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 칼럼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는 우크라이나인들의 인터넷 접속을 돕기 위해 스타링크의 위성을 재배치하겠다고 말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환경·사회·지배구조(ESG) 투자와 경영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많은 기관투자자들과 기업들, 정부부처나 공공기관들마다 앞 다퉈 ESG 투자와 경영을 외치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를 마뜩찮은 눈으로도 보고 있다. 기업들과 금융기관, 공공기관들이 ESG로 자신들의 이미지를 과대포장 하려고만 할 뿐 진정성이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른바 ‘ESG워싱’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들 ESG 경영의 진정성을 테스트할 수 있는 시금석이 마련됐다. 우크라이나를 침략함으로써 민간인들을 살상하고, 더 나아가 전 세계에 전쟁의 암운을 드리우고 있는 러시아 관련 투자와 사업에 대한 태도가 그것이다. 즉 현재 러시아 기업이나 펀드 등에 투자하고 있거나 러시아와 사업협력 등을 하는 국내 투자자나 기업들이 그 투자 자금을 회수하거나, 협력을 철회할지를 지켜보는 것이다.

ESG란 명분 없는 투자와 단절함으로써 피투자 대상에게 경제적 압박을 가하는 측면도 있기 때문이다. 침략과 살상은 가장 명분 없는 아젠다이고, 때로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돈’과 ‘투자’는, ‘펜’과 ‘검’보다 더욱 강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서방의 ESG를 선도하는 주요 기업과 기관투자자들은 이를 실행하기 시작했다. 영국의 석유회사 BP 이사회는 전쟁이 발발하자 그들이 보유한 러시아 에너지기업 로스네프트 지분을 매각하겠다고 결정했고, 이미 그 지분 규모에 해당하는 250억달러(약 30조원)를 상각처리하겠다고 공식화했다. 재무제표상 손실도 감수하겠다고 선언한 것과 다름 아니다.

1조3000억달러 운용규모를 자랑하는 전 세계 2위의 노르웨이 국부펀드 역시 그들이 투자하고 있는 모든 러시아 관련 자산을 매각하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도 우크라이나인들의 인터넷 접속을 돕기 위해 스타링크의 위성을 재배치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서방의 ESG 투자자나 진영에서는 현재 러시아 국부펀드들과 합작법인(JV)을 운영하고 있는 스위스의 라파지홀심, 일본의 이온 인프라스트럭처, 프랑스의 슈나이더 일렉트릭, 스페인의 폐기물 처리기업 우르바세르, 독일의 도소매업체인 메트로 캐시 앤 캐리, 지멘스 모빌리티, 영국의 아그레코 그룹 등의 향후 대처를 매의 눈으로 예의 주시하고 있다.

만일 이들이 관련 지분을 정리하지 않을 경우 행동에 나서겠다고 말한다. 그리고 앞서 언급한 기업들은 러시아와 협력한 수많은 기업들 중 빙산에 일각이라고까지 말한다. 즉 추가적으로 더 많은 기업들을 리스트업하고 압박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최근 ESG 열풍이 불고 있는 우리나라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우선 전 세계 3위를 자랑하는 운용규모 950조원의 국민연금은 그들이 보유한 러시아 자산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에 대한 입장을 정리해야 한다. 전 세계 10위권 수준이며 220조원 자산을 운용하는 대한민국 국부펀드인 한국투자공사(KIC) 역시 그 스탠스를 정리해야 할 것이다.

이미 국민연금과 한국투자공사는 공히 ESG 투자를 선도하겠다고 국내외적으로 천명한 바 있기 때문이다. 한국투자공사는 “‘KIC=ESG’ 등식이 성립되도록 하겠다”고 공언한 바도 있다.

역사적으로도 남아프리아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 수단의 독재 정권이 인권을 탄압하고 인명을 해쳤을 때 많은 ESG 투자가들이 나서서 ESG 원칙에 따라 해당 국가들과 관련된 투자를 철회하며 압력을 행사한 사례들도 있다. 이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그밖에 ESG위원회를 만들고, ESG 경영을 경영의 중심에 놓겠다고 선언한 수많은 대한민국 대기업, 금융지주사, 공공기관들 중 러시아 관련 자산을 보유한 기관들의 향후 대처방안도 궁금하다.

말로만 하는 ESG는 ESG 투자와 경영이 아니다. 그것은 ESG라는 시대정신을 자신들의 이미지 제고를 위한 포장재로 활용하는 것과 다름 아니다. 진정한 ESG란 단기적 손실을 감수하더라도 평화와 생명을 존중하며 그 방향성과 정합적으로 행동하는 것이다.

비록 그러한 행동이 단기 손실로 이어질지라도, 길게 보면 그것은 해당 기관과 국가의 명성과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더 나아가 소프트 파워와 글로벌 리더십 수준을 제고시킨다. 이제 우리나라도 더욱 높아진 글로벌 위상에 맞게 투자와 비즈니스의 격도 함께 상향시켜야 할 때가 됐다.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

●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 프로필

KAIST 경영대학원 대우교수와 대통령 직속 국민경제자문회의 위원을 역임하고 현재 금융위원회 산하 금융발전심의위원회 위원과 (사)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6년 연기금을 비롯한 기관 고객사에 ESG 분석과 운용 전략을 자문하는 ESG 전문 리서치 회사 ㈜서스틴베스트를 설립해 대표를 맡고 있다. 저서로는 <한국형 사회책임투자> 등이 있다.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