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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호 객원기자 칼럼] 글로벌 공급망 재편, 적극적인 변화 요구

  •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0월 31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로마 누볼라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공급망 관련 글로벌 정상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1980년대는 세계화의 시대로, 기업의 경영에도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기업 내부에서는 핵심적인 사업에 치중하고 단순 반복적인 작업은 외주(outsourcing)를 주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세계적인 차원에서 나타났는데, 아예 부품 또는 완제품 생산을 외국에 맡기는 오프쇼어링(offshoring)이 그것이다.

공급망은 글로벌한 차원으로 재편됐고 효율성과 비용이 그 기준이 됐다. 조금이라도 낭비적인 요소가 있으면 바로 제거됐고, 꽉 짜인 공급망은 팽팽하게 당긴 줄과 같은 상태로 돌아갔다. 비용을 줄이기 위해 재고는 최소화됐고, 수요 증감에 따라 상품 공급은 즉시, 그리고 탄력적으로 조정됐다.

이러한 공급망 중심에 중국이 있다는 것을 주목할 만하다. 이미 세계적인 생산기지로 부상하고 있던 중국은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계기로 그 비중이 폭증했다. 2019년 기준으로 세계 시장에서 중국 제조업의 부가가치 비중은 28.7%로 다른 나라를 압도하고 있다. 중국을 중심으로 글로벌 공급망이 구축돼 왔던 것이다.

그러나 무려 40년간 잘 운용되던 시스템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이라는 팬데믹을 만나자 툭툭 끊어지며 숨겨진 허점을 드러내고 만다. 전염병이 차츰 진정되면서 수요는 폭증하는데, 여기저기 마비된 공급망으로 인해 공급이 따르지 못한 것이다. 외국 생산기지 봉쇄, 노동력 부족에 따른 물류시스템 훼손, 원자재가격 폭등이 각각 일조를 했다.

일찍이 일본 수출규제로 한바탕 홍역을 겪었던 우리나라도 여파를 피하지 못했다. 자동차용 반도체 수급이 차질을 빚으면서 생산라인이 멎었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요소수 공급이 중단되자 화물운송에 어려움을 겪었다.

기업은 이러한 사태에 직면하자 전략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효율성보다는 안전성이 중시되기 시작했고, 생산기지를 자국이나 인접한 국가로 옮기는 리쇼어링(reshoring)을 검토하거나 그것을 실행에 옮기는 것이다.

마침 미·중간 경쟁이라는 새로운 요소가 핵심으로 등장했다. 그동안 하청기지에 불과했던 중국이 첨단기술에 도전하면서 ‘제조 2025’라는 창대한 계획까지 수립했다. 인공지능(AI), 전기차, 배터리에서 두각을 나타냈으며 반도체에 엄청난 돈을 쏟아 부으면서 기술강국으로 도약하고 첨단산업을 장악하려는 야심을 드러냈다. 미국이 이것을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을 리 만무하다.

중국 IT 산업의 핵심인 화웨이를 5G 통신의 글로벌 공급망에서 몰아내고, 미국 기술이 10% 이상 들어간 장비의 중국 수출을 금지함으로써 고급 반도체 기술이 중국으로 흘러 들어가는 것을 차단했다. 올해 취임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반도체·배터리·의약품·희토류 등 전략물자 공급망 검토를 지시했다.

미국의 전략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는 자국 내 투자 및 외국자본 유치를 통해 핵심 시설을 구축하는 것이다. 미국은 혁신경쟁법을 제정해 첨단기술 개발에 총 2500억달러를 지원하려고 하는데, 특히 반도체 분야에 540억달러가 배정돼 있다. 또 대만의 TSMC와 우리나라의 삼성전자는 이미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건설한다는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둘째는 자국과 가깝거나 중요한 산업역량을 가지고 있는 나라를 하나의 진영으로 편성해 공급망을 짜고 여기로부터 중국을 배제하는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10월 31일 ‘글로벌 공급망 정상회의’를 개최해 유럽 주요국은 물론이고, 쿼드(Quad·미국, 일본, 호주, 인도 안보협의체) 참여국인 인도·일본·호주, 그리고 우리나라를 위시한 14개국을 초청했다. 여기서 그는 “실패할지도 모르는 단일 공급원에 의존하지 않으려면 우리는 공급망을 다각화해야 한다”고 말해 중국을 겨냥했다.

