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위찬탈 후 동생 보복 두려움에 깎아지른 바위산에 궁전과 요새 만들어

한 방울의 눈물. 절묘한 물방울 무늬의 땅 스리랑카는 우리에겐 그저 슬픈 섬으로만 기억돼온 낯선 땅이다. 하지만 스리랑카는 아름답다.

마르코폴로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으로 극찬한 스리랑카를 아랍인들은 그 이전부터 ‘보석의 섬’으로 불러왔다. ‘신밧드의 모험’에서 신밧드가 보석을 찾아 떠난 섬 세렌디브(Serendib)가 스리랑카다.

스리랑카의 한가운데, 열대 밀림 안에 커다란 바위 하나가 우뚝 서있다. 장엄한 바위요새 ‘시기리야 록(Sigiriya Rock)’이다. 가파른 바위 정상에 왕궁의 유적이 남아있는 곳이다.

4세기경 스리랑카를 다스리던 다투세나 왕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다. 출신이 미천한 후처의 소생인 맏아들 카샤파와 왕족 출신 왕비가 낳은 목갈라나. 불안한 카샤파는 아버지를 감금하고 왕위를 찬탈했고 동생은 인도로 도망쳐야 했다.

카샤파에게는 그 때부터가 두려움의 시작이었다. 부친을 해한 후회와 동생의 보복에 대한 두려움은 광기로 빚어졌고 이 시기리야 깎아지른 바위 산에 궁전과 요새를 짓게 했다.

5- 케랄레의 피네왈라 코끼리 고아원
6- 시기리야 록의 프레스코화
7- 시기리야 록 정상의 카샤파왕이 앉던 화강암 권좌

바위의 원통 철제계단을 돌아 오르면 프레스코화를 만난다.

풍만하고 요염한 자태의 여인들이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듯 그려져 있다. 카샤파 왕 재임 이후 잊혀졌다가 영국의 식민지 시절 한 영국인이 하릴없이 망원경을 돌려대다 발견한 ‘1400여년을 잠잤던 미녀들’이다. 가슴을 드러낸 여인은 상류 계급, 옷을 입은 여인은 시녀들이란다.

미녀 벽화를 지나 조금 더 오르면 중간 마당인 ‘사자의 테라스’다. 사자 발 모양을 한 궁전 입구가 남아있다.

바위산의 꼭대기는 넓고 평평하다. 각종 건물과 연회장, 수영장 등의 흔적이 남아 과거를 노래하고 있다. 밀림을 내려다보는 자리에 카샤파 왕이 앉던 화강암 권좌가 옛모습 그대로 고독하게 놓여있다.

인도로 갔던 목갈라나 왕자는 마침내 군대를 이끌고 쳐들어왔고 전투에 진 카샤파는 단검으로 제 목을 찔러 고독한 최후를 맞았다고 한다. 목갈라나는 시기리야를 승려들에게 넘겨주고 원래 수도인 아누라다푸라로 옮겨갔다.

시기리야 인근의 자그마한 마을 담불라에는 150개의 부처상이 있는 스리랑카 최대의 석굴사원이 있다. 둔황에 비교하기엔 왜소하지만 사원에서 보는 풍경이 그만이다. 멀리 시기리야 록이 보이는 열대우림의 평원이 가슴을 시원하게 한다.

케갈레의 스리랑카 정부가 운영하는 ‘피네왈라 코끼리 고아원’도 관광객들이 빼놓지 않고 들리는 명소다. 버려진 코끼리를 보호하는 시설로 많은 코끼리를 가까이서 구경할 수 있는 곳이다. 목욕시간, 젖먹이는 시간에 맞춰 가면 아기 코끼리의 앙증맞은 모습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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