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을 찾아 온 50대의 남자분이 있었습니다. 하루는 두꺼운 책 두께의 프린트물을 가지고 오셨습니다. 독일에서 유명하다는 한 의학자가 주장하는 만성간염의 어떤 치료법에 대한 인터넷자료를 모두 찾아 인쇄를 한 것이지요.

며칠을 두고 공부를 했는데, 그 치료법이 정말 효과가 있는지를 알고 싶어 했습니다. 본인은 확신이 잘 안 선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재미있었던 것은 그 분 자신은 이 자료에서 예기하는 만성간염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저도 한 나절의 조사를 한 끝에 아직은 추천할 만 하지 않다라는 해답을 드렸습니다만, 덧붙인 것은 그 질병을 연구하기 위해 쓴 시간과 노력을 휴식과 운동에 썼으면 더 건강해지셨을 것이라는 거였지요.

의학이 질병중심으로 발달하다 보니까, 독자들이 접할 수 있는 정보의 대부분이 질병의 진단과 치료에 관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정보들은 일차적으로는 의사들을 위한 것이고, 이차적으로는 그 질병을 가지고 있는 환자들을 위한 것입니다. 문제는 일반인들이 자신한테 그런 질병이 올 까봐 공부하고 연구할 때입니다.

첫째, 질병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건강에 대한 불안이 많습니다. 없는 병에 대한 불안은 오히려 그 병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지요. 둘째, 질병에 몰두하다 보면, 먼저 말씀 드린 남자분같이 건강을 위해 쓸 시간과 에너지가 남아 있지 않게 됩니다. 셋째, 질병을 아무리 많이 연구한다고 더 건강해지지는 않습니다. 잘 해 봐야, 이전의 정상 상태로 되돌릴 수 있을 뿐이지요.

제가 의과대학 때 배운 질병의 가짓수가 신체적, 정신적 질환을 모두 합치면 약 6,000가지쯤 되지 않는가 싶습니다. 이 각 질환들은 제 각각에 맞는 진단법이 있고, 또한 치료법이 있습니다. 즉, 각 질병에 맞는 처방이 따로 있다는 것이지요. 이 처방이 여러 개가 있을 때는 그 질병을 갖고 있는 각 개인에 다시 맞춰 선택하게 됩니다.

그런데, 건강은 어떨까요? 여러분은 자신의 건강을 질병같이 정확하게 진단받고 있습니까?

건강을 단지 질병 없음으로 알고 있지는 않습니까? 질병은 정확한 처방을 받으면서, 건강은 남 따라 하기를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독자들이 정기적으로 받는 건강진단은 엄밀하게 말하면 건강진단이 아니라 질병진단입니다.

검사방법도 질병이 있고 없음을 진단하지, 건강이 좋고 나쁨을 진단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건강진단은 질병이 없다고 판정되면, 거기서 끝나게 되고 더 이상의 건강하게 되는 법이 처방되지는 않는 것이 현 실정입니다. 질병이 과거에서 현재까지를 의미한다면, 건강은 현재에서 미래를 결정합니다.

이제, 한국은 남자 95세, 여자 100세까지 사는 것이 당연한 시대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질병이 있고 없음은 물론 중요하지만,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현재의 건강수준보다 더 건강해져야, 추가된 20-30년의 삶을 질병의 고통 없이 즐겁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이지요.

여기서 새로이 요구되는 것이 건강을 전문으로 하는 병원입니다. 기존의 병원을 질병중심 병원이라 한다면, 건강중심 병원은 각 개인의 건강상태를 정확히 진단하고, 그 상태에 따른 개별적 처방을 하게 됩니다. 기존에 알려진 금주, 금연, 운동, 스트레스조절 외에도 휴식 및 수면처방, 영양과 식습관, 필요한 예방 약물과 건강기능식품, 호르몬요법 등이 각 개인에 맞춰 처방되지요.

건강은 연구하면 할수록, 실천하면 할수록 더 건강해집니다. 또한 더 건강해지면 질수록 애초에 걱정했던 질병은 점점 멀어져만 갑니다. 여러분들은 질병은 연구하겠습니까, 아니면 건강을 연구하겠습니까?

■ 유태우 교수 약력

서울대병원 건강증진센터/원격진료센터 책임교수

MBC 라디오닥터스 진행

KBS 건강플러스‘유태우의 내몸을 바꿔라’진행

<저서> 유태우교수의 내몸개혁 6개월 프로젝트

가정의학 누구나 10kg 뺄 수 있다

내몸 사용설명서, 김영사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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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태우 tyoo@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