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이슈^중요부서에 대한 김정은의 ‘직선 지도’ 늘어... 정책변경도 잦아

남북관계 개선과 북핵이슈의 숨가쁜 전개 속에서 북한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이에 ‘박영자의 북한읽기’를 통해 북한사회의 다양한 모습을 분야별로 살펴보고, 변화의 양상을 짚어보는 자리를 마련한다. <편집자 주>

박영자 통일연구원 연구위원

당의 국가 지도 시스템 복원 흐름

한국의 국회에 해당하는 북한의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차 회의가 지난 4월 11일 개최되었다. 최고인민회의는 북한 헌법상 최고주권기관으로 입법권을 행사한다. 그리고 매년 회의를 통해 당해연도 예결산과 인사·조직을 포함한 국가사업을 결정한다. 그 이틀 전인 4월 9일에는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이하 당중앙위)’ 정치국 확대회의가 개최되었다. 그리고 최고인민회의 개최 하루 전인 4월 10일에는 당중앙위 제7기 제4차 전원회의가 소집되었다.

이러한 정치일정은 북한체제의 특징인 ‘당의 지도에 따른 국가 운영’을 드러낸다. ‘당-국가 일체화’ 체제인 북한의 특성상 북한의 정치와 체제 운영은 최고지도자를 정점으로 한 노동당에 의해 주도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고지도자가 변화되는 과정에서 당에 의한 국가지도 및 정책결정 양상은 달랐다. ‘제의서 정치’라 명명된 김정일 시대 정책결정 과정에서 당중앙위 회의는 거의 개최되지 않았다.

당 정치국 회의로 상징되는 공식 정책 협의체 및 결정기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이다. 이에 반해 김정은은 집권 후 주요 결정에 앞서 당 정치국 회의 및 당중앙위 전원회의를 개최하며, 정책결정 과정에서 당 회의 체계를 정상화시키려 했다. 그렇다면 김정은 시대 노동당은 북한의 국가 사업과 정책을 어떻게 지도하고 있는가? 김정일 시대와 비교하여 어떠한 지속성과 차이가 있는가?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지난 10일 당 중앙위원회 본부청사에서 열린 당 제7기 제4차 전원회의를 주재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1일 보도했다. 연합

‘수령독재’ 국가 지도하는 조선노동당

조선노동당은 북한 주민과 체제를 지도하고 운영하는 기관이다. 그 기능은 크게 세 가지이다. 첫째, 수령독재 체제를 유지 관리하는 기능이다. 둘째, 당원을 중심으로 북한주민의 생활과 사상을 지도, 관리, 통제하는 기능이다. 셋째, 국가 사업과 활동, 그리고 국가발전 방향을 제시할 뿐 아니라, 국가기구·군대·사회단체 등의 운영방향과 정책을 지도하는 기능이다.

2016년 개정한 북한 헌법 제11조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조선로동당의 령도 밑에 모든 활동을 진행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즉 당이 국가를 지도하는 체계이다. 2016년 5월 제7차 당대회를 통해 개정 발표한 당규약 ‘제7장 당과 인민정권’ 편을 보면 북한의 국가 정책이 당의 결정과 지도 하에 수행되고 있음이 명확히 드러난다.

즉, 최고지도자를 당위원장으로 두고 노동당이 지도하는 북한에서, 국가(인민정권)는 당과 인민대중을 연결시키는 인전대이며 당의 노선과 정책의 집행자이다. 따라서 국가기구(인민정권기관)는 당의 지도 하에 활동한다. 이러한 관계는 ‘당과 군의 관계’ 및 ‘당과 사회단체의 관계’에서도 동일하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지난 10일 당 중앙위원회 본부청사에서 열린 당 제7기 제4차 전원회의를 주재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1일 보도했다. 연합

