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열린 ‘CES 2022’는 전 세계 최고의 기술 기업들이 자신들의 비전과 새로운 제품을 선보이는 자리다. 삼성전자는 ‘미래를 위한 동행’을 주제로 기조 연설에 나섰다. 첨단 미래 기술을 뽐내기 앞서 한종희 삼성전자 부회장은 기조연설을 통해 지속가능한 미래를 강조했다.

이를 위해 제품 라이프 사이클 전반에 걸쳐 순환경제를 구축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지금까지 생산은 재료로 부품을 만들어 조립하고 완성품을 만들어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사업이었다. 순환경제는 생산, 유통, 사용, 폐기 과정을 거친 후 재활용을 통해 다시 생산으로 연결하는 것이다.

우선 삼성전자는 올해 지난해 보다 30배 이상 많은 재활용 플라스틱을 활용해 제품을 만들 계획이며 2025년까지 모든 모바일, 가전제품을 만들 때 재활용 소재를 사용하겠다고 밝혔다. 포장 단계에서는 TV 박스에 재활용 소재를 적용했는데, 올해는 박스 안에 스티로폼, 홀더 등 부속품도 재활용 소재를 사용하기로 했다. 제품을 사용할 과정도 개선할 계획이다. 2025년까지 TV 등 디스플레이 제품과 스마트폰 충전기의 대기 전력을 제로에 가까운 수준으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공개했다.

세트 업체의 이같은 방침은 전체 공급망에 영향을 준다. 순환경제가 어려운 것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고리를 끊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플라스틱을 사용하는 업체는 친환경 플라스틱이 없어서 못 쓴다고 했고, 친환경 플라스틱 업체는 쓴다는 곳이 없어서 못 만든다고 했다. 서로 핑계를 대고 있지만 속내는 비용을 낮추고자 하는 욕망이 숨어 있다.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동시에 순환경제로 전환 해야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DC) 보고서에 따르면 폐플라스틱의 14% 정도만 재활용이 된다. 나머지는 매립이 62%, 소각이 24%로 대부분 그냥 버려진다. 한국은 국내 플라스틱의 재활용률이 66%에 달한다는 발표도 있었다. 이는 폐플라스틱을 소각해 열, 전기 에너지로 사용하는 것은 ‘에너지 회수’를 재활용으로 분류를 하기 때문이다. 실질적인 의미의 재활용은 사실상 전무하다.

플라스틱을 재활용 하는 방식은 물질 재활용, 화학 재활용으로 나뉜다. 물질 재활용은 플라스틱을 파쇄해 세척 후 녹여서 펠릿을 만드는 방식이다. 화학 재활용은 플라스틱의 화학 구조를 분해시켜 순수한 원료 상태로 되돌리는 방식이다. 플라스틱은 원유를 화학적으로 재구성해 만들어진다. 원유가 아니라 폐플라스틱으로 새로운 플라스틱을 만드는 플라스틱 재활용 산업을 ‘도시 유전’이라고 부른다.

플라스틱 소재를 만드는 업체들도 앞다투어 재활용에 도전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의 자회사 SK지노센트릭은(옛 SK종합화학)은 아시아 최초로 재생 폴리플로필렌(PP) 생산 공장을 설립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CES 2022에서 미국 퓨어사이클 테크놀로지과 생산 공장 설립을 위한 주요조건합의서를 체결했다. 롯데케미칼은 2030년까지 재활용 제품 100만톤을 판매한다는 로드맵을 발표했다.

2030년까지 PET, ABS(고부가 합성수지) 등 현재 생산중인 프라스틱을 재활용으로 전환하며 물리적, 화학적 재활용 기술을 모두 활용할 계획이다. GS칼텍스는 폐플라스틱 열분해유를 석유정제공정에 투입하는 실증사업을 지난해 말 시작했다. 열분해유는 폐플라스틱을 화학적 재활용 공정을 통해 만든 액체연료다. 첫 단계로 열분해유 약 50톤을 여수공장 고도화 시설에 투입했다. SK케미칼의 세계 최초로 화학적 재활용 방식으로 친환경 소재 코폴리에스터를 만들었다. 로레알, 에스티로더 등 글로벌 화장품 업계는 친환경 포장재 사용을 위해 코폴리에스터로 만든 용기를 주문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말 ‘한국형 순환경제 이행계획’을 마련했다. 우선 석유화학 플라스틱을 친환경 혼합 바이오 플라스틱으로 전환을 유도하고 2050년까지 순수바이오 플라스틱으로 대체하는 내용을 담았다. 또 플라스틱 제조업체에 대해 재생원료 사용 의무를 2023년부터 부과하며 플라스틱 페트의 경우 2030년까지 30% 이상 재생원료 사용 목표를 부과할 계획이다.

재활용 플라스틱을 활용하겠다는 곳이 있고 만들겠다는 곳도 있지만 과제는 아직 남아 있다. 바로 폐플라스틱을 모으는 일이다. 국내 플라스틱 재활용 시스템은 수거, 선별, 처리 세단계로 나뉜다. 서울환경연합에 따르면 전체 플라스틱 폐기물 중 물질 재활용이 되는 비율은 30% 남짓에 불과하다. 플라스틱을 ‘제대로’ 재활용 하려면 깨끗이 세척해 다른 재질의 부속품을 제거하고 PET, PP, PS 등 재질에 따라 분류를 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소비자들에게 모든 플라스틱을 재질별로 분리 배출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현실성이 없다. 그래서 폐플라스틱을 수거하고 분류하는 작업은 일일이 수작업으로 이뤄지고 효율성이 낮다. 순환자원 회수로봇을 만드는 수퍼빈 등 스타트업이 수거 분류의 효율성을 높이는 솔루션을 만들어가고 있지만 대규모 폐플라스틱을 수거하려면 규모의 경제가 필요하다. 소비자들이 직관적으로 분리배출을 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고 생산 단계부터 재질 구조를 개선해 분리배출의 부담을 줄여야 한다.

미래 산업은 현재 산업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사람의 경험을 대체하는 무언가다. 내연기관차의 시대가 저물고 전기차 시대가 오듯, 석탄발전이 가고 재생에너지 발전이 오는 거대한 흐름이다. 이 같은 흐름은 기술 변화에 따라 폴더폰이 스마트폰으로 바뀐 산업 패러다임 전환과 마찬가지다.

사람의 경험을 바꾸고 과거로 회귀할 수 없다. 전 세계 플라스틱 시장 규모는 약 5600억 달러, 600조원 수준이다. 이 시장은 각국 정부의 탄소중립 방침에 따라 회귀할 수 없는 구조로 바이오, 재활용 플라스틱으로 대체될 전망이다.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플라스틱을 버린 후 수거하고 다시 플라스틱을 만드는 순환경제는 매우 유명한 미래 산업이다.

● 권순우 머니투데이방송 기자 프로필

서강대 신문방송/경영학과를 졸업했다. 경제 기자로서 경제금융계를 10년간 취재하다 지금은 전자, 자동차 등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기업들을 담당하고 있다. 유튜브 <발칙한경제>를 진행하고 있고 KBS1 라디오 <성공예감 김방희입니다>와 유튜브 <삼프로TV>에 고정 출연하고 있다. ESG에 관심이 많고 저서로는 <수소전기차시대가 온다>, <발칙한경제>가 있다. ESG라는 추상적인 가치가 경영 현장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취재하고 있고 더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권순우 머니투데이방송 기자 weeklyhk@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