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街,인플레 이어 성장 공포 담론···일부서 스태그플레이션 경고도

( 사진=연합뉴스 )
[주간한국 박병우 기자] 신종 코로나비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이 지구상에 출몰한 지 15개월 이상이 지나갔다. 전 세계를 휩쓸어버린 1차 파동 때 국가 간 이동이 봉쇄되고 전 세계 경제가 일시 정지 상태에 들어갔다.

존스 홉킨스대학 집계 기준으로 지난 15일 현재 누적 환자 수는 1억8827만명에 달했고 사망자는 4백만 명을 넘었다. 백신은 34억 회 분량이 생산됐다. 그러나 코로나19는 계속 변이를 만들어가며 인류를 공격하고 경제를 위협하고 있다. 이에 따라 우세종으로 올라선 델타 변이가 회복 중인 세계 경제의 발목을 다시 잡을 변수가 될 것인지 우려감이 점점 커지고 있다. 이미 경제가 회복한 미국은 물론 회복세를 보이려는 신흥국까지 모두가 긴장하며 주시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코로나19 4차 위기를 맞아 가장 높은 4단계 사회적 거리 두기(7.12~25)를 시행 중이다.

델타 변이·美 국채수익률 하락이 성장 공포 유발

세계 경제를 주도하는 미국 경제의 중장기 향방을 가늠할 수 있는 대표적 잣대는 채권수익률이다. 향후 경기에 대한 회복 기대감이 높아지면 투자가 늘고 대출이 증가하므로 금리는 올라갈 것이다. 당연히 국채수익률이 상승한다. 반대로 경기 하강이 우려되면 미국 국채수익률은 하락할 수 있다. 7월 둘째 주 미국 국채의 대표물인 10년물 국채수익률이 4일 연속 속락세를 기록했다. 장중 한때 주요 지지선인 1.30%를 뚫고 내려갔다. 수익률과 반대로 해석되는 채권가격 기준으로는 급등한 것이다. 안전자산인 채권값 상승은 경기 불안감이 표출되어 매수세가 집중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를 반영해 지난주 미국 증시는 출렁거렸다.

게다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인프라 투자법안이 최초 규모의 절반인 1조2000억 달러(약 1376조원)로 감소할 것이라는 점은 재정의 성장률 기여분이 줄어들 수 있다는 불안감을 낳았다. 델타 변이의 확산과 재정의 경제 기여 축소가 미국의 소비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감은 성장 공포를 자극했다.

지난 5월 전월 대비 근원 소비자물가지수(CPI)가 0.9% 상승을 기록하며 1982년 이후 39년 만에 가장 빠른 속도의 상승을 기록했다. 대표 CPI에서 변동성이 큰 식료품·에너지를 제외한 것이 근원 CPI이다. 이후 월가의 주된 토론은 ‘인플레이션 공포’였다. 지난 13일(현지 시각) 발표된 6월 CPI도 전년 대비 5.4% 상승하며 예상치 5.0%를 웃돌았다. 근원 CPI도 전년 대비 4.5% 상승하고, 전월 대비 0.9% 올랐다. 물가 공포가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는 것이다. 델타 변이와 미국 국채수익률의 하락이 겹치면서 월가의 담론은 ‘인플레 공포’에서‘성장 공포’까지 범위를 넓혀나갔다.

이에 대해 월가의 전문가들은 코로나19 델타 변이에 대해 “아직 거시적 위험은 아니며 지역별 혹은 국가별 차별적 요소에 국한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지금까지 나온 의학적 증거에 따르면 백신은 델타 변종으로 인한 입원과 사망에 대해 크게 효과적이다. 또한 아직까지 예방 접종을 하지 않은 사람들의 망설임을 줄일 수 있다. 다만 미국 중서부와 남부에 집중적으로 발생한 델타 변이 환자가 경제 중심지인 캘리포니아와 뉴욕으로 번지면 거시적 위험은 올라갈 수 있다. 우리나라도 백신 접종이 일시에 몰리며 접종 예약사이트가 혼선을 빚기도 했다. 그래도 전염병에 대한 대중들의 공포는 대유행 초기와 비교해 사그라들었다. 각국의 정치인들도 사회적 봉쇄를 정당화하는 데 더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미국의 재정기여 축소, 민간 기업의 투자 증가로 상쇄

