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00만 명이 선택한 조 바이든. (사진 연합)
[주간한국 송철호 기자] 조 바이든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당선됐다. 하지만 여전히 개표를 둘러싼 치열한 법정공방, 그리고 선거 기간 나타났던 양쪽 지지자 간 물리적 충돌 등 미국 내 갈등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향후 미국 대통령은 근본적으로 분열된 국가를 어떻게 통합하느냐가 중요한 선결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은 강력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당선 확정 전 이미 도널드 트럼프가 탈퇴한 파리기후협약에 복귀하겠다고 선언하거나 인수위원회 홈페이지를 조기에 신설하는 등의 공격적인 행보를 보이는 것은 일단 트럼프 대통령의 불복 움직임에 쐐기를 박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풀이된다.

개표 끝까지 박빙 승부

이번 대선은 추격전과 대역전극이 쏟아지면서 피말리는 대선 레이스가 진행됐다. 특히 경합주에서는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박빙 승부가 펼쳐져 마치 스포츠를 관전하는 기분까지 들 정도였다.

지난 5일(현지 시각) 16명 선거인단이 걸려 있는 조지아의 경우 막판 99% 개표가 진행된 시점에 두 후보 득표율이 49.4% 동률을 기록해 미국인은 물론 세계인의 이목이 집중되기도 했다. 더군다나 개표율 99% 상황에서 이유도 밝히지 않고 갑자기 개표가 중단되는 촌극도 발생했다.

러스트벨트 경합주 중 유일하게 끝까지 남아있던 펜실베이니아도 큰 주목을 받았다. 이곳은 20명 선거인단이 걸린 지역으로 이 지역에서 바이든 당선인이 승리하게 되면 ‘매직넘버 270명’을 단번에 넘어서며 승리를 할 수 있는 지역이었다. 또 11명 선거인단이 걸린 애리조나는 2016년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승리한 지역으로 당시 이 지역을 경합주로 분류한 현지 언론도 있었지만 이미 바이든 당선인 승리로 예측하는 언론도 있어 바이든 당선인 승리 가능성이 일찌감치 점쳐지기도 했다.

바이든 당선인이 승리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소송을 제기하거나 재검표를 요구하는 등 곧바로 승복하지 않고 있어 당선인 최종 확정까지 시간이 걸릴 수 있다. 패색이 짙어진 트럼프 대통령 측이 이미 일부 주에 대해 소송을 냈지만 잇따라 기각됐다.

현지 법률 전문가들은 소송을 통해 결과가 바뀔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입을 모은다. 실제로 트럼프 대선 캠프가 지난주 미시간과 조지아에서 개표 과정 문제를 이유로 제기한 소송을 각 주 1심 법원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또 트럼프 캠프가 조지아 채텀카운티 선거관리위원회를 상대로 낸 소송 1심도 기각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주 법원 1심 판결에 불복할 경우 주 고등법원, 대법원에 각각 항소, 상고할 수 있다. 주 대법원 판결이 연방 법률에 근거하지 않는다고 판단될 때는 연방 대법원에 상고할 수도 있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선거 관련 소송을 연방 대법원까지 끌고 갈 계획임을 거듭 밝히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선거가 조작되고 있기 때문에 이번 선거가 연방 대법원에서 끝날 수도 있다”며 “바이든 후보가 선거인단 270명 이상을 확보했지만 이에 불복, 연방 대법원 판단까지 받아보겠다”고 주장했다.

역대 최고 투표율…폭력 시위 등 과열된 분위기 우려

바이든 당선인의 대선 승리는 기본적으로 흑인 유권자들이 큰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바이든 당선인은 이미 경선 초반 하위권에서 고전하다 세 번째 경선지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흑인층 지지를 기반으로 경선을 승리로 이끌었던 경험이 있다.

