을 태웠다. 그러던 중 병의 단서를 잡게 된 것은 우연히 간염 예방 접종을 위해 병원에 갔다가 간 수치가 높다는 결과를 받게 되면서부터. 종합병원으로 옮겨 5개월이란 검사 기간 끝에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윌슨병이란 진단을 받게 됐다.

혹시나 하여 둘째인 딸 아이(당시 만 2세)에게 검사를 해본 결과도 동일했다. “희귀병이라는 말에 더럭 겁이 났고, 한 아이도 아니고 둘씩이나 병에 걸렸다니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심정이었습니다.”

엄마는 이후 한 달여를 내리 울며 지냈다고 한다. 하지만 이제 최영호 회장 부부는 “그래도 우리는 천만다행인 경우”라고 위안을 삼는다. 증상이 구체적으로 나타나기 전에 조기 발견했기 때문이다.

구리가 많이 함유된 음식(버섯, 코코아, 간, 굴 등 어패류, 견과류, 초콜릿, 바나나, 감자 등)을 피하고, 몸에 축적된 구리를 체외로 배출시키는 약물(페니실라민)을 지속적으로 복용하면 증상이 급격하게 악화되는 건 피할 수 있는 상태다.

그래서 처음에 희귀병이라 하여 크게 놀란 마음은 진정됐지만, 최 회장 부부의 마음 언저리에 늘 슬픔이 가득한 건 어쩔 수 없다고 한다. 어머니는 특히 초콜릿을 유난히 좋아했던 아이들이 먹고 싶은 것을 참는 모습을 볼 때면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큰 아이가 일곱 살 때 유치원에서 생일잔치를 하는데 초콜릿 케이크가 나왔나 봐요. 자기 생일인데도 먹지 못하고 와서 울고불고 해서 속상했어요.”

병을 알게 된 후 6년이란 시간이 흐른 지금은 부부나 아이들 모두 ‘먹고 싶은 걸 참는 훈련’에 제법 단련이 됐다. 최 회장은 “요즘은 일부러 아이들 앞에서 초콜릿이나 초콜릿 아이스크림 등을 먹곤 한다”며 “어차피 학교 생활을 하면서 아이들과 어울리다 보면 남들이 초콜릿 등을 먹는 것을 보게 될 텐데 그런 상황에서 참는 힘을 길러줘야 한다”고 말했다.

사실 치료약도 없이 실낱 같은 희망이라도 잡기 위해 몸부림 치는 많은 희귀병 환자들을 생각하면 이쯤은 행복한 고민일 수 있지만, 지금은 증상이 가볍다고 해도 안심할 수는 없는 형편이다.

획기적인 치료제가 나오지 않는 한, 투병은 언제까지 이어져야 할지 모른다. 기약 없는 치료가 점점 환자와 환자 가족들을 지치게 하는 것이다. 더욱이 장기 투병으로 인한 후유증 염려도 크다.

최 회장은 “환우들을 상담하다 보면 장기적으로 약을 투약해온 경우 백혈구 수치가 떨어지는 경향이 보였다”며 “머리카락이 빠지고 코피가 나고 멍이 잘 드는 등 백혈병으로 발전할 소지를 보이는 것이 가장 겁이 난다”고 했다.

물론 최 회장 가족의 경우처럼 증세가 미미할 때 발견하지 못한 이들에게는 윌슨병은 더욱 치명적으로 나타난다.

전라도에 사는 김미숙(가명ㆍ19) 씨는 다소 병의 발견이 늦었던 윌슨병 환자다. 중학생 때 학교에서 실시한 피검사로 간 이상이라는 결과를 받게 됐고 이후 정밀 검사에서 윌슨병을 알게 됐다고 한다.

그래도 비교적 증상이 구체화되기 이전에 발견한 것이라 약으로 버티는 것이 가능할 거라고 예상했지만, 희망은 1년 후에 무너져 버렸다. 눈과 온몸에 황달이 끼었고, 급히 찾은 병원에서 그녀의 부모님은 의료진으로부터 의사에게 “힘들다”는 말을 들어야 했다. 간 이식만이 살 길이었다. 빠듯한 살림에 막대한 수술비가 커다란 장벽이었지만, 결국 아버지의 간을 받아 최악의 상황은 피할 수 있었다.

