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하고 힘겨운 '성장'과의 싸움 "아이 고통 나눌 수만 있다면…"작고 가녀린 몸음 '병 덩어리'… 성장호르몬 투여 절실비현실적 장애등급으로 의료비 혜택 없어 경제적 부담 엄청

사회과목 4점.

‘작은 천사’ 은정(13)이는 “언니한테 성적표 가져와서 자랑해라” 는 아빠의 농담에 기자 앞에 성적표를 활짝 펼쳐 보인다. 키 105cm, 몸무게 16.6kg. 열세 살이란 나이가 믿기지 않게 작고 여린 은정이는 생각 또한 순진무구한 유아 같았다. “국ㆍ수ㆍ사ㆍ과 모두 합해 100점이 안 돼요. 허허.”

지난주에는 근처 장애인복지관에 가서 ‘지능 및 심리’ 검사를 받았다. 결과는 나오지 않았지만, 아빠 조 씨는 “이해를 잘 못하는 것 같다. 아직도 ‘오늘이 왜 월요일이야’, ‘졸업이 무슨 뜻이야’ 식의 유아적 질문을 많이 한다”고 말했다.

1995년 9월, 추석 연휴에 은정이는 몸무게 1.66kg의 아주 작은 몸으로 세상에 나왔다. 두 달 동안 인큐베이터에 있었지만, 겨우 2kg을 채웠을 뿐이었다. 이후 아빠에게 지난 13년은 ‘성장’에 대한 지루하고 긴, 기다림의 세월이었다.

“생후 7개월 때 병원에서 아이가 더 이상 자라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어요. 그 전부터 애엄마의 자궁에 이상이 있던 터라 그로 인한 문제라고만 여겼죠.”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염색체 이상이 있을 수 있다”는 의사의 소견을 들었다. 그래도 아빠는 혹시나 했다. 아이를 만나고 싶었다. 조 씨는 “이미 7개월이나 자란 아이의 생명을 앗아간다는 것은 생각하기 싫었다. 하지만 딸 아이가 평생 고통당하며 살아야 할 것을 생각하면 그때의 결정이 현명한 것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고개를 떨궜다. 당시는 그처럼 심각할 줄 몰랐다고.

은정이는 두 돌이 넘어서도 혼자 앉아 있지 못하고, 세워놓으면 옆으로 피식 쓰러졌다. 먹지도 않고, 자라지도 않았다. 조 씨는 “움직이는 데 필요한 최소의 음식만 먹으려는 것 같다”고 했다.

도통 먹지를 않아 혈당이 떨어졌고, 급기야 경기를 일으켜 응급실 신세를 지곤 했다. 어쩌면 ‘인지력이 낮은 것도 경기로 인한 뇌 손상 때문이 아닐까’ 아빠는 생각한다.

게다가 ‘그 작은 몸에 어찌 그리 많이 병이 숨어 있을까’ 싶게 은정이의 몸 곳곳에는 이상 증세가 나타났다. 아이는 TV를 볼 때면, 아빠보다 두 배는 크게 볼륨을 높였다. 왼쪽 귀의 고막이 없었다.

시력도 나빴다. 하지만 “안 보인다”는 말을 하지 않아 학교에 들어가도록 몰랐다. 교정을 하고 수술을 해도 시력이 0.4 이상 나오지 않는다.

가장 가슴 아픈 건, 키와 몸무게. 1년에 고작 1cm, 500g 정도가 늘어날 뿐이다. 아빠는 “진작에 성장호르몬 치료를 했어야 했는데” 하며 가슴을 친다. “계속 클지 안 클지를 몰랐어요. 시간이 흐르면 클지 모른다고 기대를 걸었는데….” 다 커야 120cm라니, 아빠로선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태어나면서부터 병원을 전전했지만, 야속하게도 정확한 병명을 안 것은 겨우 지난해였다. 국내 환자가 338명(희귀난치성질환센터 자료, 2006년)이라는 희귀병 ‘러셀실버증후군’. 저신장증이 가장 주요한 특징으로 성장호르몬 필요가 절실하지만, 100% 전액 본인 부담(비급여 항목)이라 아빠의 어깨가 너무 무겁다.

“우리 아이의 경우 한 달 70~80만원어치를 투여해야 하는데 형편상 반의 반도 못 맞추고 있어 가슴 아프다”고 말했다.

아빠와 은정이의 투병을 더욱 힘들게 하는 건 싸늘한 주위의 시선이다. 다른 아이처럼 8세 때 학교에 입학시키려 했지만, 학교 측에서 거부했다. “너무 작다. 적응하지 못한다”는 이유였다.

그래서 2년을 더 기다려 입학했지만, 아이는 ‘왕따’당했다. 아빠가 은정이 손을 잡고 학교 앞을 지날 때면 뒤에서 애들의 수근거리는 소리가 뒤따라온다.

또래와 어울리지 못하고, 신체적으로 비슷한 수준의 유치원 아이들과 어울리는 은정이. 그런 딸을 바라보는 것이 아빠는 더 힘들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일반 아이들과의 격차는 더 벌어질 텐데. 계속 학교에 보낼 수 있을까 아빠는 깊은 한숨을 쉰다.