김정일 시대 완성된 정책결정 체계

현재까지 김정일 시대와 김정은 시대의 정책결정과정에서 최고지도자와 노동당 주도의 정책입안 및 결정과정은 기본적으로 유사한 양상을 보인다. 왜냐하면 현재 노동당의 모든 체계가 김정일 시대 완성되었고, 그 시스템이 기본적으로 굴러가기 때문이다. 2017년 6월 19일 노동신문 1면 사설에서도, 53년 전인 1964년 6월 19일 김정일이 당중앙위원회 사업을 시작한 것은 “우리 당의 강화발전과 주체혁명 위업 수행에서 획기적 전환의 계기를 열어놓은 거대한 사변”이라며, 이를 계승하여 “김정은 동지의 유일적 영도체계를 더욱 철저히 확립하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김정은 정권은 매년 김정일이 당사업을 시작했다는 이날을 기념하고 있다. 이는 김정은 시대 북한정권도 정책결정과정에서 기본적으로 김정일 시대 당시스템을 고수하겠다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렇다면 김정일 시대 제도화된 정책결정과정의 주요 특징은 무엇인가? 첫째, 정책의제와 정책목표의 설정을 규제하는 기본 요인은 최고지도자의 의도와 노동당의 노선 및 방침이다. 북한 간부들이 각 분야 정책 담당자가 작성한 정책초안을 검토 및 심의함에 있어서도, 정책대안의 실효성과 적절성, 실현가능성을 평가하기 전에, 먼저 최고지도자의 의도와 방침에 맞는가? 노동당의 노선과 정책방향을 따르고 있는가? 체제보위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하는 것부터 신중히 따져보아야 한다.

둘째, 정책보고서 초안은 관련 분야 담당자가 스스로 주제를 선정할 수도 있고, 상부의 과제를 받아서 작성할 수도 있다. 또한 담당자가 단독으로 작성할 수도 있고 부서 내에서 혹은 연관부서와 공동으로 작성할 수도 있다. 하부의 초안 작성 단계에서는 정책토론이 이루어지는데 이를 일명 ‘참모회의’라 한다(군, 보안, 대남 기관에서는 ‘작전회의’라고도 한다). 해당 분야에서 중요하고 비중이 큰 정책의 경우 각 기관에서 정책 작성을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부서가 맡기도 한다.

셋째, 여타 관련 기관 간의 합의와 조율 과정을 거쳐 정책이 결정된다. 그런데 기관 간 이해대립이 심하여 조율이 되지 않을 경우에는 최고지도자가 결정한다. 특히 정책집행 단계에서는 가장 최근에 최고지도자가 사인한 결정에 따른다. 북한의 각 기관 내에서 합의를 거친 보고서는 필요한 경우 최종적으로 다른 기관들과의 합의를 보아야 한다. 원칙적으로 합의를 거치지 않거나 의견 조율이 되지 않은 사안은 최고지도자에게 보고할 수 없다.

때문에 최고지도자가 결재해야 하는 보고 문건의 끝 부분에는 반드시 ‘×××(기관이름)와 합의하였습니다’라는 문구를 명기한다. 정책 작성단계에서 이 같은 합의질서를 세운 이유는 특정 문제와 관련하여 혼선이 발생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이다. 한편 기관 간에 자율적으로 방침을 집행하는 방법은 최고지도자의 방침 날짜가 가장 늦게 결재(사인)된 것을 따르는 것이 원칙이다.

정책결정과정 혼선^갈등, 그리고 편법

그런데 북한의 현실정치에서는 정책결정과정에서부터 수많은 혼선과 기관 간 갈등이 발생한다. 북한당국이 “기관본위주의”라 칭하는 ‘기관 간 권력과 이권을 둘러싼 쟁투’ 양상이다. 이 같은 현상은 특히 김정일 시대의 경우 경제부문과 같이 김정일의 관심이 덜 미치거나 ‘대충 챙기는 분야’에서 자주 나타나곤 하였다.

이러한 혼선과 갈등 속에서 각 기관들은 최종 정책결정권자인 최고지도자의 방침을 번복할 수 있는 여러 가지 편법을 동원한다. 자신이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공식-비공식 네트워크를 동원하여 최고지도자를 자신의 편으로 만들기 위한 작업들이다.

모든 정책의 결정이 최고지도자 한 사람에게 집중되다 보니 정책결정과정에서 많은 혼선과 잡음이 발생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때문에 북한은 정책초안 단계에서의 합의를 매우 중시하였다. 그러나 초기단계에서부터 기관 간의 이견이 끝내 조율되지 않아 합의를 보지 못하는 사례가 증대하였다. 이럴 경우 최종적으로 최고지도자의 ‘심판’에 맡기는 일이 발생하곤 한다. 이때 대체로 보수적인 쪽이 승자가 된다. 이러한 경험을 학습한 정책 작성자들은 애당초 보고서를 만들 때 정치적 오해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 (본의 아니게) 보수적이고 강경한 경향을 보이지 않을 수 없다.

