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문제나 가족문제로 진료실을 방문한 부인들의 많은 호소 중의 하나가 남편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잘 하면서 부인 자신이나 자기 가족들은 소홀히 한다는 점이다. 다른 사람들은 남편이 본가나 친구들의 일이나 직장에는 아주 열성적이고 또 친절하다며 칭찬을 한다. 또 부인에게는 그런 남편과 살고 있으니 얼마나 좋으냐고 부러워한다.

그러나 부인의 말을 들으면 이런 남편이 집에 와서는 피곤하다고 쉬려고만 하거나, 여가 시간은 자기 취미생활에만 빠져서 가족들과는 함께 지내는 일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부인도 남편이 피곤해서 그럴 것으로 이해하고 조금 쉬면 나아지겠지 하면서 기다렸지만, 남편의 집 안팎 태도가 다른 정도는 갈수록 심해져 간다. 더 이상 부부로 살아가는 의미가 없다고 느껴진다.

남편은 남편대로 집밖에서는 인정을 받지만 부인에게서는 잔소리만 들으니 점점 부인과는 거리를 두고 싶어져서, 일부러 귀가시간을 늦추기도 한다. 남편이 보기에 부인은 너무 자기중심적이고 사회생활을 이해하지 못한다.

친구나 직장동료와의 술자리가 좀 늦어지면 몇 분마다 전화를 해서 체면이 말이 아니다. 부인이 가족끼리 지내는 시간을 강조하면서 본가 식구들과는 만나기조차 꺼려하는 것이 못마땅하다. 결국 부부 모두 서로에게 실망하여 싸움 이 잦아지고, 나중에는 아예 말도 않고 지내게 된다.

이런 경우를 보면 부부가 살아가면서 서로 가까워지는 대신에 오히려 점점 더 멀어져 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단순히 두 사람의 관계만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두 사람의 성격적 특성에서도 반대의 경향이 강해진다. 남편이 사회생활을 강조할수록 부인은 가족관계를 주장한다. 부부가 각각 가족을 중요시하는 태도에 있어서도 부인이 핵가족단위를 강조할수록 남편은 대가족체계를 중시하는 입장을 취하게 된다.

본래 남성의 사고는 대외적, 집단적, 이성적 특징을 띤다. 반면에 여성의 감정은 가족적, 개인적, 정서적인 색채가 강하다. 이러한 남녀의 차이는 서로 상반되는 것이 아니라 상호 보완되어야 하는 것이다.

실제로 연애기간에는 자신과 다른 관점을 가지고 살고 있는 상대가 몹시 신선하게 보이고, 또 자신의 부족한 점을 보충시켜줄 것 같아서 서로 끌리게 된다. 그

러나 일단 결혼을 하게 되면 자신에게 익숙한 생활 대로 상대를 끌어들이려는 경향이 나타난다. 이렇게 되면 자신에게는 익숙하고 당연한 기대가 상대에게는 억지로 맞추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부부간에 마찰이 불가피해진다. 상대도 양보하기가 너무 어렵기 때문이다.

또 우리의 마음에는 의식과 반대되는 태도를 가지는 무의식이 있다.

그래서 자신의 심리 세계를 깨닫지 못하면 내면의 갈등이 부부 싸움으로 이어진다. 예를 들어 남편의 대외적인 주장이 강해질수록 그의 내면에는 자기도 모르게 정서적 취약성이 강해진다. 이런 남편은 밖에서는 대담하고 추진력 있는 사업가로 인정받지만, 집에서는 고집스럽고 변덕스러운 어린아이가 되어 부인이 애써 달래야만 겨우 닫혔던 말문이 열린다.

반면에 부인이 본래 장점으로 가지고 있던 정서적 형평을 잃게 되면 극도로 일방적인 주장에 빠지게 된다. 이렇게 된 부인은 남편이 아무리 설명을 하고 주변에서 원만한 타협을 제안해도 자신의 입장을 바꾸려 들지 않는다. 이제 부부싸움은 더 이상 ‘칼로 물 베기’가 아니라, 피차 물러설 곳 없는 ‘사생결단’의 상황이 되고 만다.

이런 상황에 빠진 부부들은 통상적인 권고와 의례적인 노력만으로는 해결책을 찾기가 어렵다. 적절한 심리적 치료를 통하여 자신과 상대의 심리를 함께 알아가야만 자신이 옳고 상대가 틀렸다는 이분법적 인식에서 벗어나 타협점을 찾을 수 있게 된다. 이런 점에서 성공적인 부부치료는 단순히 부부가 싸우지 않고 살아가는 것 이상의 치료적 효과를 가져온다.

박수룡 백상신경정신과 의원 부부치료클리닉 원장 www.npspecialist.co.kr

<저작권자 ⓒ 한국미디어네트워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