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 칼럼

본래 유럽에서 태동한 ESG 개념에서 ‘ES’와 ‘G’는 한 몸통이다. (사진=유토이미지 제공)
국내에서는 ‘환경·사회·지배구조’(ESG) 중에서 ‘환경·사회’(ES)와 ‘지배구조’(G)를 구분해 무엇이 더 중요한가, 따라서 무엇부터 문제를 풀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주로 전문 투자자 그룹에서 이 문제를 제기하면서 우선순위에 대한 논쟁을 하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는 ESG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기인된 불필요한 논쟁이다.

본래 유럽에서 태동한 ESG 개념에서 ‘ES’와 ‘G’는 한 몸통이다. 즉 기업의 중요한 의사결정 메커니즘인 ‘G’가 ‘주주’만을 배려하는 것이 아니라, ‘지구 환경’에 미치는 영향과 ‘다양한 이해관계자’ 이익까지 함께 통합적으로 고려한다는 뜻에서 ‘G’는 ‘ES’와 동전의 양면이라고 할 수 있다.

이해를 돕기 위해 달리 표현하자면, ‘G’는 ‘ES’에 공히 적용되는 공통분모다. 이는 기업경영 의사결정 과정에서 ES 요소가 고려된 G 메커니즘이 잘 작동돼야 장기적 기업가치가 제고된다는 믿음에 근거한다.

기실 자본주의 패러다임이 바뀌면서, 기업경영의 위험 및 기회요인도 진화, 확대, 발전해왔다. 20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아동노동이 문제되지 않았으나, 지금은 고용주가 감옥에 갈 만큼 중대한 사안이 됐다. 당시만 해도 과잉노동, 강제노동, 위험 노동, 괴롭힘 노동 문제가 중요하지 않았으나 지금은 중대한 위법사항일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큰 지탄을 받는 사안이 됐다.

작업장 안전 문제는 지난 HDC현대산업개발 아파트 붕괴사건처럼 멀쩡한 회사도 한 방에 훅 보내는 치명적인 일이다. 또한 지난 세기에는 양성 불평등, 즉 직장 내 성 차별이 보편적이었으나 지금은 대단히 시대착오적인 이슈가 됐다.

탄소문제만 해도 완전히 달라졌다. 산업혁명 이후 수백 년간 기업들은 탄소를 많이 내뿜을수록 경영성과에 좋았다. 공장 굴뚝에서 내뿜는 연기는 곧 생산 및 매출 증대, 그리고 기업 성장의 상징과도 같았다. 그러나 지금은 많이 내뿜을수록 기업가치에 악영향을 미친다. 오히려 돈을 지불하고 그만큼 연기를 내뿜어야 하는 시대가 되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기업가치 제고의 문제와 탄소배출 저감의 문제는 한 몸통이 아니겠는가. 또한 상장사의 경우, 각종 노동 이슈, 작업장 및 제품 안전이슈 등을 기업설명회(IR)의 관점에서도 관리해야 할 이슈가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이러한 ‘ES’ 이슈를 고려하는 것이, 오직 주주이익만을 고려하는 전통적이며 한국적인 ‘G’이슈보다 후 순위 이슈일까. 아니면 ‘G’이슈부터 풀고 나중에 다뤄야 할 사안일까. 답은 앞서 말했듯 동시에 함께 풀어야 시대적 과제라고 말할 수 있다.

국내에서 이러한 근본적인 오해가 발생하고, ESG를 하나의 통합된 개념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그중 으뜸은 한국에 기업지배구조를 처음 주도적으로 소개한 일군의 학자들에 그 책임이 있다고 본다. 즉 그들은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이후 지난 20여년간 그들은 주주자본주의 관점 하에서의 G만을 줄기차게 외쳐오고 있다. 학문적 업데이트에 게을렀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그렇게 외쳐왔음에도 그 성과는 전혀 없었다. 아니 오히려 퇴보해 왔다. 그렇다보니 ‘주주’인 투자자들은 이제 화가 났고 뿔이 난 것이다. 자신들의 이익인 G 이슈 이외에 다른 이해관계자 이익을 배려하는 듯한 ES 이슈는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게 됐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상장기업 사외이사제도는 이제 보편화됐으나, 실효적이지 못한 채 유명무실할 뿐이다. 달리 표현하자면 주요 상장사의 사외이사 자리는 교수들, 은퇴공무원들, 변호사 등 전문가 집단의 부업수단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여전히 지배주주들은 자사주 마법, 쪼개기 상장 등 편법적 자본거래 등을 이용해 그 지배력을 확장하고 있다. 이는 곧 일반주주들의 귀중한 재산이 지배주주들의 포켓 머니화되는 것과 다름없다. 그러나 그 많은 사외이사 누구도 이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거나 막아내지 못한다.

대한민국 상장사의 평균 배당 성향은 여전히 이머징마켓 평균에도 못 미치고, 지배주주들은 배당 대신 다양한 형태의 특권적 소비를 향유하고 있는 상황이다. 결국 가장 큰 피해를 입고 있는 이해관계자는 코스피나 코스닥 시장에 투자하고 있는 동학개미라는 이름의 일반주주들이다.

따라서 단기적 관점에서 볼 때 이들에게는 ES가 전혀 중요할 리 없다. 오로지 이들에겐 자기자본이익률(ROE)을 높이고, 배당수익률을 제고해 주가가 상승함으로써 시장에서 빼앗긴 돈을 되찾아 오는 일념 이외에는 없다. 이런 와중에 기업의 온실가스 문제, 산업재해 문제, 소비자 명성, 종업원 관계 등의 이슈는 한가한 담론으로 보여진다.

나는 이러한 동학개미들의 절규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는다. 그러나 이렇게 G(배당, 자사주 소각, 단기 주가 상승 등)에만 신경 쓰면 투자가 ‘겉으로 남고 뒤로 밑지는 격’의 장사처럼 될 것이다. G는 기업을 서서히 망가뜨리지만 새로운 패러다임 경제 하에서 ES 이슈는 기업을 한방에 훅 보낼 수 있는 이슈이기 때문이다.

이번 HDC현산, 과거 대한항공, 남양유업 사례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니 ESG와 일반주주 친화적 G는 수레의 양 바퀴처럼 함께 가야 할 문제다. 그러니 ES가 먼저냐, G가 먼저냐는 논쟁은 닭과 달걀 논쟁과 같이 소모적이고 무의미한 논쟁에 불과하다.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

●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 프로필

KAIST 경영대학원 대우교수와 대통령 직속 국민경제자문회의 위원을 역임하고 현재 금융위원회 산하 금융발전심의위원회 위원과 (사)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6년 연기금을 비롯한 기관 고객사에 ESG 분석과 운용 전략을 자문하는 ESG 전문 리서치 회사 ㈜서스틴베스트를 설립해 대표를 맡고 있다. 저서로는 <한국형 사회책임투자> 등이 있다.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