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투명해진 ‘어게인 평창’

기자회견 하는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 (사진=연합뉴스 제공)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은 북한이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통해 조성한 남북 및 북미 간 긴장을 해소하는 시발점이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동생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개막식에 직접 참석해 마이크 펜스 당시 미국 부통령과 함께 사진이 찍힌 장면은 역사적인 북미 정상 회담을 예고하는 상징적인 장면으로 기억되고 있다.

2019년 하노이 2차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된 후 북미 간의 대화가 꽉 막혀있는 상황에서 동북아에서 연이어 열리는 2020년 도쿄 올림픽, 2022년 베이징 동계 올림픽은 남북은 물론 북한과 미국, 중국, 일본 등 주변 국가와의 교류와 대화 가능성을 예상해 볼 수 있는 결정적 기회로 간주됐다.

희망으로 남아있던 ‘어게인 2018’의 기회는 이제 멀어졌다. 우리 정부와 함께 북한의 참여를 독려해야 할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태도를 돌변했기 때문이다.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은 직접 기자회견장에 나와 북한 국가 올림픽위원회(NOC)의 자격 정지를 발표했다. NOC 자격 정지는 곧 올림픽 참가 불허를 의미한다. IOC는 북한의 도쿄 올림픽 불참을 이유로 들었다. 공식적으로 불참을 통보하지 않았다는 점을 근거로 내세운 것이다.

시계를 거꾸로 돌려보자. 김 위원장이 2018년 1월 1일 신년사를 통해 평창 동계 올림픽 참가 가능성을 언급한 후 IOC와 우리 정부는 긴박하게 움직였다. 우리 정부는 남북 대화의 물꼬를 틀 수 있는 계기로, IOC는 올림픽에 대한 전 세계의 관심을 증폭시킬 기회로 포착했다. 약 40여 일 만에 북한의 올림픽 참가 계획이 마련됐다. 우리 정부의 노력도 컸지만, IOC가 주도면밀하게 북한의 올림픽 참가를 적극적으로 지원하지 않았다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렇게 탄생한 남북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은 ‘평화의 잔치’ 올림픽을 상징했다.

당시의 기억은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 재현될 수 있다는 기대를 부추겨 왔다. 북한과 접경한 중국에서 열리는 올림픽인 만큼 중국과 혈맹 관계인 북한의 참가 가능성은 어느 때 보다 커 보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굳게 빗장을 걸었던 북한도 베이징 동계 올림픽을 건너뛰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은 우리 정부의 기대감을 더욱 증폭시켰다.

만약 문재인 대통령이 직전 동계 올림픽 개최국이자 인접국 정상 자격으로 중국을 방문하고, 김 위원장 역시 올림픽을 계기로 방중할 경우 남북 정상의 조우도 가능하다는 분석도 뒤따라 나올 정도였다.

어쨌든 이제 상황을 다시 짜야 한다. 북한의 동계 올림픽 참가 원천 봉쇄는 우리 정부의 부담을 덜 수 있는 시발점이 될 수 있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 출범 후 북미 갈등이 증폭하면서 미국 조야에서는 베이징 올림픽 보이콧 목소리가 커져 왔다. 미국이 올림픽 선수단을 보내더라도 관련 대표단이나 외교 사절은 대폭 축소해야 한다는 주장이 이어지고 있다. 이 경우 미국이 동맹국에도 비슷한 요구를 할 가능성이 있다.

미국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3연임을 앞두고 베이징 동계 올림픽이 국가 체제 선전의 장으로 이용될 수 있다는 점을 견제하려는 것일 수도 있다. 미국 정부 입장에서는 동북아 핵심 동맹인 한국과 일본 최고위층이 올림픽을 계기로 중국을 방문하는 것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베이징 올림픽을 계기로 한 북한과의 접촉이 애당초 불가능했다는 의견도 있다. 워싱턴 소재 한미경제연구소(KEI)의 트로이 스탠가론 선임국장은 자유아시아방송(RFA)과 인터뷰에서 “IOC의 징계가 없었더라고 북한이 베이징 동계 올림픽에 불참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언급했다.

다만 미국은 여전히 북한과의 대화가 필요하다는 태도를 바꾸지 않았지만 그 강도는 점점 약해지고 있다. 미국 국무부는 북한의 베이징 동계 올림픽 참가 제한에 대한 의견을 묻는 질문에 구체적인 답변을 피하면서 “미국은 한반도와 인도·태평양 지역의 평화와 안보라는 공동의 목표를 추구하기 위한 대북 문제에 대해 한국 및 일본과 계속 긴밀하게 협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동맹과의 협력이라는 원칙론을 강조한 것이지만 아프가니스탄 사태 이후 북핵 문제가 우선 순위에서 밀려난 분위기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미국은 북한이 정권 수립기념일(9·9절)을 맞아 개최한 열병식에 대해서도 논평을 하는 대신 대화를 촉구했다. 북한이 바이든 행정부 출범 후 처음 실행한 열병식에서 특별한 대외 메시지나 전략무기를 공개하지 않은 만큼 미국 측도 긴장 수위를 높이려 하지 않으려는 모습이 역력하다. 대화 진전을 위한 행동 대신 상황관리에 주력하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미국은 북한이 영변 핵시설을 재가동한 정황이 있다는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보고서에 대해서도 대응을 자제했다. 국무부는 보고서를 알고 있으며 한반도의 비핵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대화와 외교가 필요하다고 원칙적 입장만 강조했다.

미국의 대화 요구에 대한 북한의 무응답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미국의 답답함이 가중되고 있다는 정황도 포착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북한이 코로나19 사태로 강력한 봉쇄정책을 시행한 영향 탓에 미국이 북한 내부 정보에 접근하지 못하고 있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보도했다.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의 수미 테리 선임연구원은 WP에 “전문가들이 북한의 민심에 관한 미묘한 실마리를 잡아낼 길이 사라졌다”며 “이는 대북 정책 결정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마지막 희망도 있다. 올림픽이 아닌 패럴림픽이다. RFA에 따르면 국제패럴림픽위원회(IPC)는 IOC의 북한 제재가 자신들과 관계없다며 북한의 베이징 동계 패럴림픽 참가가 가능하다고 밝혔다.

올림픽에 비할 수는 없지만, 북한이 베이징 동계 패럴림픽에 참가한다면 새로운 변수가 될 수도 있다는 전망이다. 그때까지 북한 내 방역 상황이 얼마나 진전되는 지에 따라 북한의 패럴림픽 참가 여부도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그때까지 우리 정부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어떤 해결책을 마련할 것인지가 관전 포인트다.

백종민 아시아경제 뉴욕특파원



백종민 아시아경제 뉴욕특파원 cinqange@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