아빠는 요즘 보건복지부 등 유관기관을 찾아 다니며 장애 등급의 현실화를 요구하고 있다. 러셀실버증후군은 머리에서 발끝까지 갖가지 이상 증세를 보이지만, 현 장애등급에서는 무엇하나 제대로 적용받기가 어렵다.

지금으로선 유일하게 해당되는 것이 지체기능장애 중 변형 등의 장애. 왜소증의 증상이 뚜렷한 경우로, 20세 이상의 남성으로서 신장이 145cm인 사람, 18세 이상의 여성으로서 키 140cm 이하라면 ‘6급’ 판정을 받을 수 있다.

“성장 치료는 어린 시절 치료가 중요한데, 18세 넘어 장애 판정을 받을 수 있으면 어떡해요?” 아빠는 분통을 터트렸다. 더욱이 지원 혜택이 거의 없는 6급이라니. 개정을 간절히 기다린다.

“누가 자기 자식을 장애인으로 만들고 싶겠어요? 하지만 제가 떠나고 아이가 혼자되었을 땐 그것이라도 적용돼야 하지 않을까요.” 조 씨는 “근본적인 치료법이 없고, 그나마 효과적인 방법이 성장호르몬인데, 조금이라도 일반 아이에 가깝게 키우려는 부모의 애타는 심정을 왜 복지정책이 외면하는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

◆ 증상 및 원인

미국의 소아과 의사 헨리 실버가 1953년 소아학지에, 영국의 소아과 의사 알렉산더 러셀이 54년 왕립학회 의학회보지에 처음 보고하며 세상에 알려졌다.

자궁 내 성장 지연을 가지며 저신장을 보이고, 작고 세모형의 얼굴 모양, 안으로 굽은 다섯 번째 손가락 등을 특징으로 하는 유전 질환이다. 발병 원인이 정확히 규명되지 않았으며, 대부분 가족력이 없고 자연발생적으로 나타난다.

증상은 골격, 두개골, 척추, 피부, 근육, 신장, 생식기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나타나지만 개인에 따른 차이가 크다. 여성보다는 남성에게 더 심각하게 나타난다

영ㆍ유아나 어린이 환자의 65~80%에서 몸의 한 쪽 부분이 이상 발달하는 편측비대가 나타난다. 환자의 약 20%는 두 번째 발가락과 세 번째 발가락이 붙어있고, 엉덩이와 팔꿈치의 탈골이 드물게 나타난다.

여성의 경우 2차 성징이 일반인보다 일찍 나타날 수 있고, 남성은 생식기의 기형이 발견되기도 한다. 감세포암종, 고환암, 머리인두종 등 특정한 악성 종양이 생길 확률도 높다. 먹는 것에 관심이 없어 생후 10개월~3세 사이의 아기들은 저혈당증이 생길 수 있다.

◆ 진단 및 치료

근본적인 치료법은 없지만, 저신장을 위한 성장호르몬 요법, 식욕촉진제, 체중 증가를 위한 위루조성술, 정형외과적인 수술, 투약 등의 치료를 시행할 수 있다.

진단은 임상적 평가, 환자의 과거력, 신체 소견상의 특징 등을 근거로 내려진다. 산전 초음파 검사를 통해서 아기의 성장이 지연되고 있는지를 파악할 수도 있다.

잘 먹지 않으므로, 성장에 필요한 충분한 영양공급을 위해서 위관영양방법(튜브를 입이나 코로 삽입하여 위로 음식물을 직접 공급하는 방법)이나 고열량식이 사용된다. 성장호르몬을 사용하여 성장을 돕기도 하지만 일반인에 비해 키가 현저히 작다.

전문병원 정보 및 의료비 지원 사항

러셀-실버 증후군 ( Russell Silver Syndrome[RSS]/ 상병코드 Q87.1 )

전문병원

신촌세브란스병원 임상유전학과 서울시 서대문구 신촌동 134 (02) 2227-5920

충남대학교병원 소아과

대전광역시 중구 대사동 640 (042) 280-7240~1

순천향대학교 천안병원 소아과 충청남도 천안시 봉명동 23-20 (041) 570-2169

서울아산병원 의학유전학클리닉 서울 송파구 풍납2동 388-1

(02)3010-4701

현재 보건복지부에서 지원하는 ‘2007 희귀ㆍ난치성질환자 의료비지원사업 지침’에 의하면 지원대상 의료비를 ‘희귀ㆍ난치성질환 및 그 합병증으로 인한 진료의 급여비용(장기이식 및 한방진료 관련 의료비는 제외) 중 법정본인부담금’을 지원한다.

따라서 의료비 지원을 받으려면 희귀ㆍ난치성질환자로 등록해야 한다. 그러나 성장호르몬은 본인부담금 중 비급여 부분이라 지원이 되지 않는 실정이다(은정이 아버지의 경우 약 30만원 정도의 성장 호르몬을 투여하면, 몇 천원의 진료비만 돌려받는 형편이다).

비급여 대상이라 함은 ▲업무 또는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는 경우 ▲신체의 필수 기능 개선 목적이 아닌 경우 ▲질병ㆍ부상의 직접 진료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경우 등인데, 러셀-실버증후군의 경우 심각한 저신장으로 일상생활에 엄청나게 많은 지장이 초래되는 것이어서 이에 대한 적합한 검토가 요구된다.

자료 참조: 희귀난치성질환센터(http://helpline.cdc.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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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현정 기자 hjba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