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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건의 드라이펜] 미국의 두 얼굴

  • 대선 결과에 불복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들이 1월 6일 워싱턴D.C. 연방의회 의사당에 난입했다. 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의 제46대 대통령이 1월 20일(현지시간) 취임했다. 2주 전 폭도들에게 유린된 의사당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그는 미국인의 단합과 화해를 강조했다. 작년 11월 3일 대통령선거 이후 미국에서 벌어진 일들은 충격의 연속이었다. 모두가 전대미문의 사건들이었다. 전임 대통령이 새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지 않은 것부터 처음이었다.

모두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선거 결과에 불복한 것에서 시작된 일이다. 선거의 패자에겐 언제나 아쉬움이 남는다. 근소한 표차로 졌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 그러나 승리에 겸손할 줄 아는 여당과, 패배를 인정할 줄 아는 야당이 존재해야 민주주의는 작동된다.

미국이 민주주의의 모범국가로 인정받은 것도 그 때문이었다. 트럼프는 그런 전통을 깬 최초의 대통령이다. 그는 자신이 대승했음에도 표를 도둑맞아 졌다고 주장했다. ‘표 도둑을 막자(Stop The Steal)’는 자신이 근소하게 이긴 2016년 대선에서도 그가 준비했던 구호였다.

2016년에도, 2020년에도 거의 모든 선거 여론조사는 그의 패배를 예상했었다. 2016년에는 운 좋게 승리함으로써 잠잠했다가 4년 만에 되살아 난 불복이다. 트럼프에게는 자신이 승리해야만 정당한 선거이고 패배는 위법인 셈이었다.

그는 60여 건의 ‘표 도둑’ 사례를 들어 해당 주에서 이의를 제기하고 법원에 제소했지만, 법원은 증거부족으로 거의 모두 기각했다. 막다른 골목에 몰린 그가 선택한 것은 지지자들을 선동해, 의사당에서 진행되는 바이든 당선인의 당선승인 절차를 저지하는 것이었다.

그것이 2021년 1월 6일의 폭도들에 의한 의사당 점거 난동이다. 1812년 영국과의 독립전쟁 때 한 차례 점거당한 이후 처음이었다.

그는 이날 아침 백악관 인근에서 벌어진 지지자 집회에 참석, 의사당으로 몰려가 강력한 힘을 과시하라고 했다.

그의 이런 주장에 자극된 수백 명의 지지자들이 의사당에 난입해 폭력, 기물파괴, 약탈을 저질렀다. 그 과정에서 폭도 1명이 경찰의 총에 맞아 죽었고, 경관 1명과 3명의 다른 폭도들이 부상당해 병원에서 사망하는 등 5명이 희생됐다.

민주당은 트럼프의 대선 이후 일련의 언행을 내란선동으로 보고, 폭동 1주일 뒤인 13일 트럼프에 대한 탄핵안을 하원에서 의결했다.

2019년 하원에서 한 차례 탄핵됐다가 상원의 재판에서 석방된 트럼프 대통령은 이로서 미국 역사에서 임기 중 두 번이나 하원에서 탄핵이 가결된 최초의 대통령이 됐다.

이 탄핵은 2019년 탄핵 때와는 달리 10명의 공화당 의원이 동조한 초당적인 탄핵이었다. 이 탄핵안이 상원까지 통과할지는 의문이다. 상원의 탄핵심판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퇴임한 후에도 열릴 예정이고, 하원의 단순 과반수와는 달리 3분의 2 찬성이 가결요건이기 때문이다.

충격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트럼프 지지자들이 바이든 대통령의 취임을 전후해 수도 워싱턴과 전국 각 주의 주정부 건물을 점거하기 위한 무장봉기를 획책하고 있다는 미 연방수사국(FBI)의 경고에 따라 수도 워싱턴 DC에 2만5000명의 방위군이 투입됐다.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시리아 주둔 미군의 규모를 합한 것보다 3배나 많다고 미국 언론들은 보도했다. 내우(內憂)가 외환(外患)보다 크다는 상징이다. 다행히 우려됐던 소요사태는 없었지만 이런 중무장한 대통령 취임식 또한 처음이다.

