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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60년 지나도 변하지 않는 인기

"나를 위해 울지 마오 아르헨티나여!" 에바 페론
부에노스아이레스 시내 곳곳 추모 열기로 들떠
아르헨 국민들에게 영원한 '신화적 인물'
페르난데스 대통령도 "서민들의 수호자" 평가
  • 아르렌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서 한 행인이 새로 출간된 에바 페론 생애에 관한 책의 광고판을 유심히 살펴보고 있다. AFP=연합뉴스
아르헨티나 국민의 신화적 존재인 '에비타'의 사망 60주년을 맞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중심가 '7월 9일의 거리'에 에바 페론의 거대한 벽화가 들어섰다.

이는 단순히 과거를 기념하는 것을 넘어 아르헨티나에서 에비타가 여전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물이다.

아르헨티나 전 대통령 후안 페론의 부인인 에바 페론은 사망 후 60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아르헨티나 국민에게 정치, 사회적 아이콘으로 남아있다.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아르헨티나 대통령은 "에비타는 서민계급과 빈민층을 떠받치고 권력자에 맞서고자 큰 대가를 치렀다"며 "그는 우리에게 희생 없이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가르쳐주는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노동계층에는 열렬한 지지를 받았던 에비타는 후안 페론의 부인으로서의 존재를 뛰어넘어 '신화적 인물'로 거듭났다.

  • 에바 페론. AFP=연합뉴스
수십 년 사이 에비타는 영화와 뮤지컬의 주인공으로 재탄생했다. 페이 더너웨이나 마돈나 같은 유명 여배우들이 에비타 역을 맡아 열연했다.

에바 페론은 1919년 5월 7일 아르헨티나의 시골 마을에서 사생아로 태어나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이후 14세라는 어린 나이에 부에노스아이레스로 상경해 배우의 꿈을 이뤘다.

그는 강한 인성과 큰 야망을 바탕으로 이전까지 남성의 전유물이던 권력의 세계의 자신의 이름을 새겼다. 그는 빈민조직을 대변하고 여성 참정권을 얻어내기 위해 노력했다.

에비타는 1944년 1월 한 예술지원 모금행사에서 24세 연상의 육군대령이던 후안 페론을 만났다.

후안 페론은 군사정권 아래에서 부통령, 육군장관 겸 노동장관을 거치면서 노동자의 인기를 얻어 대통령에 당선된다.

이때부터 에비타는 전례 없는 영부인의 역할을 수행하기 시작한다. 특히 사회발전과 노동관련 업무를 열정적으로 추진해 서민층의 '우상'으로 떠올랐다.

에비타는 당시 "내가 여자로서 사랑을 표현하고 싶을 때, 노동자들을 위해 내 삶을 불태워 바치는 것보다 더 크고 순수한 표현 방법을 찾을 수가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반대 세력은 이러한 에비타의 언행이 아르헨티나의 분열을 조장한다고 비판했다. 또 그가 노동자의 권익 향상을 주장하면서도 한편으론 명품 드레스나 보석에 열광하는 사치스런 여자라는 비난도 끊이지 않았다.

그는 1950년대 초 자궁암에 걸려 2년 뒤 33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그의 장례식에는 아르헨티나 국민 수십만 명이 참석해 에비타의 대중적 인기를 실감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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