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철 건설 성수기 앞두고 건설현장 멈춰서는 사태 올 수도

[주간한국 이재형 기자] 공사중지기간이 포함된 겨울철을 지나 봄철 건설 성수기가 돌아왔지만 건설업계는 자칫 작업장 곳곳에서 공사를 멈춰야할 위기를 맞고 있다. 시멘트와 골재 등 주요 건설자재는 원료 수급 차질과 산업재해 등 변수로 인해 공급난을 겪고 있다. 골재와 시멘트를 가공해 건설현장에 공급하는 레미콘은 유류비 부담을 견디지 못한 운송기사들이 파업까지 불사하면서 공장이 멈춰섰다. 고물가 시대에 건자재 공급 체인 전반에서 파열음이 터져나오면서,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올해 주택 공급 역시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러시아-우크라 사태 직격탄 맞은 시멘트 업계
지난달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시멘트는 원료인 유연탄 공급이 차질을 빚으면서 공급난이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시멘트 1톤을 생산하려면 0.1톤 가량의 유연탄이 필요하다. 국내 유통되는 유연탄 물량의 75%를 러시아 수입에 의존하고 있었는데, 우리나라가 서방세계의 대(對) 러시아 경제 제재에 동참하면서 관련 무역 역시 차단된 영향이 크다. 

유연탄의 국제 가격은 최근 무섭게 치솟아 지난 3월 기준 톤당 427.5달러를 기록했다. 시멘트 회사들이 가격 인상을 논의하던 지난해 말 150달러 수준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가격이 약 1분기 만에 3배 가량 뛰었다. 2020년 평균 가격(60.5달러)과 비교하면 7배 가까이 차이가 난다. 

국내 시멘트 회사들은 현재 가격대에서는 시멘트를 생산할 수록 적자가 발생하는 상황이라며 가격 인상 목소리가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시멘트 회사들은 지난 3월부터 시멘트 가격을 18% 가량 올렸고 4월 중 최소 20% 이상의 추가 인상에 나설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보유 중인 시멘트 재고 역시 넉넉지 않다. 국토교통부 집계에 따르면 전국의 시멘트 재고량은 3월 기준 70만톤 수준이다. 평년 4∼5월 시멘트 재고량이 120만톤 수준인 점을 감안하면 절반 수준에 그친 셈이다. 지난해 시멘트업계에서 친환경 설비투자를 확대하면서 재고 물량을 평소 대비 절반까지 줄인 것이 돌연 리스크로 작용했다. 

시멘트 7개사 2분기 생산량 늘린다…정부도 대책 마련 나서
이처럼 시멘트 대란 조짐이 보이자 정부도 공급 관리에 나섰다. 지난 6일 산업통상자원부와 국토부, 시멘트업계 등은 ‘시멘트 수급 안정을 위한 대책 회의’를 진행하고 민관 협력 대책을 강구했다.

우선 품귀현상을 빚고 있는 유연탄 수급 다변화 방안의 경우, 호주 등 대체국가로부터 유연탄 수입 비중을 확대하는 등 물량 확보, 연료 전환 대책을 추진한다. 앞서 정부는 유연탄 수입을 러시아와 호주가 각각 75%, 25% 맡았던 기존 비중에서 올해 1∼3월 54%, 46%로 조정한 바 있다.

국내 시멘트 업계는 생산량을 대폭 늘리기로 했다. 쌍용양회, 동양시멘트, 성신양회, 라파즈한라, 현대시멘트, 한일시멘트, 아세아시멘트 등 시멘트 7개사는 2분기 시멘트 생산량을 1분기 (1,055만톤) 보다 35.7%(377만톤) 늘리기로 합의했다. 이를 위해 시멘트 생산설비인 킬른 10기를 추가 가동, 총 가동 규모를 지난달의 22기에서 32기로 늘렸다. 월평균 약 38만톤 가량 수출해왔던 시멘트 물량은 내수용으로 돌린다. 업계는 이를 통해 2개월 치 분량인 유연탄 재고 55만톤(3월 말 기준)을 확보했다. 

이외에도 정부는 건설협회 등을 통해 시멘트 부족으로 건설공사 차질이 발생할 우려가 있는 현장을 수시로 파악하기로 했다. 철도공사 등 관계기관의 협조를 받아 철도화차 배차량을 늘리는 등 시멘트 철도 운송을 확대할 방침도 내놓았다.  

