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국가주석 (왼쪽)과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칼날’은 역시나 중국을 향했다. 미국 외교의 정상화를 선언한 바이든 당선인이 중국에 맞서기 위한 동맹과 연합을 강조하고 나선 것이다. 미국 정부에 대한 대규모 해킹에 나선 러시아보다도 중국이 미국의 최대 위협이라는 것이 바이든 당선인의 판단이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 이어 바이든 차기 정부에서도 미·중 갈등이 해소되기보다는 연장전으로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며 우리 정부도 향후 미·중 관계에 대해 더욱 심각한 고민을 할 가능성이 커졌다. 바이든 정부의 대북 정책이 ‘버락 오바마 정부 2.0’에 그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점 또한 우리 정부에는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바이든 당선인은 지난달 28일(현지시간) 델라웨어주 월밍턴에서 외교안보분야에 대한 인수위 보고를 받은 후 직접 입장을 밝혔다. 방점은 중국 견제에 찍혔다. 미국이 홀로 중국과 싸우지 않겠다는 입장도 명확히 했다. 미·중 간의 갈등에 동맹국을 참여시키겠다는 게 바이든의 방침이다.

바이든 당선인은 “외교정책을 다시 짜는 것이 새 정부의 주요 도전 과제”라고 전제한 뒤 “우리가 중국과 경쟁하고 중국 정부가 무역 남용과 기술, 인권 등에 책임을 지도록 하는데 생각이 비슷한 파트너·동맹과 연합을 구축할 때 우리의 입장은 더욱 강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미국이 국제경제에서 25%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민주적인 파트너들과 함께하면 경제적 지렛대가 갑절 이상이 될 것”이라고 했다. 바이든 당선인은 “미·중 관계에 관련된 어떤 사안에서도 우리는 세계의 미래에 대한 우리의 비전을 공유하는 나라들에 둘러싸여 있을 때 더욱 강력하고 효과적일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바이든 당선인은 중국과 관련된 사안으로 ▲미국 노동자와 지적재산권, 환경 보호를 포함하는 중산층용 대외정책 추진 ▲인도·태평양 지역의 번영·안보 보장 ▲인권 옹호 등을 거론했다. 대부분 미국과 중국이 갈등을 빚어온 분야다. 바이든 당선인은 평소 신중한 언사를 중요시한다. 이 때문인지 이날 바이든 당선인은 중국과 맞서 연대할 특정 국가를 지목하지는 않았다.

이미 방향은 정해져 있다. 기본 조건은 민주주의 국가일 것이며 경제 규모가 있어야 한다. 중국 인근 국가여야 압박의 강도가 세진다. 이런 조건에서 한국은 당연 참여 대상국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추진했던 미국, 일본, 인도, 호주 등 ‘쿼드’ 국가에 이어 한국을 포함시킨 ‘쿼드 플러스’가 어떤 식으로든 실현될 여지가 높아진 것이나 다름없다.

바이든 당선인은 후보시절 공약으로 민주주의 회의(Democracy Summit) 개최 방침을 밝힌 바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아메리카 퍼스트’ 전략을 폐기하면서 미국과 뜻을 같이 하는 민주국가들의 정상을 소집해 미국 외교의 정상화를 선언하겠다는 게 회의 배경이다. 주요 외신도 미국 정권 교체를 알리는 데 세계 민주주의를 다시 구현하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없다는 것이 바이든 차기 행정부의 입장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외교가에선 이 회의가 반(反)중 연합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예상이 제기돼왔다. 바이든 당선인은 지금까지는 민주주의 회의의 방향을 반중 연대로 규정하지 않았지만 이번 발언은 회의 참가 대상 국가에 대한 사전 준비에 나서라는 안내문이나 다름 없다.

바이든 당선인의 선거 공약에 소개된 회의의 내용도 중국을 겨냥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 회의의 목표는 세계 민주국가들이 모여 민주주의 체제를 강화하고,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국가들에 솔직하게 맞서 공동 의제를 마련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부패 척결, 선거 결과 보전을 포함한 독재와 권위주의 방어, 국내외에서의 인권 확장 등을 목표로 한다.

이 회의는 한국의 외교 영향력을 더욱 확대시킬 결정적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환영할 만하다. 한 주요 외신은 바이든 당선인이 이번 회의를 주요 7개국(G7)과 인도와 한국, 호주를 포함해 민주주의 10개국(D10) 모임으로 구성할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고 소개했다. 이미 내년 G7 정상회의 개최국인 영국은 한국, 인도, 호주를 추가로 초청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미 판은 짜여진 셈이다.

문제는 부작용이다. 미국이 중국과의 갈등을 계속 지속하고 여기에 한국의 동참을 압박한다면 우리 정부가 느끼는 압박감은 트럼프 정부에 비해 더 커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주한미군 방위비분담금협상 갈등은 한미간의 관계가 중심이다. 하지만 중국을 향한 압박은 위태하게 유지돼온 한중 관계를 다시 악화시킬 결정적 뇌관이 될 수 있다. 이미 고고도미사일방어체제(THAAD·사드) 배치 문제로 미·중 사이에서 경제적 피해를 본 우리 입장에서는 새로운 외교 위기가 성큼 다가온 상황이다.

미·중관의 관계는 남북관계에도 영향을 미친다. 미·중 관계가 악화되면 북한 핵과 미사일 해법 도출도 영향이 불가피 하다. 북·미 정상회담은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관계가 좋았던 때에 성사됐다. 무역보복에 이어 신종 코로나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문제까지 겹치며 미·중 갈등이 본격화된 이후 북·미 대화는 사실상 단절됐다.

미·중 관계가 악화될수록 북·중 관계는 더욱 밀착될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이 북한에 대한 제재 이행을 완화하거나 북한의 도발을 용인하는 방식으로 미국을 자극할 경우 한반도의 평화는 또다시 흔들릴 수 있다.

바이든 당선인은 대선 토론회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향해 ‘깡패’라고 일컫고 김 위원장이 핵을 포기할 때 만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이후 북한 문제는 일절 거론하지 않고 있다. 이번 연설에서도 북한 문제는 빠졌다. 바이든에게는 이미 공언한 이란 핵합의(JCPOA) 복귀가 북한보다 시급한 현안이다.

미국 내 북한 전문가들은 역대 미국 대통령 당선인들이 북한 핵 문제 해결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다면서 바이든 당선인의 북한에 대한 무관심을 우려하고 있다. 무관심은 오히려 관심을 끌기 위한 북한의 도발을 자극할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한반도 운전자론’도 미·중 갈등 속에 좌초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백종민 아시아경제 뉴욕특파원 cinqange@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