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 ‘원가주의’ 원칙 강화…대중교통·수도 등 공공요금 줄인상 우려

한 아파트에 설치된 전기 계량기. 새 정부가 한국전력이 독점하는 전력 판매 시장을 점진적으로 개방하고 전기요금 체계에 원가주의 원칙을 확립키로 하면서 하반기 전기요금 인상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한 아파트에 설치된 전기 계량기. 새 정부가 한국전력이 독점하는 전력 판매 시장을 점진적으로 개방하고 전기요금 체계에 원가주의 원칙을 확립키로 하면서 하반기 전기요금 인상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주간한국 송철호 기자] 연초부터 대선 이후 공공요금 인상이 일제히 진행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왔다. 그동안 정부가 전기요금과 가스요금 등 공공요금 인상을 억눌러 왔지만 대선이 끝나면서 이 고삐가 풀릴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전기요금 등 공공 에너지요금 인상이 현실화되고 있다. 당연히 지하철, 버스 등의 대중교통과 수도요금까지 연쇄적으로 인상될 가능성이 높다.

다만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후보시절부터 전기요금 동결을 강조해 온 만큼 공공요금이 당분간 안정을 찾을 것으로 기대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새 정부 출범 이후인 7·10월에 가스 요금, 10월에 전기 요금이 잇따라 오를 전망이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전기요금에 대한 ‘원가주의’ 원칙을 강화하겠다고 밝혔고 최근 에너지 가격이 급등한 상황에서 전기요금 인상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10월 kWh당 4.9원의 전기요금 추가 인상 예고

우크라이나 사태 등 국제 정세가 이대로 불안정한 상대로 지속되면 국제 에너지가격은 하반기에도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진정 국면에 들어선 듯했던 국제유가도 러시아산 원유 금수조치에 반대하던 독일이 전향적인 입장을 밝히면서 오름세로 전환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국내 공공요금에 그대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일단 지난 1일부터 민수용(주택용·일반용) 도시가스 요금이 8.4~9.4% 인상됐다. 정부가 지난달 도시가스 요금을 평균 1.8% 인상했는데 이번 달에 가격이 더 인상된 것이다. 이에 따라 5월부터 4인 가구 기준 평균 가스 요금은 월 2450원 늘어날 전망이다. 이번 요금인상은 한국가스공사의 미수금이 1조8000억원까지 늘어나면서 지난해 말 결정됐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국제 가격 급등 등 원료비 인상요인이 발생했음에도 국민부담 및 물가안정을 고려해 민수용 요금의 기준원료비는 동결했다”며 “다만 지난해 12월 개정한 ‘천연가스 공급규정’에 따라 올해 5월부터 지난해 정산단가인 MJ(메가줄)당 1.23원을 민수용 요금에 반영해 지난해부터 급증한 가스공사의 미수금을 일부 해소해 나갈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도시가스 요금은 액화천연가스(LNG) 수입단가인 ‘원료비’(기준원료비+정산단가, 매 홀수월 조정)’와 도·소매 공급업자의 공급비용 및 투자보수를 합한 ‘도·소매 공급비’(도매 매년 5월, 소매 매년 7월 조정)로 구성된다. 정부가 LNG 수입단가인 원료비 내 포함돼 있는 기준원료비 항목을 동결한다는 것이다.

전기요금도 더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새 정부가 한국전력이 독점하는 전력 판매 시장을 점진적으로 개방하고 전기요금 체계에 원가주의 원칙을 확립키로 했기 때문이다. 전기요금에 원가 인상분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아 한전이 대규모 적자를 떠안고 있다는 지적에 따른 것인데, 결국 하반기 전기요금 인상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전기 요금은 이번 달 들어 kWh(킬로와트시)당 6.9원이 올라 4인 가구의 월평균 전기 요금 부담은 매달 2120원 정도 늘어났다. 문제는 한전이 윤 당선인이 취임한 이후인 오는 10월에도 kWh당 4.9원의 전기요금 추가 인상을 예고했다는 것이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내놓은 에너지 정책 등을 봤을 때 이 인상은 그대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지하철을 이용하는 시민들. 대중교통의 적자 폭이 지속적으로 커지고 있는 가운데 지하철과 버스 등 대중교통의 요금이 6월 지방선거 이후 인상될 가능성이 높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지하철을 이용하는 시민들. 대중교통의 적자 폭이 지속적으로 커지고 있는 가운데 지하철과 버스 등 대중교통의 요금이 6월 지방선거 이후 인상될 가능성이 높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정의당 “인수위 에너지 정책, 부적절하고 퇴행적”

새 정부는 원가주의를 기반으로 전기요금을 결정하고 물가를 자극할 수 있는 전기요금 인상요인은 원자력 발전 비중을 높여 줄인다는 계획이다. 

