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송과 배포 쉽고 가격도 저렴…까다로운 EU 관문 통과할까

The Gamaleya National Center’s Employees/sputnikvaccine.com/
러시아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백신인 ‘스푸트니크 V’(Sputnik V)의 위상이 달라졌다. 지난해 8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임상3상이 끝나기도 전에 세계 최초로 스푸트니크 V 사용을 허가해 전세계의 비웃음을 샀다. 스푸트니크 V의 임상 투명성이 떨어질 뿐만 아니라 개발이 지나치게 급박하게 진행됐다는 비판이 지배적이었다. 심지어 ‘물이나 차이가 없다’는 비아냥까지 나왔다.

하지만 올해 2월 국제 의학학술지 '랜싯(The Lancet)’에 스푸트니크 V의 임상3상 결과 데이터가 게재되면서 상황은 역전됐다. 해당 데이터가 실린 논문에 따르면 이언 존스 리딩대 교수와 폴리 로이 런던 위생 열대의학 대학원 교수는 스푸트니크 V로 1·2차 접종을 모두 마친 1만9866명의 임상3상 시험 자료를 분석한 결과 면역 효과가 91.6%인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중증 예방율은 100%였으며 고령층에게도 비슷한 효능을 발휘했다는 것이다. 두 교수는 "스푸트니크 V 개발은 급박하고, 부실하고, 임상의 투명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을 받아왔지만 이번에 보고된 임상 결과는 분명하고, 예방 접종의 과학적 원리도 증명됐다"고 평가했다.

랜싯의 임상3상 결과가 알려진 것을 계기로 스푸트니크 V는 수혜를 톡톡히 보고 있다. 스푸트니크 V의 숨겨진 장점들이 하나둘씩 부각되고 있기 때문이다. 화이자 백신과 달리 스푸트니크 V는 냉동고가 아닌 냉장고에 유통·보관할 수 있다. 기후가 열악하고 더운 나라에 쉽게 운송하고 배포 할 수 있다. 또 1회 접종 비용이 10달러에 불과해 아스트라제네카(4달러)를 제외한 대부분의 타 백신보다 저렴하다.

지난 2일 미국 경제 전문지 포춘은 러시아가 스푸트니크 V로 동유럽 백신 시장을 석권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중동과 동유럽, 남미 등 국가들은 스푸트니크 V 도입에 긍정적이다. 유럽연합(EU)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최근 헝가리에 이어 슬로바키아도 스푸트니크 V를 수입하기로 결정하면서 스푸트니크 V를 도입하는 EU 회원국은 2개국으로 늘었다. 독일도 스푸트니크 V 도입 가능성을 열어놨다. 지난 2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공영 ARD방송에 출연해 "러시아 스푸트니크 V 백신이 좋은 데이터를 보여줬다"며 "유럽연합은 모든 백신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백신수급 부족 문제가 확산되자 해결책의 일환으로 러시아산 백신의 도입 가능성을 열어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정작 러시아 국민들은 자국의 스푸트니크 V에 호의적이지 않다. 러시아 여론조사 기관 레바다 센터가 지난 1일 발표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62%는 스푸트니크 백신 접종을 원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스푸트니크 V 접종을 꺼리는 가장 큰 이유로는 부작용에 대한 우려가 응답자의 37%를 차지했다. 실험이 완전히 끝날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입장은 23%로 그 뒤를 이었다.

우리나라가 스푸트니크V를 도입할지는 미지수다. 지난달 8일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은 스푸트니크V와 관련해 “변이(바이러스)라거나 (다른 백신) 공급의 이슈 등 불확실성이 있기 때문에 추가 백신에 대한 확보 필요성, 그리고 내용에 대해서 계속 검토해 나갈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이후로 방역당국은 스푸트니크V에 대한 어떠한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다른 전문가도 스푸트니크 V의 안전성에 대해 조심스러운 견해를 보였다. 그는 “의학학술지는 (논문) 서류만 보고 심사를 하기 때문에 허위, 조작 여부를 발견해 낼 수 없다”며 “작성자가 의도적으로 특정 정보를 숨겼는지 밝혀낼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한편 EU의 백신 승인을 총괄하는 유럽의약품청(EMA)은 EU 회원국들의 볼멘소리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스푸트니크 V 사용을 승인하지 않고 있다. EMA가 승인하고 긴급 사용을 권고한 백신은 EU 집행위원회 승인을 거쳐 EU 시장에 일괄 공급될 수 있다. ‘러시아직접투자펀드’(RDIF)는 지난달 29일 EMA에 백신 등록 신청서를 냈다고 밝혔다.

현재까지 EMA가 긴급사용을 승인한 백신은 화이자, 아스트라제네카, 모더나 3개뿐이다. 이에 대해 제바스티안 쿠르츠 오스트리아 총리는 지난 1일 현지 언론 인터뷰에서 “EMA의 백신 승인 속도가 너무 느리다”면서 “향후 변이 바이러스에 대비하기 위해 차세대 백신 생산에서 더는 EU에 의존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노유선 기자



노유선기자 yoursun@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