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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호 객원기자 칼럼] 원자재값 들썩…‘슈퍼사이클’ 시작됐나

  • 원유의 경우는 수요가 아직 미진한 상태에서 공급 여력이 충분한 편이다. (사진 연합)
지난해 3월경을 계기로 원자재가격이 상승추세로 반전했고 올해 들어서는 그 기울기가 더욱 가팔라지면서 또 한 번의 원자재 슈퍼사이클이 오는 것이 아닌가 하는 논란이 일고 있다.

세계적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는 향후 10년 간 주요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는 슈퍼사이클이 전개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워낙 수출에 대한 의존도가 높고 이에 따라 원자재 가격에 민감한 우리 경제의 입장에서 매우 긴장되는 소식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그 구체적 내용을 한 번 짚고 넘어가는 것이 필요하다.

원자재는 크게 원유, 금속, 농산물로 분류할 수 있는데, 3가지 섹터가 동시에 상승세를 보이는 것은 이례적이다. 이 중 원유의 경우는 한때 마이너스 가격까지 내려갔으나 이후 바닥을 치고 올라가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지난 18일 장중 배럴당 62.29달러까지 상승하며 60달러 선을 돌파했다.

이는 실질적인 원유 수요가 늘었다기보다는 경기호전에 대한 기대감에 따른 투기적 수요와 더불어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 등 주요 산유국들 협의체인 ‘OPEC플러스’(OPEC+)의 감산에 기인한 바 크다. 여기에 더해 미국 주요 산유지역인 텍사스에 이례적인 한파가 닥치면서 원유와 정제유 생산까지 중단되며 유가 파장에 영향을 끼쳤다.

금속의 경우, 철광석 가격은 지난해 3월 톤당 81.07달러까지 떨어졌으나, 이후 회복해 지난 21일 기준 173.55달러를 기록, 2.1배 상승했다. 구리, 주석, 니켈 등 비철금속도 상승세가 현저하게 나타났다. 대표적인 경기지표인 구리의 경우 3개월 선물은 톤당 8439.50달러에 거래를 마쳐 2012년 3월 이후 최고가를 기록했다.

이는 중국의 산업수요가 활성화된 것에 기인한 바 크며, 이후 다른 나라들의 경기가 회복될 것이라는 전망을 바탕으로 한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을 중심으로 하는 ‘그린뉴딜’이 전기차 배터리의 주요재료인 구리를 위시한 비철금속의 수요를 크게 늘릴 것이라는 기대감도 한몫하고 있다.

농작물의 경우 콩은 1부셸(27.2㎏)당 13.75달러로 지난해 4월 저점에 비해 67% 급등했고, 옥수수는 1부셸당 5.5달러에 육박하는데, 이는 2013년 이후 최고치다. 쌀, 밀과 같은 주요 작물도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이는 중국 등 아시아에 폭우가 장기간 지속되고, 라니냐 현상이 일어나면서 미국과 남미에서도 작황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농업노동력의 이주가 어려워지고, 메뚜기 떼의 출현도 공급을 줄이는데 기여했다. 수요 측면에서는 폭우로 작황이 부진했던 중국이 곡물수입을 늘리고, 아프리카 돼지 열병으로 타격을 받은 돼지 사육두수가 회복을 보임에 따라 사료용 작물수입을 늘리는데 영향을 받고 있다.

이처럼 원자재의 섹터별로 가격을 인상시키는 요인은 개별적이며 우연의 일치적인 성격이 강하다. 그러나 공통적인 면도 있다. 먼저 코로나19에 대응하기 위해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으로 풀려난 각국의 엄청난 유동성이 저금리와 맞물려 이들 원자재 시장에 흘러 들어간다는 점이다.

백신의 개발과 보급에 따라 코로나19가 잠잠해지면 경기가 되살아나고 보복적 소비가 폭발할 것이라는 기대감도 바탕에 깔려 있다. 증시에는 이들 원자재에 투자할 수 있는 ETF와 선물 등 상품들이 풍부하게 개발돼 있고 막대한 유동성은 이를 통해 원자재 시장에 흘러 들어가기도 한다. 또한 약달러와 인플레에 대한 우려가 이들 상품에 대한 투자를 촉진시키기도 한다.