인수위가 지난달 28일 이 같은 내용이 담긴 ‘에너지 정책 정상화를 위한 5대 정책 방향’을 발표했다. 이 정책 방향에는 ▲실현 가능한 탄소중립과 에너지 믹스 ▲시장 기반 수요 효율화 ▲신성장 동력으로서 에너지산업 ▲튼튼한 자원안보 ▲따뜻한 에너지전환 등이다.

이 중 ‘시장 기반 수요 효율화’ 추진은 당장 전기요금 등 공공에너지 요금의 인상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특히 경쟁과 시장 원칙에 기반한 에너지 시장 구조 확립에도 나서겠다는 입장을 밝힌 인수위는 한전 독점 판매 구조 개방과 전기요금 체계 개편을 새롭게 추진할 계획이다. 특히 연료비 연동제를 통한 전기요금 인상을 시사하기도 했다.

박주헌 인수위 경제2분과 전문위원은 이날 서울 종로구 통의동 인수위에서 진행된 브리핑에서 “변동성이 높은 재생에너지 산업 특성을 고려해서라도 현재 한전이 독점 중인 전력판매시장을 변화시켜야 한다”며 “탄소중립 시대에 에너지 시장이 독점돼선 곤란하기 때문에 새 정부가 다양한 거래를 허용함으로써 독점 시장을 완화한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인수위는 이 같은 방침과 함께 전기요금에 대한 원가주의 원칙을 강화하겠다는 입장이라 전기요금에 대한 정부의 통제력이 약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결과적으로 서민들의 전기요금 인상 부담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윤 당선인의 후보 시절 전기요금 동결 공약이 취임하자마자 파기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이동영 정의당 수석대변인은 지난달 29일 국회 소통관에서 브리핑을 통해 인수위의 전력 정책 전면 재검토를 촉구하고 나섰다. 전날 인수위가 전기요금 원가주의와 요금 연료비 연동제, 그리고 전력 판매시장 점진적 개방 방안이 담긴 에너지 정책을 발표한 것에 대한 직접적인 반박이다.

이 수석대변인은 “이번 정책은 한전 적자를 비롯한 전기요금 체계의 본질적 문제는 회피한 채 탈원전을 핑계 삼아 원전 확대와 사실상 전력시장 민영화를 추진하려는 것으로 대단히 부적절하고 퇴행적인 정책”이라며 “결과적으로 기후 위기와 저소득층, 서민들의 전기요금 인상 부담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인수위는 투명한 전기요금 원가 공개와 민간발전사의 과도한 이익구조, 대기업에 특혜를 주는 전기요금 체계에 대한 개선 방안부터 내놓아야 한다”며 “인수위는 전기요금 원가 산정의 적정성, 전기요금 원가 공개, 저소득층을 역차별하는 대기업 특혜 전기요금 체계 전면 개편 등 공정하고 합리적인 에너지 정책으로 전환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인수위 “하반기 전기요금 원가주의에 입각해 결정”

한전은 지난해 역대 최대 규모인 5조8600억원의 적자를 냈다. 한전이 대규모 적자를 기록한 이유는 매출이 60조6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2조원 늘었지만 연료비·전력구입비는 41조원으로 10조5000억원 늘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유명무실해진 연료비 연동제를 정상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인수위가 원가주의를 확립하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인수위는 전기요금은 원가에 따라 정하는 것이 원칙이고 한전 적자는 전기요금 결정에 있어 잘못된 정책 관행이 지속됐기 때문이라는 입장이다. 

박 전문위원은 “전기요금은 원가 중심으로 정하도록 전환해야 한다”며 “전기요금은 국제 유가, 가스 가격, 석탄 가격에 따라 결정되고 에너지 믹스에 따라서도 달라지며 한전의 자구책에 따라서도 결정된다”고 강조했다.

전기요금 인상에 대해서는 “전기요금은 지난 1월에 올려야 했는데 대선 뒤로 미뤄졌다”며 “현재 예상은 4.9원 인상인데 올해 하반기 국제 에너지 시장을 살펴보고 가격이 결정될 것으로 예상하기 때문에 그것은 새 정부의 전기위원회에서 원가주의에 입각해 결정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인수위가 발표한 에너지 정책에 대한 각계 반응은 회의적이다. 전기요금에 영향을 크게 받는 열처리업계의 한 관계자는 “물가 관리를 하면서 전기요금에 원가주의도 적용한다는 것이 지금 국제 정세를 감안했을 때 가능하냐”고 반문했다. 

에너지업계의 한 관계자는 “윤 당선인이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을 비판하며 전기 요금 동결을 대선 공약으로 내세운 상황”이라면서 “하지만 이 원자력 발전 비중을 높여 원가 상승 부담을 완화하겠다는 것은 단기간에 이룰 수 있는 내용이 아니기 때문에 당장의 물가 상승은 불가피해 보인다”고 우려했다.


송철호 기자 song@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