그러나 충격과 혼돈의 미국에서 발견하는 놀라움은 민주적 전통의 확고함이다. 지난 6일 의사당 폭동이 진압된 뒤 상하원은 회의를 속개해 바이든 당선인의 선거인단 투표 승인 절차를 7일 새벽까지 진행해 마무리했다.

이 과정에서 일부 공화당 의원들이 애리조나 주와 펜실베이니아 주의 선거결과에 이의를 제기했으나, 찬반 토론에 이어, 표결을 통해 부결됐다. 하원에선 공화당 의원의 절반 정도가 반대하고, 상원에선 공화당 의원 51명 중 40여명이 반대해, 상하원 모두 바이든의 당선을 초당적으로 승인했다.

트럼프의 선거부정 주장은 의사당 난동을 촉발시킨 사안이다. 공화당 하원의원들이 그런 사안으로 바이든 당선에 이의를 제기하고, 더욱이 절반 이상이 찬성한 것은 언뜻 이해하기 어려운 면도 있었으나, 의회주의의 건강성을 보여준 것이기도 했다.

이에 비해 지난 13일의 하원 탄핵은 찬성 232표 대 반대 197표 기권4표로 가결됐다. 이 표결의 중요성은 공화당 의원 10명이 찬성표를 던진 것과, 공화당의 반대 197표가 트럼프에 대한 지지라기보다는 탄핵재판이 트럼프 퇴임 후에 열려 실효성이 없고, 국론분열과 정치경색만 심화시킬 우려가 크다고 판단한 결과라는 점이다.

민주당 하원 의원들은 트럼프가 백악관에 머무는 시간은 1분1초가 ‘위험’이라면서 잘못을 바로잡는 데 적기(適期)가 따로 있지 않으므로 신속히 탄핵돼야 한다며 탄핵을 강행했으나, 탄핵의 실효성이나 국론분열 우려는 바이든 대통령도 공감했던 터이다.

공화당의 상하원 의원들이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에서 얻은 7400만 표를 무시할 수는 없다. 트럼프에게 밉보이면 2년 뒤 선거에서 그들의 정치적 미래가 위태로울 수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탄핵을 강행한 가장 큰 이유도 트럼프의 차기 대선출마를 포함한 공직관여를 못하도록 쐐기를 박는 것이었다.

그러나 미 의회에서 확인된 것은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자 가운데 그의 선거부정 주장을 믿지 않는 세력이 상당수라는 점과, 의사당 점거에 찬동하는 극우적인 세력이 오히려 소수일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또한 내란 상태에서도 헌법적 절차를 집행하는데 한 치의 착오도 없는 미국 의회주의의 확고한 전통이다. 그들은 토론하고 표결했다. 토론에서 상대의 주장을 경청할 뿐 물리력 행사는 아예 없었다. 우리나라 국회라면 어떠했을까를 떠올리게 했다.

트럼프는 끝내 선거 패배도, 내란에 대한 책임도 인정하지 않은 채 백악관을 떠났다. 트럼프가 미국의 민주주의에 남긴 상처는 크지만, 바이든 대통령의 통합의 리더십이 발휘된다면 치유도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 임종건 칼럼니스트 프로필

한국일보와 서울경제신문에서 기자와 부장을 거친 뒤, 서울경제신문에서 편집국 국차장, 논설위원, 사장을 지내는 등 36년 동안 언론에 몸담았다. 사실과 경험에 입각해 글을 쓰겠다는 다짐에서 ‘드라이 펜(Dry Pen)’을 필명으로 삼았다. 한국일보 시절에 주간한국 기자와 부장을 지낸 인연을 소중히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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