장기적 가격급등 요인은 아직까지 안 보여

과연 이러한 원자재가격 상승이 슈퍼사이클이라고 불릴 만큼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문제일까. 슈퍼사이클이라고 하면 최소한 10년 이상의 장기적인 가격상승 추세를 의미한다. 과거 원자재 슈퍼사이클은 4차례 있었다.

1차 사이클은 1900년부터 대공황직전까지이며, 2차 사이클은 2차 대전 직후 마셜플랜부터 베트남전 특수까지를 말한다. 3차 사이클은 1970년대 두 차례에 걸친 오일쇼크로 OPEC에 의한 유가인상을 의미한다. 4차 사이클은 2001년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후 세계의 공장으로 부상하고 세계 원자재수요를 빨아들이면서 시작돼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종막을 내렸다. 모두 다 확실한 가격인상과 수요증가의 구조적 요인이 있었던 것이다.

그에 비하면 이번의 원자재 가격상승 사이클은 공통의 구조적 요인이 약해 보인다. 우선 본격적인 경기회복세가 나타나고 있지 않고 코로나19의 진압과 그 후의 경제상황에 대한 전망이 매우 불투명하다는 점이다.

설령 보복적 소비가 일어난다고 하더라도 코로나19 이전의 상황으로 돌아갈 만큼 활발할 것인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또한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이 무한적 완화적으로 계속되기는 어렵다. 이미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고 최근의 원자재 투자도 이에 대한 헤징이라는 측면도 가지고 있다.

개별적인 원자재 시장별로도 전망이 다소 다르다. 원유의 경우는 수요가 아직 미진한 상태에서 공급 여력이 충분한 편이다. 이미 아랍에미리트(UAE)에서 증산한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조 바이든 미국 정부 출범에 따라 이란의 석유수출이 재개될 수도 있다.

비철금속의 경우는 전망이 다소 밝아 보인다. 특히 그린뉴딜과 전기차 확산에 따라 이들의 주요소재인 구리 등의 수요가 중장기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이나 공급은 탄력적으로 늘어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농산물의 경우에는 재배면적을 빠르게 늘림으로써 공급이 곧 늘어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에 가격상승이 지속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원자재 가격상승 사이클이 얼마나 강하든 우리의 입장에서는 이에 대한 대비가 필요한 입장이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에서 원자재가격의 불안은 상당한 부작용을 가져올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자원부국과의 협력강화, 상품의 장기공급계약 등 중단기적인 대응도 필요하지만 이번 사태를 계기로 해외자원 개발에 대한 노력도 다시 재개할 필요가 있다.

이명박 정부시절 본격화된 해외자원개발 사업에 수많은 기업이 뛰어들었음에도 성공한 사례가 많지 않고 오히려 비리에 대한 의혹 등으로 좋지 않은 기억만 남겼다. 그 결과 올해 해외 자원 개발을 지원하는 예산은 349억 원으로 역대 최저로 떨어졌다. 과거 전성기 시절의 연 4000억 원은 물론이고 2017년의 1000억 원에 비해서도 크게 축소된 규모이다.

자원개발사업이 장기간의 시간을 필요로 하고 수많은 불확실한 요인을 안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과거 우리는 지나치게 서두르고 단기적인 관점에서 사업을 추진한 면이 없지 않았다. 이러한 과오를 반성하고 해외자원개발의 마스터플랜을 재점검할 시점으로 보인다.

정인호 객원기자 yourinho@naver.com

● 정인호 객원기자 프로필

정인호 객원기자는 캘리포니아 주립대 데이비스 캠퍼스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고 ▲KT경제경영연구소 IT정책연구담당(상무보) ▲KT그룹컨설팅지원실 이사 ▲건국대 경제학과 겸임교수 등을 지낸 경제 및 IT정책 전문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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