주요 사안 최고지도자의 직선 지도

한편 최고지도자가 관심을 갖는 주요 사안은 당내 기관 간 합의 없이 최고지도자와 담당 기관/책임자 간의 직접 보고 및 결정이 이루어진다. 대표적 사례가 북핵문제와 관련한 정책결정과정이다. 북한에서 핵정책에 관여하고 있는 공식기구들은 핵의 개발과 생산, 실험 등 기술적인 문제를 담당하고 있는 당 군수공업부와 원자력공업총국, 핵무기의 보관과 실전배치 및 운영을 담당하는 인민무력부와 노동당 작전부, 핵외교를 담당하고 있는 외무성 등을 꼽을 수 있다. 문제는 핵과 관련한 이들 각 분야 간에 어떠한 정책협의나 합의제도, 그리고 협력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즉, 핵 관련 정책과정은 각 기관이 상호 종속관계가 아닌 수평적 관계에서 각각 최고지도자에게 직속되어 있다. 따라서 각 기관은 최고지도자의 지시를 해당 분야에 하달하고 집행을 감독하는 기구로 기능한다. 핵정책과 관련한 이와 같은 수평적 협력관계의 부재는 최고지도자의 핵심 관심 사안에 두루 나타난다. 그러다 보니 북한의 정책결정과정에서 최고지도자의 직선 지도가 증대하는 양상이다.

김정은 시대 정책결정 특징

지난 7년 이상 김정은 시대 북한의 정책결정체계를 다양한 방향에서 살펴보면 김정일 시대와의 차이점이 드러난다. 김정은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서나 단위에 대한 ‘직선 지시’가 늘었고 정책 변경도 잦은 점이다. 이는 김정은 정권이 김정일 정권에 비해 신뢰할 만한 측근을 제대로 구성하지 못한 점과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고위직 간부들에 대한 ‘잦은 숙청’ 양상이나 잔인하게 공개처형하는 행보도 측근 구성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여전히 충성경쟁을 유도하며 자신의 측근 지배연합을 형성 중인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또한 김정일 시대 정책결정과 전체적으로 비교할 때, 정책결정 과정에서 세습된 3대 수령인 김정은의 욕구 및 신세대 욕망을 드러내는 개인심리적 특성이 크게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수령독재 체제인 북한의 정책결정 최종심급에는 최고지도자 김정은이 자리 잡고 있다. 김정은을 중심으로 북한의 정책결정과정을 분석한다는 것은, 국내외 환경에 대한 김정은 인식뿐 아니라, 그의 현 단계 욕구와 성격에 기초해야 한다.

3대 수령 김정은의 욕구와 성격

먼저 북한의 3대 수령 김정은의 욕구 측면이다. 첫째, 경제력과 핵무력을 모두 갖춘 발전국가의 최고지도자가 되고자하는 욕구이다. 둘째, 김일성과 김정일을 능가하는 권력 수행자가 되고 싶은 욕구이다. 셋째, 국내외 모두에서 북한의 최고지도자로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이다. 그동안 북한의 전략과 정책 방향을 보면 이와 같은 김정은의 ‘인정 욕구’가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다음으로 최고정책결정자인 김정은의 성격 측면이다. 국내외 정보기관 및 언론에서 성장기 김정은의 행적 등을 기반으로 분석한 각종 보고를 종합해 볼 때, 김정은의 성격 또는 기질적 특성은 승부욕, 과시욕, 대담성, 폭력성, 충동성, 조급함 등으로 요약된다. 그런데, 북한 수령독재 체제에서 승부욕 및 대담성은 전통적으로 수령에게 요구되는 덕목이다. 폭력성, 충동성, 조급함, 과시욕도 그 양가성을 고려하면, 리더에게 요구되는 강인함, 결단력, 판단력, 대중성으로 해석 가능하다. 현재 김정은의 정책이 보여주는 인민친화성과 도발적 호전성은 이 같은 그의 성격적 양가성과 연계된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 정권 공고화에 기여한 정책결정체계

전체적으로 현재까지 김정일에 이은 김정은 정권의 정책결정체계는 북한정권의 입장에서 보면 합리적 시스템이라 평가할 수 있다. 외부의 시각에서 보면, 북한의 당에 의한 국가지도, 수령과 체제 보위를 최우선시하는 정책 목표, 수령 직할통치와 측근정치 등에 기초한 정책결정 등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비합리적인’ 정책결정체계이다. 그러나 지난 7년간 북한의 정치를 평가해 보면, ‘김정은을 정점으로 한 노동당’ 주도 국가 정책결정 시스템이 김정은 정권의 안정화와 북한 체제 유지에 기여하였다. 따라서 북한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한 합리적인 정책결정방식이라 평가할 수 있다.

2004년 성균관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고, 숙명여대, 성균관대, 이화여대 등에서 강의를 하며 북한 체제를 연구했다. 현재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 연구위원으로 있으며 통일부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등의 자문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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