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역 실패에 지병 악화…“후임자 정해질 때까지 현직 유지”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결국 사퇴했다. (사진 연합)
[주간한국 송철호 기자] 지난 24일 최장수 재임 기록을 세운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결국 사퇴했다. 아베 총리는 연속 재임일수 2799일(약 7년 8개월)을 달성하면서 외종조부인 사토 에이사쿠 전 총리가 가지고 있던 최장 재임 기록 2798일을 넘어섰지만 그를 바라보는 일본 내 여론은 이미 긍정적이지 못했다.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아베 정권의 연이은 실책으로 인해 일본 국민들 불만이 증폭된 데다 일본 2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전 분기보다 7.8% 하락했고 연율 환산치도 27.8% 하락하는 등 최악의 역성장을 보였기 때문이다. 거기에 지병 악화는 자칫 국정 차질을 빚을 수 있기에 아베 총리 퇴진에 결정타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아베, 코로나 방역 실패

코로나19라는 깊은 늪에 빠진 일본 경제는 아베 총리가 사퇴를 결정하기까지 이미 심상치 않았다. 2분기 GDP가 3분기 연속 감소세를 기록하고 성장률도 폭락하는 등 통계 비교 가능한 1955년 이후 최악의 역성장이라는 평가와 함께 이미 일본 내에서는 아베 총리가 취임한 2012년 말 이전 수준으로 일본 경제가 후퇴했다는 말이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었다.

2분기 성장률에는 일본 정부가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외출과 여행 등 대외활동을 억제한 영향이 컸다. 지난 4월 7일 도쿄와 오사카 등에 선포된 1차 긴급사태는 점차 전국으로 확대됐고 두 달 가까이 지속되다 모두 해제된 바 있다.

세부적으로는 GDP 기여도가 가장 큰 개인 소비가 전 분기 대비 8.2% 급감했고 기업 설비 투자도 1.5% 감소해 2분기 만에 마이너스 성장세로 돌아섰다. 수출은 자동차 등을 중심으로 18.5% 줄었고 수입은 원유 수요 둔화로 0.5% 감소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전 세계 경제가 위축된 상황이지만 일본은 정도가 심한 편에 속한다.

게다가 아베 총리는 건강 상태까지 도마에 올랐다. 아베 총리의 ‘건강이상설’이 꾸준히 제기되는 가운데 만성 궤양성 대장염을 앓았던 아베 총리가 예정에 없던 병원 검진을 받아 건강이상설이 더 거세지기도 했다. 아베 총리의 자민당 총재로서 임기는 내년 9월 말까지였다. 하지만 코로나19 대응 실패부터 경제 역성장, 지병 악화까지 아베 총리의 조기 퇴진은 예견된 수순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경제·외교 정책 모두 뚜렷한 성과 없어

아베 총리는 2010년대 초 ‘아베노믹스’라는 이름으로 각종 확대 재정정책을 추진했고 여기에 일본중앙은행 역시 양적완화와 함께 질적완화라는 정책까지 구사한 바 있다. 이 과정에서 일본 정부는 지출을 지속적으로 늘리고 각종 정부사업을 실시했고 일본중앙은행은 엔화 가치를 낮춰 수출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엔화를 과감하게 풀었다. 당시 일본은 자국 주식까지 매입하는 등 상당히 공격적인 경제 정책을 추진했던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 초기에는 단기적 효과가 나타났지만 결과적으로 일본 경기 진작에 성공했다는 평가는 받지 못하고 있다. 일본은 오래 전부터 무리한 확대 재정정책으로 이미 국가부채가 엄청나게 늘어나 있는 상황에서 아베 총리의 아베노믹스 정책은 그 부담을 더욱 키웠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나마 아베 총리의 친미 외교는 성공을 거두는 듯했다. 일본 역대로 봐도 이 정도로 미국과 일본 지도자가 친밀함을 보여주는 경우가 흔하지 않았고 실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아베 총리는 수많은 골프회동을 비롯해 다양한 정상급 모임에서 친분을 과시했다. 하지만 일본의 대미 외교라는 큰 틀을 봤을 때는 뚜렷한 성과를 찾기가 쉽지 않다.

우선 미국과 일본이 주축이 됐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탈퇴를 했고 지난해 열렸던 G7 정상회의에서는 미국산 농산물 수입을 확대하라는 압박도 받는 등 양국 정상 친밀도와는 별개의 미일 외교가 진행되고 있다. 물론 기본적인 미일 정상 간 친밀도로 인해 결정적일 때 도움을 받을 수도 있지만 국익이 걸린 문제에 있어서는 미국이 일본에게 특별히 양보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악화된 한일 관계 개선될까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우리 정부는 언제든지 일본 정부와 마주 앉을 준비가 돼 있다”며 최악의 경색국면을 보이고 있는 한일관계 개선 의지를 밝힌 바 있다. 물론 한국과 일본의 갈등이 시작됐던 대법원 징용판결을 언급하며 일본의 태도변화를 촉구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지난해 광복절 일본 수출규제에 대해 경고성 메시지를 전했던 것에 비하면 상당히 부드러워진 입장을 전한 것.

일본 입장은 크게 바뀌지 않고 있다. 일본 정부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주요 7개국(G7) 확대 개편 구상(한국 포함)에 반대하면서 한국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는 정황도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현재 양국 갈등이 최악인 상황에서 일본 정부는 G7 확대 개편에 반대하는 정당성을 문재인 정부의 중국·북한 외교가 G7 입장과 동떨어져 있다는 것에서 찾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아베 총리의 사퇴로 경색된 한일 관계에 변화가 생길지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일본 전문가들은 아베 총리 사퇴가 곧바로 양국 관계에 큰 변화를 가져올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보고 있다. 징용판결 문제 등 난제가 여전하고 한국과 일본 간 국민감정은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고 있어 기대할 수 있는 건 양국 관계가 개선 방향으로 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는 정도라고 전망하고 있다.

국내 외교 전문가들도 대체로 “최근 악화된 한일 관계를 감안하면 아베 총리 사퇴로 일본 정부가 양국 간 최대 쟁점인 강제징용 문제에서 입장을 바꿀 가능성은 없다”며 “한일 관계 진전을 당분간 기대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송철호 기자 song@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