글로벌 분석기관 TS롬바르드는 “지난주 미국 10년물 국채수익률이 1.30% 이하까지 떨어진 것은 재정적자 축소 가능성에 따른 불안감이 작용한 것”이라고 추정했다. 재정적자 축소는 재정 부양이 줄어든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지난해 2분기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전기대비 성장률에 대한 재정지출 공헌도는 15%포인트 선까지 육박했다. 올 1분기도 7~8%포인트까지 긍정적 공헌을 기록했던 재정지출은 올해 2분기 이후 마이너스로 돌아설 것으로 분석됐다. 이에 대해 TS롬바르드는“GDP 성장률에 대한 재정지출 공헌도의 마이너스 전환은 기계적 해석이다”라고 지적했다. 특히 재정 기여의 축소 이면에는 민간 기업의 투자 증가라는 더 긍정적 현상이 등장할 수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따라서 미국 재정정책이 회복의 걸림돌이 되지 않을 것으로 판단했다.

국제통화기금(IMF) 조사에서도 코로나19 이전 예상치보다 2024년 성장 전망이 더 높아진 국가는 미국이 유일하다. 더 나은 재건을 위해 지난해부터 공세적으로 나선 미국의 막대한 재정지출이 중장기적으로 옳은 선택임을 입증하고 있다. 물론 재정지출 시 인플레이션 위험은 필연적이다. 이와 관련해 전문가들은 “인플레이션보다 더 큰 위험은 국가가 돈을 써야 할 때 쓰지 않아 불평등이 심화하고 구조적 장기 침체로 몰락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처럼 월가에서는 델타가 ‘파티’(경제 회복)를 망치지 않을 것으로 판단을 내리는 의견이 우세하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물가 상승과 경기 불황이 동시에 나타나는 ‘스태그플레이션’의 악취가 새어 나오고 있다는 의견도 있다. 스태그플레이션은 1979년 세계 석유파동 이후 1980년대 전반 미국을 휩쓴 것이 대표적 사례다. 유가 급등으로 불황에 빠졌는데도 석유파동의 여파로 물가의 상승 압력이 계속됐다. 당시 미국은 고금리를 선택했다가 달러 강세의 부작용으로 재정적자 및 무역적자의 확대를 견디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미국은 1985년 ‘플라자 합의’를 통해 일본 엔화와 독일 마르크화의 평가절상을 유도해 달러 강세 현상을 잠재웠다. 이후 달러는 폭락했으며 미국을 상징하는 뉴욕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과 록펠러 빌딩이 일본에 팔려 가는 굴욕을 당했다. 우리나라도1990년대 초에 스태그플레이션에 빠졌다. 유가·금리·원화 가치 등 3저(低) 시대가 끝났음에도 호황이 계속될 것이라는 기대 때문에 부동산 투기와 임금 인상이 겹치며 경기가 침체에 빠졌다.

지난 4~6월 미국의 고물가 행진과 7월 들어 나타난 채권수익률의 하락은 고물가와 불황을 의미하는 스태그플레이션을 떠올리게 한다는 주장이다. 스태그플레이션 경고의 신호는 벌크선 운임 지표인 발틱 운임지수가 상승하는 반면 미국 채권금리가 하락하는 데서 발산되고 있다. 발틱 지수 상승은 물가 상승을 예고하고, 채권금리 하락은 경기 하강을 알려준다는 논리이다. 이와 관련해 자크 드 라로시에르 전 프랑스 중앙은행 총재는“중앙은행이 신속하게 긴축하지 않고 머뭇거리는 사이 고부채에 시달린 경제에 인플레이션까지 닥친다면 스태그플레이션으로 추락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지난 10년간 세계 경제는 GDP 대비 355% 수준의 부채를 쌓아 놓았다.



박병우 기자 pbw@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