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관계엔 ‘긍정적’…표현의 자유·인권에는?

지난 23일 경기 파주에서 탈북단체가 보낸 대북전단 살포용 풍선이 홍천군 서면 마곡리 인근 야산에 떨어져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정부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 임기 종료와 조 바이든 차기 정부 출범을 한 달여 앞두고 ‘대북전단살포금지법(남북관계발전법 개정안)’이라는 장애물을 만났다.

미국이 중시하는 표현의 자유를 제한한 것으로 인식된 이 법안은 트럼프 정부 출범 4년 동안 갈등과 위기를 넘어온 한미 관계에 예상치 못한 복병이 되고 있다.

우리 정부는 미국의 오해를 풀겠다며 뒤늦게 전방위적인 공공외교 공세에 나섰지만 미국내 초당적으로 뿌리 깊이 박혀 있는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반감을 해소하기가 쉽지 않다. 백악관과 행정부는 물론 의회, 싱크탱크, 유엔(UN)을 두고 북한 인권기구, 탈북자단체 및 반북단체와의 대결까지 우려되는 상황이다.

‘김여정 하명법’이라는 한국내 비판보다도 더 풀기 어려운 과제를 풀어낼 수 있느냐는 국제사회에서의 우리 외교력에 대한 새로운 시험대로 작용할 전망이다

美 전통적으로 표현의 자유와 인권중시

미국 내에서 불거지고 있는 대북전단금지법에 대한 우려는 워싱턴포스트(WP)의 보도를 통해 확연히 드러났다. 조시 로긴 WP 칼럼니스트는 대북전단금지법에 대한 워싱턴의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는 기사를 통해 미국 조야에 퍼지고 있는 기류를 소개했다. 로긴은 스티븐 비건 국무부 부장관겸 대북특별대표가 최근 방한 중 우리 정부에 대북전단금지법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고 밝혀 한국 외교가를 발칵 뒤집었다. 그는 또 한국 정부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달래기 위해 언론의 자유와 인권을 희생시키고 있다는 우려가 확산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미국 의회 산하 초당적 기구인 ‘톰 랜토스 인권위원회’는 대북전단살포금지법과 관련한 청문회 개최까지 예고했다. 미 하원의 대표적인 지한파 의원의 모임인 ‘코리아 코커스’ 공동의장 제럴드 코널리(민주) 하원의원도 “문재인 대통령이 이 법안에 서명하기 전에 중대한 수정을 모색하기를 촉구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는 것은 우리의 입장이 미국에 통하지 않고 있다는 의미이다. 바이든 당선인의 측근으로 국무부 장관 물망에도 올랐던 크리스 쿤스 민주당 상원의원도 대북전단금지법 우려 대열에 동참하고 있다. 자칫 새 행정부와 함께 출발하는 미 의회에서 이번 문제가 북핵이나 중국 문제만큼 부각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이들은 일제히 ‘표현의 자유’ 침해와 ‘북한 인권’ 악화를 우려하고 있다. 미국은 헌법 수정안 1조를 통해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건국의 기본정신이 표현의 자유로부터 출발하는 역사성을 감안할 수밖에 없다. 이런 미국 측의 반발에 내정 간섭이라는 비판도 제기되지만 국무부의 답변은 미측의 입장이 전단 제한보다는 표현의 자유와 인권 보호쪽에 쏠리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국무부는 21일(현지시간) 전단금지법에 대한 미국의소리(VOA) 질의에 “세계적인 정책의 일환으로 우리는 인권 보호와 기본적인 자유를 옹호한다”며 “북한에 대해서도 우리는 자유로운 정보 유입을 위한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무부는 또 “정보에 대한 북한 주민들의 접근을 촉진하기 위해 비영리 단체 및 다른 국가의 동반자들과 협력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토마스 오헤야 퀸타나 유엔 북한인권 특별보고관의 입장도 우리 정부에게는 부담이다. 퀸타나 보고관은 “대북전단금지법 시행전에 재고할 것을 권고한다”고 요구했다.

강경화, 서호, 송영길 기고 총공세…꼬리 무는 반박도 만만치 않아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한 우리 정부는 적극적인 해명에 나섰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CNN 수석앵커이자 국제문제 전문가인 크리스티안 아만푸어와 인터뷰하며 “표현의 자유는 절대적 권리가 아니며 접경 지역 주민들의 생명을 보호 차원에서 제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호 통일부 차관은 미국의 북한 전문매체 NK뉴스 기고에서 “남북 대화와 교류 및 협력 확대를 통해 북한이 국제 사회와의 교류를 확대하는 것이 (인권에 대한) 목표를 이루는데 더 효과적”이라고 주장했다.

송영길 국회 외교통상위원장은 또다른 북한 전문매체 38노스 기고를 통해 “전단법은 사실상 대북전단 살포의 일시 장소를 사전에 언론 공개하여 노골적으로 북한을 자극하는 ‘정치적 이벤트성의 행위’에만 해당한다”고 강조했다.

우리 당국자들의 입장에 즉각적인 비판이 쏟아졌다. 전단을 담은 풍선을 북한에 날리며 대북 선교활동을 해온 한국순교자의소리 대표인 에릭 폴리 목사는 송 위원장의 기고에 대해 “우리는 언론에 전단을 날리는 날짜를 언급한 적이 없다”면서 “입법 의도가 전단 살포 장소와 시간이 언론에 알려지는 것을 막아 접경민들의 안전을 확보하려는 것이었다면 이를 금지하는 법으로 충분했을 것”이라고 맞섰다. 미국 민주주의진흥재단(NED)의 칼 거쉬먼 회장은 서 차관의 기고에 대해 “정보의 확산을 범죄시하는 것이 더 효과적으로 인권을 향상시키는 방법을 촉진하지 않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오히려 남북한 사이 분단의 벽을 강화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런 의견을 감안하며 “실수할 때 얘기해주는 것이 좋은 친구”라면서 “바이든 당선인이 유리한 입장에서 북한에 관여하고 싶다면 한국이 자유와 인권, 평화의 동력을 훼손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로긴 칼럼니스트의 주장이 허상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물론 반론도 있다. 영국의 한반도 전문가인 케빈 그레이 서섹스대 교수는 자신의 경험을 기반으로 우리 정부의 입장을 일부 두둔했다. 그레이 교수는 접경지역 주민들이 전단지 살포 중단을 요구하는 현수막을 걸어 놓은 것을 보았다고 소개했다. 그는 “접경지역 주민들의 불안은 2010년 북한의 연평도 포격 사건 이후 불거져 온 것”이라며 문재인 정부 들어 벌어진 일이 아니라고 평했다. 그레이 교수는 “이명박 정권에서도 전단배포 금지가 이뤄졌었다”고 상기했다.

스티븐 노퍼 컬럼비아대학교 교수의 진단은 이번 논란을 둘러싼 양면성과 해법 마련이 쉽지 않음을 보여준다. 노퍼 교수는 대북전단법에 대해 “남북관계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분위기를 조성하겠지만 시민의 자유와 인권 보호에 대해서는 우려를 낳을 수밖에 없다”고 평했다.



백종민 아시아경제 뉴욕특파원 cinqange@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