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러난 한미 종전선언 시각차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5월 21일 오후(현지시간) 한미 정상회담을 마치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함께 참석한 공동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한미간 종전선언에 대한 입장차가 드러났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제시한 외교 현안에도 북한 비핵화 문제는 없었다. 우리 정부가 북한과 미국의 대화를 유도하기 위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북핵 문제에 대해 진정한 의지가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마저 나오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이 문제가 있다는 미국 조야의 불만도 본격화하고 있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보좌관이 문재인 대통령이 제안한 종전선언에 대해 한미 간에 시기와 조건에 대한 시각 차이가 있다고 언급한 후 해리 카지아니스 미 국익센터 한국 담당 국장은 보수매체 폭스뉴스 기고를 통해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 접근법을 통렬하게 비판했다.

카지아니스 국장은 핵을 용인하면서라도 미국이 북한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해온 인사다. 2차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당시에도 국제 프레스 센터에서 우리 정부 초청으로 북미 회담에 대한 견해를 밝혔던 지한파 인사다.

보수 진영의 지한파 인사가 바이든 정부에 비판적인 보수 언론을 통해 비판에 나선 것은 미국이 중국과의 갈등에 주력하며 북한 문제를 등한시하고 있다는 판단에 근거하고 있다.

카지아니스 국장은 ‘바이든 정부의 대북정책은 재앙이다. 이제는 진지해져야 한다’는 제목의 기고를 통해 바이든 정부의 대북 정책 실정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카지아니스 국장은 조건 없는 대화만 내세우며 시간만 보내고 있는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 정책이 긴급성을 상실해 이미 실패했다고 규정했다. ‘전략적 인내’라는 정책을 앞세워 북한 문제를 소홀히 다루다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을 위한 시간만 벌어 준 버락 오바마 전 행정부의 오류를 바이든 행정부도 고스란히 답습하고 있다는 진단이다.

카지아니스 국장은 오바마 정부 시절에 대북 관계에 개입한 관료들이 바이든 행정부에 포진해 있으면서 전략적 인내 전략을 살짝 재포장해 시행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대로 토니 블링컨 국무부 장관, 웬디 셔먼 부장관은 오바마 정부에서도 북한 문제에 관여한 인사들이다. 이들이 국무부를 맡고 있는 이상 대북 접근이 달라질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판단이다.

전략적 인내에 대한 카지아니스 국장의 우려는 상당하다. 그는 전략적 인내가 지정학적 문제를 미루기 위한 워싱턴의 ‘사탕발림’이라고 진단했다. 북한이 먼저 핵무기를 폐기하거나 진정한 양보를 하지 않는 한 미국이 행동할 일이 없다는 점을 시사한다는 설명이다.

카지아니스 국장은 북한이 대화를 위해 자리에 앉지 않는다면 바이든 행정부는 아무 일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북한이 최근 연일 미사일 시험발사에 나선 것도 바이든 행정부의 책임이라고 판단했다. 바이든 정부가 내놓을 카드가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북한이 미사일을 쏘아대는 것은 당연하다는 분석이다. 북한이 아니라 다른 국가라도 같은 반응을 보일 것이라고 했다.

그는 “바이든 정부의 전략이 북한이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순항미사일, 극초금속 미사일 등 첨단 미사일을 확보하는 이유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런 현상이 지속될 경우 북한이 과거의 극단적인 대결 구도로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 우리 정부가 현상 유지를 탈피해야 한다며 종전선언을 재촉하는 것도 이런 이유가 있다. 카지아니스 국장은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ICBM을 시험발사하는 것도 배제할 수 없다고 추정했다.

카지아니스 국장의 처방은 명확하다. 지금이라도 미국이 북한에 대한 정책을 공개하고 북한에 원하는 바와 무엇을 양보할 수 있는지를 밝히라는 것이다. 미국은 북한 정책 재검토를 완료한 후 관련 내용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그는 아울러 비핵화가 목표이며 북한에 적대적이지 않다는 말을 반복하는 것은 헛된 꿈이라면서 일련의 합의를 통해 신뢰부터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책임은 바이든 대통령의 몫이다. 바이든 대통령이 직접 북한 문제가 미국 안보의 핵심이라는 점을 공언하고 전 행정부 차원의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런 상황을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바이든 대통령이 주요 20개국(G20)과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 참석을 위해 유럽으로 향했지만 어느 당국자도 북한 핵문제가 주된 대화 주제가 될 것이라고 언급하지 않았다. 바이든 대통령은 아세안 정상회의와 동아시아 정상회의에서 연이어 중국의 대만 압박을 성토했을 뿐이다.

G20 회의에서도 바이든 대통령의 목표는 중국임이 명확하다. 지도자의 입장이 분명하다 보니 당국자들의 입장도 다를 수 없다. 토니 블링컨 국무부 장관도 ‘외교의 현대화’를 주제로 국무부 산하 ‘외교연구원’(FSI)에서 행한 연설에서 기후변화와 세계보건, 사이버 안보와 신흥기술, 경제, 다자외교 등 총 5개 분야를 집중 투자 대상으로 거론했다.

미국이 북한을 외면하고 중국을 겨냥하는 사이 북중의 결탁도 우려된다. 중국이 양제츠 중국 공산당 외교 담당 정치국원과 리룡남 주중 북한 대사와의 만남을 공개한 것은 예사롭지 않다.

중국 외교부는 성명을 통해 양 정치국원이 북한과 고위급 교류를 유지하고 전략적 협조를 강화하고 싶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미중 갈등이 격화하는 상황에서 북한이 중국 쪽에 설 경우 바이든 행정부의 입지는 더욱 좁아질 수 있다.

백종민 아시아경제 뉴욕특파원



백종민 아시아경제 뉴욕특파원 cinqange@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