이번 대선에서도 그 기세는 이어졌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지난 3일 치러진 대선 출구조사에서 흑인 유권자 87%가 바이든 당선인을 찍었다. 트럼프 대통령을 찍었다는 흑인 유권자는 12%였다. 심지어 흑인 여성의 바이든 당선인 지지는 무려 91%(흑인 남성은 80%)였다.

반면 백인 유권자 중에서는 트럼프 대통령과 바이든 당선인 지지가 각각 49%, 48%로 비슷했다. 히스패닉·라틴계와 아시아계에서 각각 바이든 당선인이 60% 대, 트럼프 대통령은 30% 대 지지를 받았다.

미국 대선은 각 주에서 한 표라도 더 얻은 쪽이 해당 주 선거인단을 독식하는 시스템이다. 결국 접전이 극심한 주에서 흑인 유권자 투표가 바이든 당선인 승리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이런 경향을 잘 알고 있는 바이든 당선인은 선거 기간 내내 버락 오바마와의 우정을 집중적으로 부각시켰다.

하지만 다소 극단적인 모양새를 보이며 양 진영으로 분열된 미국 분위기는 우려를 낳고 있다. 다수의 폭력적인 시위가 산발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가운데 심지어 오리건에는 주방위군이 배치됐다. 시위자들이 방화 시도를 하고 경찰이 현장에서 화약류를 회수하는 등 상당히 위태로운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에드워드 루스 파이낸셜타임스(FT) 미국 지역 수석 해설자는 “대선에서 누가 승리하든 유권자 절반은 자신의 정당성을 부정하는 국가를 물려받게 될 것”이라며 “바이든 후보는 통치하기 어려운 근본적으로 분열된 국가를 물려받게 될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이번 대선에서 미국인들이 역대 최고 투표율(66.8%)로 정치에 관심을 보인 것은 긍정적인 신호로 해석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너무 지나치게 양 극단으로 분열된 양상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바이든 당선인이 대통령에 취임한다 하더라도 지속적인 걸림돌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죄수 트럼프 대통령’ 차림으로 행진하는 미국 시위대. (사진 연합)
바이든, 통상환경 활성화보다 환경·노동 문제 중시

바이든 당선인이 취임하면 트럼프 대통령 임기 동안 경직됐던 미국 통상환경은 다소 완화될 것으로 기대할 수 있지만 낙관은 금물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물론 상대국에 대해 미국 이익을 앞세워 일방적인 요구를 할 가능성은 기존보다 낮아질 것으로 보인다. 협상과 설득 여지가 트럼프 대통령 때보다 넓어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다만 전통적으로 민주당은 자유무역에 반대 입장이라는 점도 고려할 필요는 있다.

통상 전문가들은 바이든 정부 출범이 무조건적인 통상환경 개선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지 않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 임기와는 또 다른 형태의 난관이 발생할 수 있고 기본적으로 새로운 대통령이 취임하면 무역·통상정책의 방향 전환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는 것.

특히 트럼프 대통령에 비해 바이든 당선인은 상대적으로 기업 친화적인 측면이 덜하다. 실제로 바이든 당선인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로 거론했던 인물들은 대부분 자유무역협정에 부정적이거나 환경·노동 문제를 통상 활성화보다 중시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

바이든 당선인이 대통령 취임식이 열리는 내년 1월 20일 전에 파리기후협약에 복귀하겠다고 선언한 것은 승리를 확신한다는 자신감으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기후위기 대응은 바이든 당선인의 대선 핵심 공약이기도 하다.

결국 파리기후협약 복귀는 바이든 선거캠프가 트럼프 행정부의 잘못된 정책을 바로잡겠다는 의미로 내세운 상징적 공약이다. 특히 이 공약을 통해 미국이 국제무대에서 리더 역할을 강화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또 바이든 당선인은 이 같은 약속을 현실화하기 위해 풍력, 태양광 등 녹색 에너지 인프라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할 것으로 전망된다.

7000만 명이 선택한 ‘조 바이든’, 그는 누구인가?

