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영·캐나다·호주 이어…중국은 대응 위해 아시아·아프리카서 활로 추진

중국 정부로부터 폐쇄를 요구받은 쓰촨성 청두의 미국 총영사관 정문 앞에서 경찰이 삼엄한 경비를 펼치는 가운데 이삿짐 차 한 대가 영사관 안에서 대기하고 있다. (사진 연합)
[주간한국 송철호 기자] G2라 불리는 미국과 중국의 갈등은 냉전 시대를 방불케 한다. 수년전부터 심화되더니 코로나19가 전 세계로 확산되면서, 특히 미국을 초토화시키면서 두 국가 간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문제는 미국과 중국에서 시작된 G2 갈등이 점차 전 지구적 갈등으로 몸집을 키우고 있다는 것. 게다가 중국의 홍콩 범죄인 인도조약을 명분으로 영국과 호주, 이제는 뉴질랜드까지 ‘반중연대’에 동참하고 나섰다. 중국은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활로를 찾고 있어 미국과 동맹 관계를 확고히 해야 하는 한국은 상당히 곤란한 상황에 처했다. 과연 이 갈등은 어떤 양상을 보이게 될지, 그 사이에서 한국은 외교적 묘수를 찾을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美-中 군사적 긴장감까지

뉴질랜드가 지난주 결국 홍콩과 범죄인 인도조약 중단을 선언했다. 캐나다를 시작으로 미국과 영국, 호주에 이어 벌써 다섯 번째다. 뉴질랜드는 홍콩 보안법 강행에 따른 변화로 기존 범죄인 인도 조약을 이행할 수 없음이 명백해졌다는 입장이다. 홍콩 보안법으로 홍콩 사법체계의 독립성을 신뢰할 수 없게 됐다는 것.

심지어 반중연대로 불리는 이들 나라는 홍콩으로의 민·군 이중용도 기술 수출도 규제하기로 했는데, 상호 첩보 동맹을 맺고 있는 ‘파이브 아이즈’가 중국에 대한 총공세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파이브 아이즈는 미국을 중심으로 영국과 캐나다, 호주, 이번에 홍콩과 범죄인 인도조약 중단을 선언한 뉴질랜드가 속해 있다.

미국은 영유권 분쟁이 발생하고 있는 남중국해에 정찰기를 지난달에만 50차례 이상 띄웠고 영사관 폐쇄라는 강수까지 들고 나왔다. 미국과 중국 중심으로 군사적 긴장감까지 감돌고 있는 상황이다. 당연히 중국은 대중 적대 정책을 주도하는 미국에 주변국들이 동참하는 것은 한마디로 내정간섭이라는 입장을 보이면서 노골적인 불만을 지속적으로 표출하고 있다.

왕이 중국 외교 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현재 미중 관계가 국제 사회의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며 “근본 원인은 미국 내 일부 정치 세력이 정치적 고려와 패권 유지를 위해 중국을 전방위로 억압하고 핵심 이익을 건들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미국은 현재 국제 질서의 가장 큰 파괴자가 돼 역사 흐름과 국제 사회 반대편에 서 있다”며 “좌충우돌하고 무지막지한 미국에 대해 중국은 단호하고도 이성적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현재 중국은 미국과 반중연대에 대응하기 위해 아시아와 아프리카 등 개발도상국을 중심으로 경제협력과 코로나19 방역 지원 등을 약속하며 우군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외교 전문가들은 동아시아에서 중국과의 관계를 무시할 수 없는 한국과 일본의 입장에서도 이 상황이 위기이자 기회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김한권 국립외교원 교수는 “미중 간 전략적 경쟁이 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며 더 치열해지고 있다”며 “한국에 대한 선택의 압박도 커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미중 사이에서 피할 수 없는 현안에는 빠르고 명확하게 입장을 정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나

미국과 중국은 양국 주재 영사관 폐쇄를 비롯해 미국의 중국 화웨이 제품 배제, 5세대 이동통신(5G) 네트워크 이용 갈등, 미국 반중 경제블록 경제번영네트워크(EPN) 구상, 중국의 홍콩 국가보안법 제정 문제 등 정치, 경제, 외교 등 전 분야에서 갈등이 확산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 통신장비업체 화웨이의 5세대 이동통신 장비를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삼성전자에 반사이익을 누릴 기회를 제공한다는 미국 현지 보도가 나와 주목을 받았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미중 갈등으로 인해 5G 통신장비 분야 세계 4위인 삼성에 이 분야 세계 시장 진출을 확대할 커다란 기회를 주고 있다”며 “기존 스마트폰과 TV 판매 부진에 시달리는 삼성이 통신장비 부문에 수십억 달러를 투자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실제 삼성의 5G 시장 점유율은 13%로 화웨이, 에릭슨, 노키아에 이어 4위인데, 화웨이가 미국을 비롯해 유럽에서도 배제된다면 중국은 또 에릭슨과 노키아에 보복을 할 수 있어 삼성 입장에서는 반사이익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다는 것.

물론 삼성이 글로벌 통신 인프라 시장에서 비중을 높이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통신사들은 장비 교체에 따른 비용 문제 때문에 커다란 문제가 발생하거나 정부가 개입하지 않는 한 기존 사업자를 잘 바꾸지 않는다는 점도 장애물로 작용할 수 있다.

특히 한국 정부가 미국과 중국 갈등 속에서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기업들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지난주 미중 갈등 대응 원칙으로 ‘안보에서는 한미 동맹·역내 안정성 강화’, ‘경제통상에서는 공정·호혜와 개방·포용’을 제시했다.

강 장관은 제3차 외교전략조정회의 본회의에서 “변화의 추세 속에서 때로는 서로 상반되는 다양한 요소들을 조화시키면서 우리 중심을 잡는 게 관건”이라며 안보·경제통상·과학기술·가치규범 등 네 개 분야 정부 지향점을 밝혔다.

이어 “안보 분야에서는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안정의 주춧돌인 한미 동맹을 굳건히 다져나가면서 역내 안정성이 강화되도록 우리의 건설적 역할을 확대해 나가야 한다”며 “경제통상 분야에서는 공정하고 호혜적인 동시에 개방적이고 포용적인 방향으로 규범 기반 접근을 강화해 나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안보에서는 미국과 안정성을 강화하고 경제통상에서는 미국의 반중국 경제블록인 경제번영네트워크 등에 섣불리 참여하는 것을 경계하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너무 당연한 전략이지만 그동안 현 정부가 다소 친중 노선을 유지하고 있었고 주한미군 감축 등 미국과 안보상 갈등까지 발생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대응하기 쉬운 상황은 아니다.

김건 외교부 차관보는 “EPN 구상은 아직까지 구체적인 내용이 나오지 않았다”며 “화웨이 문제 역시 5G 기술 보안과 기업 자율성 간 균형을 찾는 방향으로 한미 간 여러 협의가 있어왔다”고 설명하면서 구체적 대응 방안은 좀 더 상황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정부 입장을 전했다.



송철호 기자 song@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