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정부 경제·금융 정책 라인 인선 사실상 마무리
'공약 재원 마련·빅배스' 두 마리 토끼몰이 시동
정권 교체 맞물려 화려하게 부활한 행시 25회
'S의 공포' 진압·포퓰리즘 공약 걷어내기 난제 수두룩
낀 기수 '행시 동기' 경제·금융팀 능력 증명할까 주목

[주간한국 김병수 기자] "정권이 바뀌어서 그런 건가요? 행시 25회의 역주행이 시작된 것 같네요."

지난 10일, 김주현 금융위원장 내정 소식이 전해지며 윤석열 정부의 경제·금융 정책 라인이 사실상 확정되자, 금융계 한 관계자의 촌평이다. 그도 그럴 것이, 경제·금융 정책 라인 수장 자리에 행시 25회는 인연이 거의 없었다. 경제·금융 정책라인 관가에선 행시 25회를 '낀 기수'라고 부른다. 기획재정부 장관(부총리) 자리엔 관료 출신이 아닌 경우도 꽤 있다. 전문 관료로선 그만큼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

금융위원장 자리는 대체로 전문 관료가 맡아왔다. 그러나 금융위원회는 크지 않은 조직이어서 인사에선 늘 어려움을 겪어왔다. 한 지붕 두 가족으로도 불리는 기재부와 금융위원회 간 인사 교류가 많은 이유이기도 하다. 게다가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2002~2006년 신용카드 사태, 2008년 리먼브러더스 파산을 계기로 불어닥친 글로벌 금융위기 등을 거치면서 불안정한 금융시장을 수습하기 위한 시절이 상당 기간 이어진 것도 전문 관료를 선호한 배경으로 풀이한다.

불안정한 국내 금융시장은 걸출한 스타 관료를 배출하는 계기도 됐다. 옛 재정경제원 외화자금과장으로 1997년 당시 달러 부족 사태를 촉발한 주범처럼 낙인찍혔던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의 별칭은 '대책반장'이다. 김석동 전 위원장은 일반 회사에 다니다 뒤늦게 행정고시를 패스하고 관료의 길로 들어섰다. 나이에 비해 기수가 늦은 23회다. 이 걸출한 스타가 기재부와 금융위를 넘나들며 활약하는 통에 그 시절 고위 관료들은 별(장관) 달기가 어려웠다.

김석동 전 위원장이 23회고, 뒤를 이은 신제윤 전 위원장이 24회다. 임종룡 씨가 다음 바통을 이어받았다. 신 전 위원장과 동기다. 이후 문재인 정부 첫 금융위원장(장관급)이 25회 최종구 씨다. 문재인 정부의 최 위원장 발탁은 다소 의외라는 평이 있었다. 최 위원장은 기재부에서 경제 및 금융 정책 관련 핵심 부서의 경험이 적었다. 국제금융국을 중심으로 경력이 이어졌다.

◇ '도시락 폭탄' 돌린 최종구 전 위원장이 그나마 장관급

그가 주목받은 건 이명박 정부 초대 기획재정부장관을 지낸 강만수 씨와의 인연 때문이다. 당시 이명박 정부는 환율을 올려서라도 수출을 늘려야 한다는 압박이 있었다. 이 정부는 '7% 경제 성장률·4% 물가 상승률·세계 7대 경제 대국'이라는 일명 '747'을 대표 공약으로 내세웠다. 그러다 보니 원·달러 환율 변동에 유독 민감하게 반응했고, 정부의 인위적인 개입도 늘어났던 시대다. 당시 환율 관리 라인업이 강만수 장관-최중경 1차관-최종구 국제금융국장이다.

이때 최 씨를 칭하는 다른 이름이 '도시락 폭탄'이었다. 외환시장에서 거래가 비교적 한산한 점심시간에 집중적으로 정부의 외환 개입 물량을 쏟아내, 외환 딜러들의 혼을 빼놓는 일이 잦았기 때문이다. 정부의 환율 개입은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지는 못했다. 이후 최 전 국장은 금융위로 옮겨 상임위원을 지낸 뒤 박근혜 정부 출범과 함께 기재부 국제경제관리관(차관보)으로 복귀했다. 차관보를 끝으로 경제정책 관료 생활을 접고 반관(半官) 금감원 수석부원장을 지냈다. 금융 공기업으로 옮겨 마무리 생활을 하다, 문 정부 초대 금융위원장으로 중용받았다.

최 전 위원장의 후임인 은성수 전 위원장은 27회다. 문재인 정부 마지막 위원장인 고승범 위원장은 28회, 관료 출신으로 금융감독원장(2014년 11월~2017년 9월)을 지낸 진웅섭 원장도 28회다. 지난 12일 사표를 제출한 정은보 금감원장도 28회다. 그렇게 행시 25회는 뒤안길로 물러났었다.

