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4일(현지시간) 워싱턴 국무부 청사에 도착해 연설 시작에 앞서 마스크를 벗으며 웃고 있다. AP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 출범 2주가 지나며 미국 외교의 방향이 틀을 잡아가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의 입장은 러시아에 대한 사전 견제 속에 최종적으로는 중국에 대한 압박의 강도를 높여가려 하고 있다. 바이든 정부는 대중 압박을 위해 ‘쿼드’(Quad) 확대를 공언하고 나서면서 한국 정부에 대한 참여 압박이 커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트럼프 외교정책 모두 뒤집어도 살아남은 쿼드

지난 4일(현지시간)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 후 첫 방문 부처인 국무부에서 내놓은 일성은 “미국이 돌아왔다. 외교가 돌아왔다”였다. 취임 전부터 동맹을 강조해온 바이든 대통령은 동맹과 연합을 통해 중국 및 러시아와 맞서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트럼프 정부의 정책을 줄줄이 뒤집었다. 사우디아라비아에 대한 예멘 전쟁용 무기 판매, 난민 입국 허용 확대, 주독 미군 감축 중단 등의 조치는 트럼프 전 대통령 정책에 대한 폐기 선언이었다.

미국 우선주의, 고립주의로 규정된 전 정부의 외교 정책은 완전히 사라졌고 개입주의를 통한 적대국과의 대결이 새로운 주춧돌이 됐다.

바이든 정부가 트럼프 정부의 외교·안보 유산을 모두 ‘삭제’한 건 아니었다. 거의 유일하게 살아남은 정책이 바로 쿼드다. 일본, 호주, 인도와의 4개국 협의체인 쿼드를 통해 중국을 견제하는 인도·태평양 정책의 계승을 선언한 것이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은 미국평화연구소(USIP)가 주최한 화상 세미나에서 쿼드에 대해 “우리는 정말로 그 형식과 메커니즘을 넘겨받아 더 발전시키고 싶다”고 밝혔다. 트럼프 정부의 대중동 정책인 ‘에이브러햄 협정’도 큰 수정 없이 계승될 것으로 점쳐지지만 바이든 대통령은 예멘 전쟁에 대한 사우디아라비아의 입장을 놓고 지원 입장을 번복하며 중동 정책은 수정에 들어갔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쿼드는 사실상 트럼프 정부에 이어 바이든 정부에서 더욱 발전될 유일한 외교정책으로 꼽힌다.

설리번 보좌관은 쿼드에 대해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실질적 미국 정책을 발전시킬 근본적인 토대로 보고 있다”고 표현했다. 그는 쿼드의 경우 바이든 행정부가 더욱 강화하고 활기를 불어넣기 위해 이전 정부가 취하지 않은 조처를 취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G7보다도 앞선 한미 정상통화...쿼드 참여 확대 출발점?

쿼드는 미국의 전통적 동맹인 일본, 호주와 중국 견제를 원하는 인도가 합류해 구성된 협의체다. 사실상 반(反)중국 연대다. 2019년 미국 뉴욕에서 4개국 쿼드 외교 장관회의가 열리며 본격화됐다.

지난해 10월 일본에서 두 번째 회의를 열고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의 정세를 주요 의제로 논의한 뒤 인도·태평양이 자유롭고 열린 공간으로 유지돼야 한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다분히 중국을 겨냥한 내용이다.

외교가에서는 쿼드를 계승 발전해야 한다는 의미를 쿼드 확대로 해석하고 있다. 트럼프 정부에서도 추진했던 ‘쿼드 플러스’ 구상이 구체화할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트럼프 정부는 임기 막판까지 ‘쿼드 플러스’에 대한 입장을 강조해왔다. 쿼드 플러스에는 한국이 가장 유력한 참여 대상이라는 게 정설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물론 설리번 보좌관까지 ‘힘의 우위’ 확립을 통한 중국과의 경쟁을 언급한 만큼 쿼드플러스 체제 출범은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될 전망이다.

스티븐 비건 전 국무부 부장관은 미국과 유럽의 연합방위 체제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와 대칭되는 인도·태평양판 다자 안보틀로 ‘쿼드 플러스’를 구축해야 한다고 발언하기까지 했다. 바이든 정부가 동맹과 함께 대적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대목은 중국 견제를 위한 ‘쿼드 플러스’ 출범과 한국의 동참 요구가 필연적으로 이어질 것임을 시사한다.

한미 정상 간 통화는 이탈리아보다 먼저 이뤄졌다. 비록 이탈리아가 주세페 콘티 총리 사임으로 정국이 혼란하지만 주요7개국(G7)인 이탈리아보다 한국과 호주 정상을 통화 대상으로 삼았다는 것은 한국에 대한 미국 측의 기대감을 반영한다.

버락 오바마 정부에서 주한미군 사령관으로 근무한 빈센트 브룩스 주한미군전우회(KDVA) 회장은 ‘미국의 소리’와의 인터뷰에서 “미 국익에 위협이 되는 안보 환경이 바뀌지 않는 상황에서 바이든 행정부가 연속성을 갖고 쿼드 구상에 대한 접근법을 추진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브룩스 전 사령관은 쿼드가 아시아 역내 핵심 민주주의 국가로 구성됐다는 점에서 바이든 행정부에서도 한국을 참여시키려는 열망은 계속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일 관계 정상화는 쿼드 플러스 예고편?

이런 정황은 문재인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의 첫 통화에서도 확인됐다. 문 대통령은 지난 3일 바이든 대통령과의 통화 후 포괄적인 대북 전략을 조속히 마련하기로 했으며 한미 동맹을 한반도와 인도·태평양을 넘어 포괄적 전략동맹으로 발전시켜 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또 한일 관계 개선과 한ㆍ미ㆍ일 협력이 역내 평화와 번영에 중요하다는 데도 공감했다고 언급했다. 이는 한일 관계 개선을 통한 쿼드 플러스 출범 가능성을 예고한 대목이나 다름없다.

쿼드 플러스 체제 출범을 위해서는 한일 관계의 개선이 불가피하다. 트럼프 정부는 쿼드 플러스를 추진했지만, 한국 대법원의 위안부 피해자 보상 판결에서 시작된 한일 간의 갈등에 막혀 뜻을 이루지 못했다.

눈여겨 볼 점은 오바마 정부를 계승한 바이든 정부가 한일 관계 악화의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점이다. 한일 갈등의 기폭제가 된 위안부 합의가 오바마 정부의 압력 아래에서 이뤄졌다는 건 외교가의 정설이다.

한미 정상 통화 후 백악관은 한일 관계 개선을 언급하지 않았다. 하루 뒤 설리번 보좌관은 “미국이 북한 비핵화 문제를 재검토하고 있다”면서 “한국과 일본과 함께 논의 중”이라고 했다. 한국과 일본의 동맹을 강조한 것 자체가 한일 관계의 개선에 나설 수밖에 없다는 미국의 구상 방향이 읽히는 대목이다.



백종민 아시아경제 뉴욕특파원 cinqange@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