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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자의 ‘북한 읽기’] 김정은-시진핑 시대 고위급 인사교류를 통해 본 북·중 관계

혈맹에서 정상국가 관계로 전환중이지만 동북아긴장 고조되면 긴밀한 교류 불가피
남북관계 개선과 북핵이슈의 숨가쁜 전개 속에서 북한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이에 ‘박영자의 북한읽기’를 통해 북한사회의 다양한 모습을 분야별로 살펴보고, 변화의 양상을 짚어보는 자리를 마련한다. [편집자 주]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내외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내외가 지난 20일 평양에서 열린 방북 환영 만찬에서 환담하고 있다. 왼쪽부터 펑리 위안 여사, 시 주석, 김 위원장, 리설주 여사.
지난 6월 20~21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초청으로 시진핑 주석의 방북이 전격적으로 진행되었다. 금번 평양에서의 북·중 정상회담은 ‘미·중 무역전쟁의 고조’와 ‘북·미 비핵화 협상의 교착’, 그리고 ‘미국에 대항한 중·러 간 밀착’ 상황 등 복잡한 국제정세 속에서 이루어졌다. 양국의 공식 매체들에서는 ‘70년 북·중 역사의 전통적 친선과 협조’를 강조하였다. 그러나 그 내면에는 현 교착상황에서 미국을 상대로 한 두 국가의 실리주의 외교가 자리 잡고 있다. 그렇다면 21세기 북·중 관계는 어떠한 특징을 지니는가? 금번 회담결과뿐 아니라 향후를 전망하기 위해 그 역사적 맥락과 특징을 살펴보자.

김정은-시진핑 집권 후 ‘국가이익’ 중심 관계 변화 흐름

김정은 집권 후 중국이 북한을 대하는 태도는 과거와 달랐다. 특히 2013년 시진핑 집권 후 중국이 북한과의 관계를 ‘특수한 혈맹관계’로부터 ‘보통의 국가 간 관계’로 변화시키고 있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북·중 관계에 있어 김정일-후진타오 시대와 다른 김정은-시진핑 시대의 전략을 이해하려면 인물을 보아야 한다. 김정은과 시진핑은 신세대 최고지도자이다. 민족을 넘어선 국가주의 리더십이 강한 1984년생 김정은의 신세대 특징은 익히 알려져 있다. 시진핑 역시 소위 혈맹이라는 과거 북·중 관계 전통의 경험이 없는 태자당 출신이다.

이 세대들은 부모세대와는 확실한 차이가 있다. 김정은은 유년시절 어머니와 외롭게 지냈으며 해외거주 등으로 김일성과 김정일의 민족·통일 의식이 그리 높지 않다. 시진핑은 중국의 문화대혁명 시기(1966-1976년)에 아주 어린 나이였다. 이 세대는 당시 청년세대로 홍위병이 되었던 사람들과는 기본적 마인드가 많이 다르다. 북한과 중국에서 각 세대들은 혈맹관계에 대한 인식이 흐릿해져 있기에 ‘국가이익’에 방점을 찍을 수밖에 없다.

개혁 또는 체제전환 과정서 외교 양상

이러한 관계 변화 흐름은 1990년대 구(舊) 사회주의권의 체제전환 과정에서 세계적으로 나타난 현상이기도 하다. 공산당 통치에 기반한 사회주의권의 외교는 ‘당 vs 당’ 관계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반면 미국과 서구 주도 국제정치질서에 합류한 체제전환 국가들은 ‘당 vs 당 외교’로부터 ‘국가 vs 국가 외교’로 전환하는 흐름을 보였다. 그렇다면 공식적으론 여전히 사회주의체제를 고수하고 있는 북·중 관계는 어떠한가? 양국 역시 당으로부터 국가 중심으로 외교 양상이 변화되는 흐름이다. 또한 북한과 중국은 양 국가의 최고지도자 변화 시기에 따라 대중(對中)-대북(對北) 정책 및 교류에 일정한 차이를 보였다.

