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현지 시각) 민주당은 하원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탄핵소추 결의안을 공식 발의했다. 탄핵안이 통과되면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대통령 가운데 처음으로 하원에서 두 번 탄핵당한 대통령이 된다.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국 정치를 너무 만만하게 봤다. 그는 미 정가의 ‘아웃사이더’에서 스스로의 힘과 노력으로 백악관을 차지했다. 그리고 공화당을 자신의 정당으로 만들고 대선에서 7500만표를 받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대선 결과에 반박하며 미국 민주주의의 ‘심장’에 칼을 겨눈 대가는 임기 종료 일주일을 남기고 그를 역사상 처음으로 임기 중 두 번째 탄핵 소추된 미 대통령으로 전락시켰다. 그의 선동 정치는 4년 후를 바로 볼 수도 있었던 그의 정치 생명줄마저 차단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트럼프 탄핵 소추안 하원에서 가결

지난 13일(현지시간) 미 의회 의사당에는 수천명의 주 방위군이 배치됐다. 의사당 난입 사태를 유도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 표결을 앞두고 지난 6일 벌어진 난입 사태 재발에 대비한 조치였다. 의사당 외부는 물론 워싱턴DC 곳곳이 전시 상황을 방불케 했다.

이변은 없었다. 군의 경호 속에 의원들의 표결이 시작됐고 찬성 232명, 반대 197명으로 트럼프 대통령 탄핵 소추안이 가결됐다.

트럼프 대통령 탄핵 소추안 처리는 2019년 말 ‘우크라이나 스캔들’에 이어 두 번째다. 하원은 트럼프 대통령이 시위대 앞 연설에서 부정선거를 주장하며 ‘맹렬히 싸우지 않으면 더는 나라를 갖지 못할 것’이라고 선동해 이번 사태를 일으켰다는 점을 들어 탄핵에 나섰다.

스턴 호이어 민주당 하원 원내대표는 “아직 옳은 일을 하기에 늦지 않았다”며 탄핵 동참을 호소하기도 했다.

탄핵을 주도한 낸시 펠로시 민주당 하원의장은 폭도들에게 탈취됐다 되돌아온 연설대를 앞에 두고 “미국의 대통령도 법 위에 있지 않다”며 “도널드 트럼프는 우리나라에 분명하고도 현존하는 위협”이라고 역설했다.

하원에 이어 상원도 트럼프 ‘손절’ 고심

이번 표결에서 눈에 띄는 점은 공화당 내에서도 반(反)트럼프 의원들의반란표가 상당수 등장했다는 점이다. 애초 당내 3인자인 리즈 체니 의원을 비롯해 공화당 의원 등 7명이 탄핵 찬성 의사를 밝혔는데, 표결 결과 10명으로 늘어났다. 2019년 12월 탄핵 표결시 공화당에서 단 한 명의 이탈자도 없던 것과 크게 대비된다. 비록 197명이 탄핵에 반대했지만, 철옹성 같던 ‘공화당=트럼프당’이라는 인식은 사라졌다. 온라인 매체 악시오스도 “대통령이 속한 당에서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의원이 탄핵안을 지지하고 나섰다”고 전했다. 미국 기업들이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에 대한 의회 인증에 반대했거나 의사당 난입 사태를 두둔한 의원들에 대한 기부 철회를 선언하는 상황은 ‘트럼프 당’으로서의 공화당의 입지가 좁아졌음을 보여준다.

탄핵 소추에 대한 최종 판단은 상원에서 이뤄진다. 상원의원 100명 중 3분의 2가 찬성해야 트럼프 대통령 탄핵이 확정된다. 상원에서의 탄핵 심판은 바이든 당선인의 취임 이후로 미뤄질 전망이다.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는 탄핵소추안 가결 직후 성명을 통해 “규칙과 절차, 전례를 고려할 때 다음 주 바이든 당선인의 취임 전 (상원이) 결론을 낼 가능성은 없다”고 말했다. 매코널 원내대표는 민주당의 압박에 맞서 트럼프 대통령 임기 내에 상원 개회를 할 수 없다는 입장을 유지해 왔다. 그는 탄핵보다는 바이든 정권으로의 전환에 주력하자는 메시지도 내놓았다. 트럼프 대통령의 탄핵은 임기를 마친 후에도 계속된다. 매코널 원내대표는 이날 공화당 의원들에게 보낸 메모에서 “언론의 추측 보도가 넘쳐나지만 나는 내가 어떻게 투표할지 최종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어 “나는 (탄핵에 대한) 법적 논쟁이 상원에 제시되면 이에 귀 기울일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미 언론들은 매코널 원내대표가 트럼프 대통령 탄핵안을 사후에라도 다룰 것이며 탄핵에 찬성할 수도 있다는 입장을 보인 것이라고 해석했다. 매코널 원내대표는 지난해 초 상원의 트럼프 대통령 탄핵 가결을 저지해냈지만, 대선을 전후해 트럼프 대통령과 조금씩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그는 지난 6일 의사당 난입 사태 직후 “그들은 우리 민주주의를 훼방하려 했지만 실패했다”고 언급했다. 매코널 원내대표가 이런 언급을 한 것 자체도 큰 변화라는 평가가 나온다. 그가 찬성으로 돌아서면 공화당 상원 의원들이 탄핵 찬성에 나설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된다.

‘표현의 자유’인가 ‘선동’인가

미국 학계에선 퇴임 대통령 탄핵 심판도 합헌이라는 견해가 부상했다. 임기가 끝난 대통령에 대한 탄핵은 의미가 없을 수 있지만 차기 대선 출마 차단이 걸려 있어 민주당도 쉽게 포기할 수 없다.

탄핵이 상원에서 확정되고 의원 절반이 찬성하면 트럼프 대통령은 공직 선출권을 잃게 된다. 자신의 핵심 지지층을 기반으로 차기 대선에서 재기하겠다는 계획이 물거품이 되는 셈이다. 민주당도 이를 노리고 있다. 민주당과 공화당의 상원 의석수가 같아 진 것도 첫 탄핵 시에 비해 민주당에 유리한 국면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임기 종료 보름을 남겨두고 시작한 선동으로 인해 4년간 다져온 정치기반을 모두 잃을 위기에 놓였다. 상황 변화를 인식한 트럼프 대통령도 탄핵에 대해 반박하기보다는 폭력을 비판하는 방향으로 돌아섰다. 2019년 하원의 탄핵 표결 시 트럼프 대통령이 ‘마녀사냥’을 주장하며 펠로시 하원의장과 민주당 비판에 열을 올리던 모습과 대비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탄핵 결의 후 백악관 성명을 통해 “나는 어떠한 폭력과 불법, 기물파손도 반대한다. 모든 미국인이 긴장을 완화하는 데 협조해주길 바란다”라고 밝혔다. 현 상황에서는 공격보다 수비가 필요한 상황이라는 것을 인지한 태도 변화인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단 위기를 모면하고 훗날을 도모해야 한다.

아직 가능성은 남아 있다. 탄핵 결의 직후 실시된 악시오스 입소스 여론조사에 따르면 공화당원 중 64%가 여전히 트럼프 대통령의 행동을 지지한다고 답했다. 57%는 트럼프가 다음 대선 후보가 돼야 한다고 답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기반은 여전히 공고했다.



백종민 아시아경제 뉴욕특파원 cinqange@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