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테크 콘퍼런스 '넥스트 모빌리티 : 네모 2022'(NEXT MOBILITY : NEMO 2022) 에서 모델들이 카카오모빌리티 자체 기술 자율주행 차량을 선보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해 자본 시장의 화두가 됐던 물적분할 후 상장이 특이한 양상으로 번지고 있다. 개인주주들의 반발이 이어지자 이를 우회하는 방식들이 나타나고 있다. 물적분할이라는 형식만 피하면 되는 것인지 근본적인 고민을 하게 한다.

KT는 클라우드/데이터센터 사업부를 분할하기로 했다. 물적분할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을 의식해 물적분할 방식을 선택하지 않았다. KT는 법인을 신설하고 그 법인에 클라우드 사업부를 현물출자 하는 방식으로 분할을 추진하기로 했다. 물적분할과 법인 신설 후 현물출자는 실질적으로는 같다. 다만 명목이 주주들이 싫어하는 물적분할이 아닐 뿐이다.

KT는 분할 이후 상장을 하는 대신 사모펀드에 주식을 매각하는 방식을 택했다. 배터리 사업부 물적분할로 논란을 빚었던 SK이노베이션 역시 배터리 자회사 SK온의 일부 지분을 사모펀드에 매각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상장에 대한 반발을 우회하는 방식인데, 이것이 과연 주주들이 원했던 것인지 의문이 남는다. 상장은 불특정 다수에게 지분을 매각하는 것이고, 사모펀드 매각은 특정 소수에게 매각하는 것이다. 모회사 소액주주들은 성장성 높은 사업을 보유하고 싶었던 거지 불특정 다수에게 파느냐, 특정 소수에게 파느냐에 관심이 있었던 것이 아니다.

KT는 모회사 주주들에게 당근책을 포함시켰다. 자회사 주식을 현물 배당할 수 있는 정관 개정을 추진하기로 했다. KT가 클라우드/데이터센터를 분할하기로 발표한 당일 주가는 소폭 상승 마감했다. 시장 반응 자체는 나쁘지 않다. 물적분할이 문제였던 것인지, 분할 후 상장이 문제였던 것인지, 인센티브가 문제였던 것인지 불분명하다.

자회사 상장에 대한 시장의 반응은 일관적이지 않다. LG화학이 배터리 사업부를 분할 하기 전까지만 해도 자회사 상장은 주주가치를 높이는 이벤트로 인식됐다. 카카오의 경우 자회사 카카오게임, 뱅크, 페이를 상장시키면서 높은 가치를 인정 받아 주가가 상승했다. SK그룹도 SK바이오팜, 바이오사이언스, SKIET를 상장시키며 높은 가치를 인정 받았다. 지금은 대선주자들까지 나서서 자회사 상장에 대해 성토하고 있지만 작년 초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아마도 주주가치에 대한 시장의 민감도가 성숙하지 못했기 때문일 게다.

180도 달라진 시장 반응에 기업들은 당황하는 분위기다. 자회사 상장을 추진하던 기업들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일단 카카오는 카카오엔터, 모빌리티 등 자회사 상장을 강행하겠다는 입장이다. 배재현 카카오 최고투자책임자는 자회사 상장 논란에 대해 “카카오의 자회사 상장은 공동체의 성장과 동반해 카카오의 주주 가치를 크게 증대시켰다는 점에서 논란이 되는 쪼개기 상장 이슈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며 “사업 초기 분사를 통한 외부 자금 투자가 필수였다"고 설명했다.

KT는 클라우드/데이터센터 사업외에 밀리의 서재(오디오북), 케이뱅크(인터넷전문은행)의 상장을 추진할 예정이다. SK그룹은 원스토어, 티맵모빌리티, 11번가 등의 상장을 준비하고 있고 LS그룹의 LS일렉트릭은 친환경차 부품 생산 부문을 물적분할 할 예정이다. 반면 CJ ENM은 콘텐츠 제작부문을 물적분할해 가칭 ‘스튜디오타이거’를 설립하는 방안을 철회했다.

모자회사 동시 상장은 근본적으로 주주간 이해상충의 문제를 안고 있다. 전체 기업 집단 차원에서 바람직한 의사결정도 개별 기업의 기업가치에는 악영향을 줄 수 있다. 예를 들어 그룹 차원의 신성장 투자를 위해 개별 기업의 자금을 활용하는 경우가 있다. 소액주주는 기업 집단이 아니라 개별 상장 회사에 대해서만 이해관계가 있다. 전체를 지배하는 대주주는 필요하다고 판단할 수 있지만 개별 회사의 소액주주에게는 위험만 키우는 일이 될 수 있다.

그동안 국내 기업들은 소액주주의 주주권 보다는 대기업 집단의 성장에 더 방점을 찍고 경영을 해왔다. 주력 업체를 중심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며 많은 계열사를 거느리는 선단식 경영은 한국 경제 성장의 비결로 인식돼 왔다. 그래서 수월한 자금 조달을 위해 수많은 그룹 계열사들이 동시 상장돼 있다. 재계 관계자는 “단기적인 주가 하락을 감수하더라도 장기적인 자회사의 성장이 모회사 기업 가치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주식 계좌수가 6000만개가 넘어서는 등 자본시장에 참여하는 사람이 늘고 주주권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며 이른바 오너의 의지대로 모든 기업 경영이 이뤄지는 것에 대한 반발이 생기고 있다.

기업도 투자자도 이런 변화에 익숙하지 않다보니 시장 반응도 명확히 설명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모회사 주주에게 인센티브를 주는 것도 그렇다. 반발하는 주주들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것은 이전보다는 주주 권익 보호를 위한 진일보한 대응이다. 다만, 주주들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작은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식의 중장기적으로 이해상충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지배구조 개편을 추진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모습인지에는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이에 더해 상장을 대하는 한국 기업들의 태도가 여전히 지배구조 투명성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는 것이 느껴진다. 자금 조달을 위해 손쉽게 상장을 선택하는 것은 상장 이후에도 모회사 혹은 모회사의 최대주주가 마음대로 자회사를 경영할 수 있다는 인식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기업공개(IPO)는 혼자 주인이던 회사에 다른 사람을 주인으로 맞아 공공(Public) 회사가 된다는 의미다. 더 이상 ‘자기’ 회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김우진 서울대 교수는 “혼자 지배를 하고 있을 때는 이익을 얻든 손해를 보든 본인 책임이지만 기업공개를 하게 되면 다른 주주들의 이해관계까지 함께 고려해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는 인식이 매우 중요하다”며 “어떤 제도적 기반을 갖춘다 하더라도 모든 주주의 이익을 챙겨야 한다는 인식이 없으면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주주권익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자본시장에서는 일관성 없고 혼란스러운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다만 다른 주주를 들이는 행위의 무거움을 인식하는 것은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개선하기 위해 가장 선행돼야 할 과제다.

● 권순우 머니투데이방송 기자 프로필

서강대 신문방송/경영학과를 졸업했다. 경제 기자로서 경제금융계를 10년간 취재하다 지금은 전자, 자동차 등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기업들을 담당하고 있다. 유튜브 <발칙한경제>를 진행하고 있고 KBS1 라디오 <성공예감 김방희입니다>와 유튜브 <삼프로TV>에 고정 출연하고 있다. ESG에 관심이 많고 저서로는 <수소전기차시대가 온다>, <발칙한경제>가 있다. ESG라는 추상적인 가치가 경영 현장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취재하고 있고 더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권순우 머니투데이방송 기자 weeklyhk@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