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한국 박병우 기자] 달러화 강세가 수출업자들의 금융 여건을 압박하면서 수출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신현송 국제결제은행(BIS) 조사실장은 발렌티나 브루노 아메리칸대학교 금융학 교수와 공동으로 싱크탱크 유럽경제정책연구센터(CEPR)의 포털(VOX EU)에 기고한 ‘달러와 수출’이란 제목의 칼럼에서 이같이 밝혔다. 일반적으로 달러화 약세 때는 글로벌 교역량이 활발해진다. 반대로 강달러 시대가 오면 세계 무역이 타격을 받는다.

칼럼에 따르면, 지난 20년 동안 미국의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발표하는 달러 인덱스와 세계 국내총생산(GDP)대비 상품 수출 흐름은 뚜렷한 역(逆)의 상관 관계를 보여왔다(그림1 참조). 역의 상관관계는 달러와 수출 흐름이 반대로 움직였다는 의미이다.

이는 지난 2007~2009년 대금융 위기 이전의 수출 호조세와 위기가 닥친 후 나타난 수출 급락 등에서 입증된다. 또한 대금융 위기가 수습 국면에 들어서자 달러는 하락하고, 세계 수출 흐름은 즉시 반등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발생 이전인 2018년에 달러는 상승하고 수출 흐름이 하락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한편, 기업들은 상품 무역 시 발생 비용과 수취 대금 간 시간 차이로 인해 은행을 통해 필요한 운전 자금을 조달한다. 칼럼은 이 과정에서 달러 환율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지적했다.

프랑스 철학자 르네 데카르트의 이분법 논리가 있다. 데카르트는 정신의 본성은 육체와 구별되며, 다른 본성 없이도 하나가 존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와 유사하게 무역 세계화와 관련해서도 일부 경제학자들은 무역 활동은 대부분 시장(무역) 개방과 무역 장벽 제거의 문제일 뿐이라고 주장하곤 한다. 무역과 금융을 명확하게 구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무역론의 주장은 금융과 실질 경제에 미치는 효과가 동전의 양면이라는 점을 놓치고 있다. 금융시장에서 발생하는 사건의 영향·파장이 항상 금융시장에서만 맴돌지 않는다. 실물 경제까지 파급될 수 있다는 점을 주시해야 한다. 금융 여건도 실제 변수를 통해 경제적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림 2는 달러 인덱스와 신흥 경제의 달러표시 신용을 나타낸다. 신흥경제국(EME) 비은행 기업에 대한 달러 대출의 연간 증가율과 달러 인덱스는 부정적인 상관 관계를 보여준다. 즉, 기업에 대한 달러 대출 한도(신용)는 약달러 때 더 빠르게 증가한다. 반대로, 달러가 강세일 때 신용은 감소한다. 국제 금융학회에서는 이를 환율의 '위험 감수 통로'라고 지칭한다. 달러 환율은 신흥국의 금융 여건과 달러 신용 상황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바로미터이다.

( 출처=Vox EU )

금융 여건과 수출 간 영향력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실제 사례가 있다. 지난 2013~2016년 주로 달러 강세 요인에 힘입어 신흥 통화가치들이 하락했다. 같은 기간에 선진국 중앙은행들의 통화정책 정상화(금리 인상)가 보류되었음에도 달러가치는 4년간 30%가량 올랐다.

신 실장은 “멕시코 수출업자들의 자료를 조사해보니, 달러와 은행의 신용 공급 능력 간 중요한 연관성이 발견됐다”고 설명했다. 평소에 달러를 단기 도매로 조달하는 비중이 높은 은행은 그렇지 않은 은행보다 강달러 시 수출기업에 대한 신용 한도를 더 많이 줄였다. 신 실장은 “은행으로부터 신용 공여가 줄어든 기업의 운전자금은 연쇄적으로 쪼그라들었다“고 설명했다. 궁극적으로 기업의 운전자금 조달 비용이 높아지고, 이는 수출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

강달러가 은행의 자금조달 능력을 훼손시키고, 이는 다시 거래 기업의 신용(운전자금 대출 등) 한도에 타격을 준다. 따라서, 기업의 운전자금은 압박을 받게 되고 이는 수출 저하로 연결될 수 있다는 뜻이다. 달러가 금융 경로를 통해 수출 흐름에 영향을 미치는 구도이다.

특히 고객에게 최종 제품을 납품하는 데 필요한 시간이 더 긴 글로벌 가치 사슬에 끼여든 수출 기업일 경우, 강달러에 더 큰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납품대금을 받는 기간이 더 길어지기 때문이다.

신 실장은 “이런 현상은 반드시 위기 시 발생하는 자금경색 국면에서만 나타나지 않고, 평소 강달러 출현 시 언제든 기업들이 겪을 수 있다”고 밝혔다. 다만, 달러 신용한도 변화 시 공급망내 미치는 파장이 각기 다를 수 있다. 그나마 달러 가치에 연동되는 운전 자금 필요성이 크지 않은 내수 업종은 덜 시달릴 것으로 진단했다.



박병우 기자 pbw@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