그렇다면 바이든 당선인은 어떤 삶을 살아왔을까? 일단 바이든 당선인은 이번이 세 번째 대권 도전이다. 30세에 최연소 상원의원이 된 이후 외교전문가로 화려한 성과를 보여줬지만 당내 경선 문턱을 넘는 데는 계속 실패했다. 어찌 보면 3수 끝에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던 것.

1942년 펜실베이니아 아일랜드계 가정에서 태어나 주로 델라웨어 윌밍턴에서 성장한 바이든 당선인은 7세 이후로 줄곧 장래희망이 대통령이었다. 하지만 어린 시절에는 말을 더듬었고 1972년에 최연소 상원의원이라는 타이틀을 얻으면서 크게 도약했지만 안타깝게도 당선 직후 아내와 딸을 교통사고로 잃었다.

1987년에 첫 대선에 도전했지만 연설 표절 의혹으로 중도 사퇴하게 된다. 2008년 경선에서는 오바마와 힐러리에 가려져 주목받지 못했고 이후 오바마 정부에서 부통령이 됐다. 이런 과정 속에서 다시 유력한 대선 후보로 떠올랐지만 2015년 장남인 보 바이든이 뇌종양으로 사망하면서 불출마를 선언하기도 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바이든 당선인은 어렸을 때 수업에서 배제될 정도로 말을 심하게 더듬었음에도 모친의 지극한 사랑과 스스로의 치열한 노력을 통해 정치인으로서 성공하게 된다. 어렸을 때부터 대통령이 꿈이었던 바이든 당선인은 변호사가 성공에 이르는 첩경임을 알고 시라큐스 대학 로스쿨에 진학했다.

당시 바이든 당선인 학부성적으로 시라큐스 대학 로스쿨 진학은 도저히 불가능한 상황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첫 부인 닐리아(시라큐스를 졸업한 교사 출신)를 만난 이후 로스쿨은 무조건 시라큐스로 가야한다는 목표로 열심히 공부를 했고 결국 교수들 추천서가 시라큐스 교수들 마음을 움직일 정도로 상황을 반전시켰다.

바이든 당선인은 시라큐스 로스쿨에 들어가서도 초반에는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아 닐리아가 요약 메모장을 만들어 도움을 주곤 했다. 결국 변호사 시험을 통과한 바이든 당선인은 대형 로펌에 들어갔지만 부자만을 대변하는 대형 로펌 생활이 싫어져 국선변호인으로서 동네 수영장 청소 일까지 했다고 전해진다.

당시 델라웨어 정치 지형은 공화당에 기울어져 있었기 때문에 민주당 지도부는 카운티 의회 의원이던 바이든 당선인을 상원의원 후보에 공천했다. 당시 상원의원 당선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한 당 지도부가 주지사 선거에 몰두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하지만 바이든 당선인은 닐리아와 동생들, 장인과 장모까지 총동원해 기적을 만들어 냈다.

이렇게 바이든 당선인이 의원 활동 준비에 집중하던 그 시기에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하고 말았다. 닐리아가 2남 1녀를 태우고 운전하던 중 사고가 나 닐리아 본인과 막내 딸이 사망했고 두 아들은 중상을 당한 것. 이후 바이든 당선인은 이혼녀였던 지금의 부인 질을 만났고 이번 선거에서 헌신적인 내조로 바이든 당선인 선거 행보에 큰 기여를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처럼 바이든 당선인 인생에서 가족의 영향력은 상당했다. 바이든 당선인이 도약할 때마다 모친과 배우자 등 가족 전체가 큰 힘이 돼 준 것이 사실이지만 한편으로는 사고와 병으로 가족을 잃는 상실감을 감당해내야 하는 안타까운 사연이 발생하기도 했다. 물론 그런 모든 성취와 좌절들이 바이든 당선인이 지금의 자리에 올라올 수 있는 원동력이 됐을 것이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송철호 기자 song@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