이러한 미·중 갈등과 글로벌 공급망 재편 움직임은 다른 나라들에게 어려운 숙제를 내주고 있다. 현실적으로 미국의 주문을 거절할 수 없으나 경제적으로 중요한 중국을 완전히 배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 이러한 흐름에 적절히 올라탐으로써 중요한 물자 공급을 원활하게 하고, 전략산업을 육성해 글로벌 공급망에서 핵심적인 지위를 확보해야 한다.

일본의 경우에는 일찌감치 지난해 4월 국가안전보장국 산하에 ‘경제반’을 창설해 이 문제에 대한 대비를 시작했다. 같은 해 6월에는 자민당 정무조사회 아래에 ‘신국제질서창조전략본부’를 만들어 ‘경제안보전략의 책정을 향해’라는 기본적인 대응전략을 마련했다. 이것은 경제안보담당상이라는 새로운 부처의 신설로 이어졌고, 내년에는 ‘경제안보법안’이 제정될 전망이다.

일본 정부의 목표는 반도체 등 주요 물자의 일본 내 생산기반을 확대하고, 연구개발을 지원해 첨단기술에서 앞서나가며 핵심 동맹국인 미국과의 관계를 공고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2019년 일본의 대중국 수출비중은 19.1%로 중국을 완전 배제하는 것은 곤란하기 때문에 어떻게 미·중간 균형추를 잡을 것인지를 놓고 고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지난 5월 ’K-반도체 전략‘을 내놨고 메모리는 물론이요 시스템반도체에서도 2030년까지 파운드리 세계 1위와 팹리스 시장점유율 10%를 달성한다는 목표를 수립했다. 글로벌 공급망 불안에 대해서는 여러 부처로 구성된 ‘경제안보 핵심품목 태스크포스’를 통해 대응할 예정이다. 또 특정국 의존도가 50% 이상이거나 모니터링이 필요한 4000여 개 품목을 대상으로 조기경보시스템(EWS)을 가동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정부 대응은 종합적이지 못하며 체계적인 점도 부족하다. 현재 첨단 산업 육성은 특별법 형태로 개별적으로 시행되고 있어 전체적인 그림이 그려져 있지 않다. 새로운 글로벌 공급망 재편에 어떻게 참여할 것인지에 대한 대응책도 미비하며 미·중간 갈등에 어떻게 균형을 잡을 것인지에 대한 고민도 구체화돼 있지 않다.

공급망 관리에서도 첨단기술을 도입해 앞서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기존 공급망은 각 영역에서 분리된 시스템을 사용했기 때문에 제품 이력을 추적하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모든 거래 상황을 통합적으로 파악하고 관리할 수 있으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데, 블록체인이 그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블록체인은 그것을 관리하는 중앙기관이 존재하지 않고, 모든 거래가 공동의 장부에 실시간으로 기록되며, 위변조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이는 제품 이력을 즉각 파악하고, 위조품을 방지하며, 배송 지연을 막을 수 있게 한다. 사물인터넷(IoT)과 결합하면 많은 과정에서 자동화가 가능하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은 우리에게 어려운 과제를 제시함과 동시에 절호의 기회도 제공하고 있다. 앞서가는 4차 산업혁명 기술을 이용해 공급망에서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새로운 무역질서 수립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보다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전략수립이 필요하다. 단순히 벌어지는 일에 대응한다는 자세를 가진다면 궁지에 몰릴 것이다. 이 중요한 분기점에서 현명한 선택이 이뤄지기를 기원한다.

정인호 객원기자 yourinho@naver.com

● 정인호 객원기자 프로필

▲캘리포니아 주립대 데이비스 캠퍼스 경제학 박사 ▲KT경제경영연구소 IT정책연구담당(상무보) ▲KT그룹컨설팅지원실 이사 ▲건국대 경제학과 겸임교수 등을 지낸 경제 및 IT정책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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