◇ 외유내강 25회 좌장 추경호 부총리·김주현 금융위원장

추 부총리는 장관급인 국무조정실장을 지냈다. 박근혜 정부 때다. 대부분 경제·금융 정책 관료들이 그렇듯, 추 부총리도 기재부와 금융위를 넘나들며 관료 생활을 이어왔다. 그러다 박근혜 정부에서 꽃을 피웠다. 무엇보다 대구 달성이라는 지역 연고가 크게 작용했다는 데 큰 이견이 없다. 박근혜 정부에서 기재부 1차관과 국무조정실장을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지역구를 물려받았다. 탄탄대로의 길이 열렸다.

이번에 정권이 교체되면서 전문 관료 출신인 추 의원이 경제 부총리로 일찌감치 낙점받았다. 그동안 윤석열 대통령의 장관 인선 과정을 보면, 현역 의원의 각료 발탁을 선호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현재의 엄중한 경제 상황을 고려해 경제·금융 정책 전문가가 필요하다는 점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풀이한다. 이런 분위기 속에 조각 초반부터 금융위원장 세평이 있던 최상목(29회) 씨가 대통령실 경제수석, 금융위원장(25회)에 김주현 씨를 내정하면서, 우리나라 경제·금융 정책이 행시 25회 손아귀에 떨어졌다.

추 부총리와 김 위원장 모두 기재부와 금융위 관료 생활에선 그다지 목소리가 크지 않은 외유내강형으로 평가받는다. 과묵하고 꼼꼼하게 일 처리를 한다고 후배들은 전한다. 추 부총리는 재선 의원이다. 정치인 화법이 더해지면서 이전 관료 시절 모습에서 변신하고 있기도 하다. 어쨌든 앞뒤 기수의 스타급 관료들이 먼저 주목받으면서 그리 튀지 않은 25회 주자들에겐 이제야 기회가 왔다.

추경 관계장관 합동브리핑 하는 추경호 부총리(서울=연합뉴스) 김승두 기자 =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2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열린 2022년 2차 추가경정예산안 관계장관 합동브리핑을 하고 있다. 2022.5.12 kimsdoo@yna.co.kr
추경 관계장관 합동브리핑 하는 추경호 부총리(서울=연합뉴스) 김승두 기자 =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2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열린 2022년 2차 추가경정예산안 관계장관 합동브리핑을 하고 있다. 2022.5.12 kimsdoo@yna.co.kr

◇ 점점 수렁으로 빠져드는 경제…벌써 골 먹은 秋

현재 우리 경제 상황은 어느 때보다 엄중하다. 1997년 IMF 구제금융을 받으며 출범한 김대중 정부와 비교한다. 25년 만의 최대 경제 위기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세계 곳곳에서 스태그플레이션(불황 속에 물가 상승이 동시에 발생하는 상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미국이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빠르고 깊은 금리 인상에 나서면서 미 달러 가치는 20년 만에 최고로 치솟았다. 반대로 우리 원화는 달러당 1300원을 눈앞에 두고 있다.

신흥국들은 혼돈으로 빠져들고 있다. 넘치던 유동성이 말라가며 신흥국 통화는 낙하산도 없이 자유 낙하 중이다. 달러 부채가 많은 신흥국에 다시 '테킬라'가 뿌려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1994년 멕시코 외환위기에서 촉발된 신흥국 위기를 멕시코 술 테킬라에 비유해 '테킬라 위기'로 부르는데, 우리의 1997년 외환위기도 이 범주에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외화 사정과 관리시스템을 IMF 때와 비교할 순 없다. 외화 문제는 접어두더라도 윤 정부와 추 경제팀의 어깨는 천근만근이다. 출발도 별로 좋아 보이지 않는다. 자신의 이름을 딴 추경호(追更號) 타고 닻을 올렸으나, 완패 분위기다. 인사청문회 때 추 부총리는 당(黨)의 입장을 고려한 듯 말을 아꼈다. 선거 때 말한 50조원 추가경정예산(추경) 규모를 1차(17조원)와 합산하는 방식으로 물타기해, 이번 2차 추경은 '36조4000억원으로 지난 12일 확정됐다. 여기에 초과세수에 따른 법정 지방이전지출 23조원까지 더해, 59조4000억원 규모라고 설명했다.