최 회장은 “김 씨의 언니 역시 10대에 병명도 모른 채 갑자기 쓰러져 세상을 떠났는데, 미숙 씨의 병을 그때만 발견했더라도 간 이식 수술까지 가는 것은 막을 수 있었을 텐데 안타깝다”고 했다.

최 회장에 따르면, 윌슨병은 크게 간에 손상이 오는 경우와 뇌에 손상이 오는 경우, 양쪽으로 모두 나타나는 경우 등 3가지로 나눠 볼 수 있는데 뇌손상은 그야말로 중한 상태가 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고교 2학년 때 운동하다가 갑자기 중심을 잃고 쓰러진 김 모 씨는 10년이 다 되어가도록 일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저 하루하루 기적을 바라고 있는 형편이다.

이토록 심각해질 때까지 자각 증상이 미미하다는 점이 윌슨병의 위협적 요인 중 하나. 건강하게 지내다 느닷없이 성인이 되어 병을 발견한 환자들 중에는 우울증을 앓는 이들도 많다. 게다가 신경 손상으로 인해 이상 행동을 보이는 것을 제대로 병명을 모른 채 가족들이 정신병원에 보내 병을 더욱 키우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렇듯 증상이 비교적 가볍든, 무겁든 희귀병 환자들의 소원은 단순히 현 상태의 유지 차원을 넘어서는 근본적인 치료제가 개발되는 것. 황우석 사태에 많은 희귀병 환자들이 울고 웃었던 것도 그러한 까닭이다.

이들은 하루 빨리 치료약이 개발될 수 있도록 희귀병에 대한 연구가 활성화되기만을 바라고 있다. 최 회장은 “7~8년 전 복잡한 검사절차가 없이도 피 한 방울로 윌슨병을 진단하는 키트를 연구한 젊고 유능한 의료진이 있었지만, 키트의 상용화를 위한 과정에서 정부의 지원이 전무해 의욕을 접고 미국으로 떠나고 말았다”며 국내 의료진이 희귀병 연구에 박차를 가할 수 있는 풍토 조성이 이루어지기를 절실히 바랐다.

◆ 원인 및 증상

구리 대사의 이상으로 주로 간과 뇌의 기저핵에 구리가 과다하게 축적된 유전질환으로 1912년 윌슨에 의해 간경화와 신경 증상의 가족력이 있는 환자가 보고되면서 처음으로 알려졌다. 전 세계적으로 3만~10만 명당 1명꼴로 발생되고 있으며, 보인자율은 90명 중 1명으로 비교적 흔한 유전 질환이다. 상염색체 열성으로 유전된다.

증상으로는 황달, 복부 팽만, 토혈, 복통의 증상을 보이고, 떨림이나 걷고 말하고 삼키는 데 어려움을 보인다. 악화되면 우울증, 공격성의 정신과적인 문제를 나타낸다. 여성의 경우 생리불순, 불임, 유산 등을 유발하기도 한다.

윌슨병 환자의 절반 정도는 간에만 손상을 받는데 간 장애가 나타나는 발병 연령은 보통 8~20세이며, 신경 증상은 주로 12세 이전에는 잘 나타나지 않는다.

◆ 진단 및 치료

진단은 혈청 내 ‘셀룰로프라스민’이란 효소 수치를 측정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원인불명의 급ㆍ만성 간질환, 신경장애, 급성 용혈, 정신장애, 행동장애 등이 나타날 경우 효소 수치 검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안과 검사, 간 생검 및 산전 유전자 분석에 의한 진단 등도 최근 시도되고 있다.

조기 치료 여부에 따라 회복률은 현저히 차이가 난다. 식이 요법과 약물 요법으로 체내에 축적된 구리를 규칙적으로 체외로 배출시켜야 하며, 간경화증이 진행된 후 발견되면 간 이식을 고려해야 한다.

치료를 꾸준히 하지 않으면 사망에 이르게 되며, 전격성 간부전을 가진 환자의 치사율은 70% 이상이다.



입력시간 : 2007/04/30 15:08




배현정 기자 hjb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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