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국가안보실 핵심 라인 외교부로 이동
미국의 관심은 러시아 우선…북한은 뒷전
한미, 3월 연례 연합훈련 협상이 첫 관문

정의용 외교부 장관 후보자가 21일 오전 종로구 사무실로 출근하며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 출범과 함께 외교부 장관 교체를 결정한 문재인 대통령의 승부수가 통할 수 있을까. 임기 1년을 앞둔 문 대통령은 바이든 정부의 출범을 계기로 북미 관계 개선을 위한 ‘가속페달’을 밟고 나섰지만 바이든 정부의 시선이 북한보다는 중국, 중국보다는 러시아를 향하고 있는 상황을 새 외교·안보 진용이 어떻게 돌파해 낼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재임 4년간 외교부 장관직을 수행했던 강경화 장관의 경질은 전격적이었다. 강 장관은 2차 북미 정상회담 실패, 외교부 내에서 벌어진 각종 구설수, 가정사 리스크에도 불구하고 굳건히 자리를 지켜왔다. 강 장관을 서울 강남 지역에 전략 공천해야 한다는 여당의 희망도 강 장관을 흔들지 못했다.

이는 미국 정부와의 소통 채널을 유지하겠다는 정권 차원의 의지가 작용한 결과라는 인식이 컸다. 강 장관은 결국 자신과 함께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에 앞장섰던 마이크 폼페이오 전 미 국무부 장관과 함께 성과 없이 후임자에게 자리를 내주게 됐다. 국내에서도 강 장관에 대해 비판 여론도 많지만, 폼페이오 전 장관에 쏟아지는 비판의 목소리에 비할 바가 아니다. 퓰리처상을 수상한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은 폼페이오 전 장관에 대해 “역대 최악의 국무부 장관”이라는 평가를 했다. 리처드 폰테인 신미안보센터(CNAS) 소장은 “북한은 트럼프 정부 출범 시보다 더 많은 핵무기를 갖고 있다”며 폼페이오 장관의 대북 접근을 실패로 규정했다.

이제 북한 비핵화는 후임인 정의용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토니 블링컨 국무부 장관 지명자의 몫이 됐다. 정 후보자는 전격적으로 기용됐지만 외교가에서는 이전부터 그가 외교부 장관직에 오를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정 전 실장과 함께 국가안보실에서 손발을 맞췄던 최종건 외교부 1차관, 노규덕 한반도평화본부장이 외교부에 함께 자리 잡은 것도 중요한 대목이다. 이는 기존 ‘하우스 대 하우스’식의 한미간 협의보다는 ‘외교부 대 국무부 라인’을 통한 협상이 부상할 것을 예고하고 있다.

‘톱다운’식 해법을 즐기고 국무부 전문 외교관들을 배제했던 트럼프 정부와 달리 바이든 정부는 국무부의 위상을 대폭 강화했다. 블링컨 장관을 비롯해 웬디 셔먼 부장관 지명자, 성 김 동아태 담당 차관보 대행의 등장은 외교관들을 통해 북미 협상을 실무부터 진행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셔먼 부장관은 2기 빌 클린턴 행정부 말기에 국무부 대북정책조정관을 맡았고 조명록 당시 북한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이 백악관을 방문해 빌 클린턴 대통령과 만난 자리에 배석했던 이다. 당시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부 장관과 함께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직접 만났던 경험도 있다.

성 김 차관보 대행의 부상도 눈여겨 봐야 한다. 그는 주한 미 대사, 북핵 6자회담 수석대표를 역임했고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는 양국 간 실무 협상을 이끌었다. 그의 전임자 데이비드 스틸웰 전 차관보가 군 장성 출신인 것과 비교하면 전문적인 외교적 경험을 기반으로 북한을 대하겠다는 미 정부의 의지가 읽히는 대목이다.

판은 짜인 만큼 바이든 정부가 언제 어떤 식으로 북한에 메시지를 보낼 지가 관건이다. 그동안 침묵하며 대미 자극 발언을 자제했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선공에 나섰다. 김 위원장은 노동당 8차 대회 사업총화 보고에서 “미국에서 누가 집권해도 미국이라는 실체와 대 조선 정책의 본심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최대의 주적인 미국을 제압하고 굴복시키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면서 핵을 기반으로 미국과 협상에 나서겠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김 위원장은 대화의 조건까지 제시했다. 그는 미국이 적대시 정책을 철회해야 한다면서 ‘강대강, 선대선’ 원칙을 제시했다. 미국이 껄끄러워할 핵잠수함 개발 계획까지 공표했다.

김 위원장의 압박에도 미국은 당장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식에서도 동맹과의 협력을 강조했지만, 북한에 대한 거론은 전혀 하지 않았다. 블링컨 지명자와 로이드 오스틴 국방부 장관 지명자는 상원 인준 청문회에서 바이든 행정부가 “대북 정책과 접근법을 전면 재검토할 것”이라고 밝혔을 뿐 더 이상의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바이든 정부의 관심은 오히려 러시아를 향하고 있다. 바이든 정부의 한 관계자는 취임식 하루 뒤 “바이든 대통령이 러시아가 일으킨 사건들에 대한 증거를 보고하라고 국가정보국(DNI)에 지시할 것”이라면서 “곧 대응 조치가 나올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보다도 시급한 의제로 통해온 이란 문제도 뒷전으로 밀릴 상황이다. 젠 사티 백악관 대변인은 첫 브리핑에서 이란과의 핵 합의 복귀에 대해 이란 측의 합의 조건 유지를 제시했다. 이런 상황은 북미 협상 재개가 쉽지 않을 것임을 예견케 하고 있다.

미국의 대응은 한미 연합훈련에 대한 입장으로 확인될 전망이다. 문 대통령은 이미 승부수를 던졌다. 문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3월 연례 한미 연합군사훈련 재개에 대해 “필요하면 남북군사위원회를 통해 북한과 한미 연합훈련에 대해 협의할 수 있다”고 밝혔다.

미국이 우리의 입장대로 움직일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미국의소리(VOA)는 이와 관련, 싱가포르 1차 북미 정상회담 이후 한미 연합훈련이 비정상적으로 운영된 데 대한 미 조야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소개했다. 에번스 리비어 전 국무부 동아태 담당 수석부차관보는 한미 연합훈련 재개에 대해 VOA에 “군 당국은 일정 수준의 연합훈련 재개를 권고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내에서 북한 비핵화에 대한 회의론이 확산하는 것도 부담이다. VOA는 “김 위원장이 비핵화에 대한 분명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문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 발언과 관련, 문 대통령의 대북 인식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 일고 있다고 전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게 정 후보자의 임무다. 정 후보자는 외교부 장관 지명 소감을 통해 “문재인 정부가 추진해 온 외교정책이 결실을 보고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국가를 위한 그의 마지막 임무가 호락호락하지 않음은 확실해 보인다.



백종민 아시아경제 뉴욕특파원 cinqange@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