리더십 변화를 중심으로 21세기 북·중 관계를 시기별로 구분해 보면 세 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1시기 김정일-후진타오 시대(2003-2008년), 2시기 양국 정권 교체기(2009-2012년), 3시기 김정은-시진핑 시대(2013-2019년 6월 현재)이다. 2013년 이후를 ‘김정은-시진핑 시대’로 구분한 이유는 두 가지이다. 북한 요인으론 김정일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2012년 김정은이 법제도적 최고지도자 입지를 형성하기 위해 내치에 집중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2013년 2월 3차 북핵실험을 기점으로 대외·대남 긴장조성을 전면화하며 정권 안정화를 본격화하였다. 중국의 경우 2013년 3월 후진타오보다 강력한 권력을 가진 시진핑이 국가주석으로 임명되었다. 각 시기별 특징을 살펴보자.

김정일-후진타오 시대(2003-2008년)

양국의 리더십이 대내적으로 개혁과 반동(反動) 정책을 오가며, 국제무대에서의 협상 전략을 본격적으로 수행하던 시기이다. 따라서 양국 간의 관계는 ‘혈맹과 견제’라는 전통적 이중 전략 실행으로 압축할 수 있다. 북한의 김정일은 경제사회적으로 부분 개혁정책을 실시하며 경제발전 및 제도변화 관련 다양한 실험을 하던 시기이다. 또한 중국의 개혁·개방에 대한 정책적 관심이 높았던 시기이다. 정치외교적으로는 한반도 평화 및 북한체제 보장 장치가 갖추어지면 핵 포기가 가능하다는 메시지를 국제사회에 전달하며 해외의 대북지원을 유도하던 시기이다.

한편 2003년 3월 중국 국가주석에 취임한 후진타오는 대내적으로 경제발전 정책 고도화를 추진하면서 대외적으로 ‘화평굴기(Peaceful Rise)’라는 외교정책으로 주변국과의 평화적 외교노선을 펼쳤다. 그러나 중국 내부적으로 후진타오의 리더십은 현재 중국 최고지도자인 시진핑의 리더십에 비해 권력 및 영향력이 약하였다. 따라서 북한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기존의 전통적 방식에 따라 안정적인 관계를 추구하였다. 또한 대외적으로 리더십 성과를 내기 위해 6자회담을 중심으로 동북아지역 내 다양한 외교 행보를 보인 시기이다.

양국 정권 교체기(2009-2012년)

2011년 말 김정일 사망 전후 북한의 후계자 김정은의 부상과 집권, 그리고 중국의 차기 지도자 시진핑의 부상으로 상징되는 시기이다. 이미 2008년 김정일 와병 전후 김정은으로의 후계자수업이 진행되고, 중국 또한 2008년 부주석으로 선출된 시진핑이 차기 주석으로 유력하게 대두된 시기이다. 2008년 6월 중국에서 부주석으로 취임한 시진핑이 첫 해외순방 시 북한을 방문하였다. 그리고 2008년 8월 중순 김정일이 뇌졸중으로 쓰러진 후 11월 공식 석상에 다시 모습을 드러내었다. 시진핑의 북한 방문 및 김정일이 병상에서 통치현장으로 복귀한 이후, 북·중 관계를 주도하는 리더십의 변화가 온다.

그리고 2011년 말 김정일의 예상보다 빠른 사망으로, 2012년 새롭게 집권한 김정은은 체제를 정비하고 자신의 유일권력을 세우기 위한, 각종 제도 정비(노동당 제4차 당대표자회의 개최 등) 및 ‘측근 교체 사업’을 시작한다. 시진핑 또한 2012년 말 차기 중국의 주석으로 공식화된다. 따라서 2009년~2012년은 북·중 양국 모두 정권 교체를 준비한 정권 교체기라 명명할 수 있다. 이와 함께 후진타오 및 김정일 모두 안정적인 후계체제로의 이행을 위한 사업에 매진한 시기이다.

김정은-시진핑 시대(2013-2019년 6월 현재)