중장기적인 차원에선 순환자원과 바이오매스 등 친환경 연료로 전환해 유연탄에 대한 의존도도 낮출 계획이다. 이와 관련 정부는 내년에 '시멘트 산업 탄소중립 핵심기술개발'에 착수해 2030년까지 총 9306억 원을 지원할 계획이다. 국토부는 지난달 30일 최근 국제적인 유연탄 수급난으로 시멘트 생산 차질 우려가 심화되는데 대해 "정부는 관계부처 합동으로 건설자재 수급 불안으로 인한 건설공사 차질이 발생하지 않도록 적극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중대재해에 무너진 수도권 골재 공급망

지난 2월 3일 오후 경기 양주시 삼표산업 채석장 붕괴·매몰사고 현장에서 경찰 등 유관기관 관계자들이 합동 감식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지난 2월 3일 오후 경기 양주시 삼표산업 채석장 붕괴·매몰사고 현장에서 경찰 등 유관기관 관계자들이 합동 감식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자갈과 모래 등 골재 공급은 올초 주요 사업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중대재해 사고를 빚고 무기한 마비 사태를 빚고 있다. 서울과 인천 등지에 골재를 공급해온 삼표산업 양주채석장은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지난 2월 입건되면서 두 달째 골재 생산을 전면 중단했다. 경기도 양주시 은현면 도하리에 위치한 해당 사업장은 지난 1월 29일 석재 발파 작업을 위해 구멍을 뚫던 중 약 30만m³(높이 약 20m) 토사가 무너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현장 작업자 3명이 매몰돼 숨졌고 고용노동부는 전면 작업 중지 명령을 내렸다. 

책임자 처벌 등 사법당국의 판단을 기다리는 동안 영업 재개 시기는 무기한 연기되고 있다. 골재 공급 중단이 장기화할 경우 인근 지역의 공사 차질이 우려되고 있다. 연간 390만㎥의 골재를 생산하는 양주채석장은 업계에서 생산량이 가장 많은 현장으로 손꼽힌다. 특히 수도권 북부 골재 시장의 30%는 이곳에서 공급할 정도로 비중이 크다.

지금껏 영업정지 기간 동안 양주채석장이 공급 못한 골재는 약 60만㎥에 달할 것으로 업계는 추산하고 있다. 골재는 레미콘 배합 시 비중이 80%를 차지할 정도로 많이 쓰이는 건자재이기 때문에 대체 공급처를 구하지 못하고 공급이 끊길 경우 차질이 불가피하다. 한편 골재 가격은 지난 3월 1㎥당 1만5000원을 기록, 1만3000~1만4000원 선이었던 연초보다 20~30%가량 올랐다. 

충청 등 중부권 레미콘 파업에 공사 중단 ‘속수무책’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로 인해 시멘트 등 건설자재 수급 불안이 커지고 있다. 지난 1일 서울시내 한 시멘트공장에 시멘트 수송을 위한 화물트럭과 열차가 세워져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로 인해 시멘트 등 건설자재 수급 불안이 커지고 있다. 지난 1일 서울시내 한 시멘트공장에 시멘트 수송을 위한 화물트럭과 열차가 세워져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골재와 시멘트를 섞어 만든 반죽을 건설현장에 공급하는 레미콘 업계 역시 비용 상승에 따른 경영 위기를 맞고 있다. 골재와 시멘트 등 공급원가가 뛴데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국제 유가가 최근 급등하면서 운반비용도 올라 레미콘 업계는 이중고에 처했다. 

대전·청주·세종·공주 지역에서는 레미콘 운송기사들이 지난달 말부터 파업에 돌입하는 등 파열음이 터져 나오고 있다. 운반비는 운송기사와 레미콘 업체가 주기적인 협상을 통해 결정하는데 이들은 앞서 지역별 레미콘 제조사 협의회와 단가 조정을 위해 수차례 협의했지만 합의를 도출하지 못했다. 