여기까진 크게 문제 될 것은 없다. 그러나 내용은 많이 꼬였다. 당정은 코로나 영업 제한으로 피해를 본 모든 소상공인·자영업자 등 370만명에게 1인당 최소 600만원, 최대 1000만원을 지급하기로 했다. 국무회의 의결 전날인 지난 11일까지도 600만원 일괄 지급이었으나, 하루 만에 '최대 1000만원'을 추가했다. 총 규모는 3조원 정도 늘었다. 애초 차등 지급 공약이 일괄 지급으로 후퇴했다는 비판이 일자, 최대 1000만원을 추가해 6·1 지방선거를 앞둔 여당의 입장을 추 부총리가 수용한 모양새다.

그동안 정치와 선거의 속성을 충분히 이해했을 추 부총리지만, 경제 수장으로서 버틸 명분을 제대로 제시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올 수 있다. 그렇게 한 골을 내줬다. 어쩔 수 없다고 위안하더라도, 아픈 골이다. 추경 금액의 조달과 관련해 국채 발행을 뺀 것도 주목받았다. 국채 발행 없이 추경 자금을 마련하겠다는 건 중앙은행의 체면은 살렸으나, 정부와 공공기관의 개혁 강도는 어느 때보다 셀 것이라는 점을 예고한다. 오롯이 자신이 컨트롤할 수 있는 영역에서만 돈을 만들어내야 한다. 어깨의 짐은 더 무거워졌다.

추 부총리로선 이른바 빅배스(Big bath·전임자 부실 털어내기)를 할 수밖에 없다. 문재인 정부에선 이런저런 이유로 공공기관이 비대해졌다는 평가가 많다. 고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단기 일자리를 이들 공공기관에서 많이 늘었다. 추 부총리는 인사청문회 서면답변에 "공공기관의 규모, 인력, 부채가 확대되면서 비효율성에 대한 우려가 크다"라고 적었다. 지난해 기준으로 583조원에 이르는 사상 최대 부채를 기록한 공공기관 350곳에 칼을 대지 않을 수 없다는 얘기다. 이 과정에 숨겨졌던 부실이 일시에 회계에 반영되면서 충격이 생기더라도, 중·장기적으론 기초 체력을 키우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공공기관과 공기업 등의 성과급부터 도마 위에 오를 가능성이 커졌다.

◇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풀어야 할 숙제

김주현 신임 금융위원장 내정자(사진=여신금융협회)
김주현 신임 금융위원장 내정자(사진=여신금융협회)

금융위원장으로 내정된 김주현 씨도 필연적으로 추 부총리의 돈 만들기에 동원될 가능성이 충분하다. 그러나 방식은 좀 다르다. 돈이라는 게 조달해서 지원해주거나 빚을 탕감해주는 것이나 효과는 같다. 어느 주머니에서, 어떤 방식으로 쓸 것인가의 문제만 다를 뿐이다. 실제로 구조조정 시기에 자금 지원과 빚 탕감은 대부분 같이 쓰였다. 마침 김 내정자는 예보 사장(2012년 5월~2015년 5월)을 역임했다.

금융기관 파산 시 부실 처리와 예금자 보호가 주 업무인 예보는 기본적으로 구조조정 시기에 빛을 발한다. 관료로서 예보를 경험했고, 예보 사장으로 3년 동안 현장에서 실제 돌아가는 일을 지켜보고 결정해봤다. 누구보다 예보의 기능과 역할에 이해가 높고 관심도 컸다. 한국은행과 함께 중소 상공인 등의 기업·개인 파산에 따른 금융시장 불안정 시 신속히 대응할 수 있다.

앞으로 금융위 독자적으로 또는 한국은행과 공조해 대비책을 만들어야 할 과제가 김 내정자에게 떨어진 첫 과제다. 충격에 대비하기 위한 기금 형태의 완충 장치를 만들 수도 있다. 이는 종종 관치금융 논란을 일으키지만, 금융시장의 불안 정도와 금융감독당국의 설득 명분에 따라 비판의 강도는 그때그때 달랐던 것도 사실이다. 조용히 강한 김 내정자의 업무 스타일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공산이 있다.

낀 기수, 그래서 불행해 보였던 행시 25회는 기재부와 금융위를 두 축으로, 이미 눈앞에 성큼 다가온 경제·금융 위기 상황에서 중책을 부여받았다. 위기 극복이라는 어려운 과제를 짊어졌다. 전 세계 금융시장이 요동치며 글로벌 위기로 번지는 상황에서 소방수 역할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6.1 지방선거를 앞둔 상황이어서 여권의 이런저런 포퓰리즘 공약도 정중히(?) 물리쳐야 한다. 돌아온 행시 25회 동기의 팀워크와 파이팅을 기대한다.


김병수 기자 bskim@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