2013년을 기점으로 한 김정은-시진핑 시기 동북아를 둘러싼 리더십 전환이 이루어지며 집권 약 5년 간 각 국은 내치에 힘을 쏟았다. 이어 2016년 1월과 9월 북한의 4~5차 핵실험 및 미사일 실험이 연이어 이루어지며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본격화된다. 또한 국제사회에서 김정은을 정상적 국가 통치자로 인정하지 않는 흐름이 전개되었다. 그 과정에서 극단적 치킨 게임에 돌입한 김정은의 북한과 트럼프의 미국 간 기싸움과 함께 2017년 9월 3일 6차 북핵실험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미국은 중국에게 미·중 경제통상 관계를 무기로 북한과 관계를 끊으라고 압박하며, 중국 경제를 옥죄는 세컨더리 보이콧을 부분적으로 실행한다. 또한 중국의 신세대 엘리트들은 김정은의 북한을 이해하지 못하며 더 이상 혈맹관계를 원하지 않는 흐름이 드러났다. 더욱이 북·중 경제협력을 주도하던 장성택 처형 및 그 세력의 숙청으로 이전 시대까지 활발히 전개되던 북·중 경협 관련 인사교류 역시 급격한 축소 양상을 보인다. 그러다가 2018년 북·미 간 비핵화-평화체제 협상이 전면화되며 북·중 간 4차례에 걸친 정상회담이 진행되었다. 이는 국가주의적 실리외교 성격이 강했다.

북·중 간 갈등이 지속되고 있음에도 중화주의에 기반한 ‘중국의 꿈’을 실현하려는 시진핑에게 북한은 여전히 필요한 이웃이다. 또한 시진핑은 북한체제의 불안정으로 북·중 접경 지역의 대규모 혼란이 초래되거나, 이로 인해 중국 영토가 불안해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나아가 북한체제가 존재하지 않으면 중국은 미국중심의 한·미·일 동맹 체제와 직접적으로 맞서야 한다. 이로 인한 중국의 비용은 북한을 지원하는 것보다 훨씬 크다.

더불어 아직 중국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한·미·일 동맹 구조에 맞설 역량을 구축하지 못한 상태이다. 또한 집단지도체제이고 당 원로들이 여전히 북·중 간 혈맹 의식을 가지고 있는 상황이다. 신세대 엘리트 세력들의 단합된 결의가 없는 한 전통적 북·중 관계를 시진핑이 나서서 훼손하는 것은 중국의 국가이익에 반하는 행동이다. 따라서 시진핑은 국가이익을 지키며 북한을 관리하거나 활용할 방안을 모색한다.

김정은-시진핑 시대 고위급 인사교류 양상과 특징

이 시기 북·중 간 고위급 인사 교류의 주요 양상을 살펴보자. 첫째, 2013년 2월 3차 북핵실험 이후 2016년 1월 및 9월에 4차?5차 북핵실험과 함께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이 고도화되면서 양국의 동북아 정세 관리 차원의 정치외교 분야 인사교류가 증대하였다. 둘째, 중국 시진핑 정권에 의한 김정은 정권의 외교 정책 탐색이다. 셋째, 2013년 상반기 급고조된 대외 도발 이후 최룡해 등을 특사로 한 김정은 정권의 대중국 행보 탐색이다. 새롭게 최고통치자가 된 양국 정상들의 심중을 확인하기 위한 외교 분야 인사 교류가 돋보인다. 넷째, 2016년 북한의 7차 당대회 및 2017년 중국의 공산당전국대표대회를 전후로 한 양국의 전략 확인 등과 관련된 인사 교류이다. 다섯째, 2018년 북·미 간 비핵화 협상 과정에서 북·중 간 4차례에 걸친 정상회담 외 다양한 고위급 교류가 진행되었다.

이 시기 북·중 인사교류에서 중요한 특징은 세 가지이다. 첫째, 북핵실험으로 인한 북·중 관계 경색에도 불구하고 정치외교 분야의 고위급 교류가 ‘김정일-후진타오 시대’ 및 ‘양국 정권 교체기’에 비해서도 증대하였다. 둘째, 장성택 세력 숙청 및 대북제재 확산 등으로 경제교류는 급격히 축소되었다. 셋째, 접경지역을 중심으로 한 사회문화 인사교류는 지속성을 보인다. 이러한 특징은 북·중 관계가 혈맹관계에서 정상국가 관계로 변화하고 있음에도, 동북아 긴장이 고조되면 될수록 여전히 이웃국으로서 양국 고위급들이 나서서 다양한 국내외 사안을 교류해야 하는 현실을 반영한다. 접경국 간의 국가이익은 상호 작용하기 때문이다.

● 박영자 통일연구원 연구위원

2004년 성균관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고, 숙명여대, 성균관대, 이화여대 등에서 강의를 하며 북한 체제를 연구했다. 현재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 연구위원으로 있으며 통일부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등의 자문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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