운송기사들로 구성된 레미콘운송연대는 레미콘 운송료를 현행 1회당 5만1000원에서 6만1000원으로 19.6% 인상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해 믹서트럭 운반비가 8% 올랐던 점을 감안하면 올해는 두 배 이상 인상률을 요구한 셈이다. 이와 함께 제조사가 건설사 등에 레미콘 납품단가를 25% 올리면 운송비를 부담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제조사는 운송기사에게 운반비 외 유류비를 별도 제공하고 있지만 최근 국내 경윳값이 리터 당 2000원을 넘기는 등 기름값 급등으로 추가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기사들이 업무를 거부하면서 지역 레미콘 제조업체들은 물론 청주 지역 아파트 건설현장 15곳과 대전 지역 건설현장 100곳 역시 공사 중단 사태를 맞았다. 이중 청주 지역은 운송기사와 제조사가 파업 이후 합의를 도출하고 지난 5일부터 업무를 재개했다. 그러나 논산과 전북 등지에서도 파업 합류 의사를 추가로 밝히면서 파업 전선은 향후 확대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편 지난달 2일 ‘공사현장 셧다운’ 강수를 뒀던 골조공사 전문 건설사들도 향후 대형 건설사와 협상 결과에 따라 보이콧 재개 가능성을 내비쳐 긴장감이 돌고 있다. 이들은 시공사 하청을 받아 사업을 진행하는데, 최근 건자재와 노임 가격이 급등한 만큼 공사대금 인상을 원청 측에 요구하고 있다. 

골조공사 업체들로 구성된 철근콘크리트연합회는 '물가인상분에 대한 공사비 증액 요구 추가대응'과 관련한 공문을 각 회원사에 보내고 "이달 말까지 공사비 증액에 비협조적인 시공사를 파악한 후 전국 5개 연합회간 논의를 거쳐 내달 중순께 향후 투쟁방법을 확정하겠다"고 밝혔다.

한은, 건자재 공급 위기發 경기 둔화 경고음 
공공기관에서 발주하는 공사의 비용 역시 건자재 가격 오름세에 힘입어 동반 상승했다. 조달청은 지난달 17일 시설자재가격 심의위원회를 열고 올해 상반기 정부공사비 산정에 적용할 자재 7002품목, 시장시공가격 579개 품목의 가격을 결정했다. 시설자재는 알루미늄, 스테인리스, 철강재 등 주로 금속제품의 가격이 크게 오르면서 평균 4.34% 상승했다. 평균 4.48% 오른 시장시공가격은 경량철골천정틀, 바닥마감공사 등의 인상폭이 컸다. 

조달청 시설자재가격은 올해 상반기 정부공사비 산정에 적용된다. 조달청은 매년 상 하반기 2회에 걸쳐 정기가격조사를 통해 시설자재가격을 결정하는데, 표준품셈, 표준시장가격, 시중노임단가 등에 고시된 가격이 없는 자재 및 시공단가에 대해 시장거래가격 등을 반영한다.

강성민 시설사업국장은 “주요 건설자재와 인건비의 인상분을 민관협업 전담팀의 합동 조사와 검증을 통해 투명하고 적정하게 반영하고자 노력했다”며 “앞으로도 정부의 효율적 예산집행과 건설업계의 적정 이윤 확보 사이에서 상호 공감할 수 있는 정부공사비의 산정을 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심화하고 있는 건자재 공급 불안이 건설경기 전반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란 경고음도 나온다. 한국은행은 지난달 29일 '건설투자 회복 제약의 요인:건설자재 가격 급등 원인과 영향' 보고서에서 최근 크게 오른 건설자재 가격이 건설경기 회복 속도를 늦출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보고서에 따르면 건자재 가격은 작년 4분기에 이미 1년 전보다 28.5% 올랐다. 전체 건설자재에서 가격이 급등(전년 동기 대비 10% 이상)한 품목 수의 비중은 올해 초 63.4%로 나타났다. 8.9%였던 2020년 말 해당 통계와 비교하면 7배 가량 늘었다. 품목별로는 철강 등 금속제품 가격이 전체 건자재 가격 상승을 주도했고 글로벌 원자재 가격 상승, 일부 자재 공급 부족, 국내외 자재 수요 증가 등이 건자재 가격이 급등한 배경으로는 꼽혔다.

박상우 한은 조사국 동향분석팀 과장은 "건설자재 가격 상승은 건설사 수익성을 떨어뜨리고 건설경기 회복도 제약할 가능성이 있다"며 "산업연관표를 바탕으로 분석한 결과 지난해 자잿값이 올라 건설 중간투입비용이 12.2% 늘었고, 이 때문에 건설업 부가가치도 15.4% 축소됐다"고 설명했다.

박 과장은 이어 "앞으로 건설자재 가격은 글로벌 원자재가격 등 공급요인 영향이 줄면서 안정될 것"이라면서도 "과거 공급요인 주도 가격 상승기와 비교해 안정화 속도는 더디고 우크라이나 사태 등으로 불확실성도 큰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이재형 기자 silentrock@hankooki.com

 


이재형 기자 silentrock@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