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줄고 정규직 전환 늘었지만 ‘눈 가리고 아웅식’ 숫자 채우기 급급

지난해 공공기관 2곳 중 1곳 정도가 적자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10일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 시스템인 알리오에 따르면 지난해 영업이익 관련 실적이 있는 362개 공공기관 중 47.0%인 170개는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사진은 10일 서울 중구 한국전력공사 서울본부 모습. 사진=연합뉴스
지난해 공공기관 2곳 중 1곳 정도가 적자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10일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 시스템인 알리오에 따르면 지난해 영업이익 관련 실적이 있는 362개 공공기관 중 47.0%인 170개는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사진은 10일 서울 중구 한국전력공사 서울본부 모습. 사진=연합뉴스

 

[주간한국 장서윤 기자] 문재인 정부의 공공부문 정규직화 정책으로 공공기관의 덩치는 늘었지만 실질적인 ‘비정규직 제로’는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직접 고용보다는 자회사를 통한 간접 고용 방식인 데다 정규직과는 차이가 많은 무기계약직도 통계상으로는 정규직으로 분류됐기 때문이다. 인원은 늘었지만 ‘적자의 늪’에 빠져있는 공공기관도 적지 않아 방만 경영 이슈도 대두되고 있다.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 알리오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 출범 전인 2016년 말 32만8000명 수준이었던 공공기관 정원은 지난해 말 기준 44만3000명으로 늘어났다. 문재인 정부 시절 35%나 증가한 것이다. 비정규직 제로 정책에 따라 공공부문을 중심으로 정규직 전환을 강력하게 추진한 탓에 임직원 수는 해마다 급증했다. 그러나 내부를 들여다보면 실질적인 정규직 전환 효과보다는 숫자 늘리기에 급급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전형적인 ‘보여주기’ 행태로 ‘속 빈 강정’과 같은 숫자놀음에 그쳤다는 것이다.

정규직 받기 위해 자회사 설립 줄이어…대부분 ‘재정 위기’에 허덕

알리오에 따르면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간 370개 공공기관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된 비정규직 수는 10만1720명이다. 기간제 비정규직 2만4103명과 파견·용역 등 소속 외 인력 비정규직 7만7617명이 일반정규직·무기계약직을 합한 정규직으로 전환됐다.

정규직 전환 인원이 가장 많은 공공기관은 한국전력공사(8259명)였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초반 직접 방문했던 인천국제공항공사가 7894명으로 그 다음으로 많았다. 이어 ▲한국도로공사(7563명) ▲한국철도공사(6230명) ▲한국공항공사(4162명) ▲한국마사회(3341명) ▲강원랜드(3299명) 등의 순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전환이 본사가 직접 고용하는 방식이 아닌 자회사를 설립해 비정규직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을 위해 설립된 공기업 자회사는 모두 36곳에 달한다. 비정규직 제로 정책이 주요 공약 사항이었기 때문에 문재인 정부 출범과 동시에 여러 공공기관이 비정규직 인력을 정규직화하기 위해 자회사를 설립했다. 이는 공공기관이 직접채용을 피하고 자회사를 만드는 방식으로 ‘숫자’만 늘렸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자회사를 통한 정규직 전환 인원은 기존 정규직 직원들과 임금과 복지 수준도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렇듯 정규직 전환 목적으로 설립한 자회사 대부분이 재정 위기에 빠져 있다. 이들 36곳 자회사의 전체 자본 규모는 1365억9299만원인 데 비해 부채 규모는 3158억235만원에 달했다. 총 36개 자회사 중 부채비율이 150%를 넘는 곳이 3분의2 수준에 이른다. 가장 높은 부채 비율을 기록한 한국중부발전 자회사 중부발전서비스는 부채비율이 무려 6682.5%로 나타났다.

실제로 지난해 공공기관 절반에 해당하는 170곳이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발전 자회사들을 거느린 한국전력은 5조8000억원대로 사상 최대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인천공항공사·한국마사회·한국관광공사·강원랜드 등도 역대급 적자 수준이다. 이에 따라 공공기관 총 부채 규모도 2017년말 493조2000억원에서 작년 말 583조원으로 4년 만에 89조 8000억원이 증가했다. 공공기관의 부채액이 올해 정부예산 607조원에 근접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는 이유다.

‘무늬만 정규직’인 공공기관 무기계약직 이상 늘어

공공기관 무기계약직 규모도 문재인 정부 들어 두 배 이상 크게 늘어났다. 정규직 숫자 늘리기에만 집착해 실제로는 고용의 질이 떨어지는 ‘무늬만 정규직’을 양산했다는 평가다.

지난 2일 국회예산정책처가 발표한 ‘2022년 대한민국 공공기관’ 보고서에 따르면 공공기관 369곳(부설기관 포함)의 무기계약직 정원은 문재인 정부 출범 직전인 2016년 2만8640명에서 2021년 6만6709명으로 132.9%(3만8070명) 늘어났다. 무기계약직은 구체적으로 공기업에서 8180명, 준정부기관에서 1만3120명, 기타 공공기관에서 1만6769명 증가했다.

이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정책에 따른 것으로, 통계상 문재인 정부는 정규직과 무기계약직을 구분하지 않고 모두 정규직으로 분류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 무기계약직은 임금 등 처우가 정규직보다 떨어진다. 공공기관이 인건비 부담을 줄이면서 ‘정규직 숫자’를 맞추기 위해 무기계약직을 대폭 늘린 것으로 보인다.

통계상으로는 정규직 수가 늘어났지만 고용의 질은 나아지지 않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결과적으로 수치로 보이는 공공 부문 일자리는 늘어났지만 공공기관의 경영 악화가 심해졌으며 고용의 질 측면에서도 정규직에 준하는 일자리를 만들지는 못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한편, 윤석열 정부는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이끄는 기재부를 중심으로 공공기관의 대대적 개혁에 착수할 예정이다. 추 부총리는 인사청문회 당시 “공공기관의 효율성 제고와 재무 건전성 확보를 추진하고 혁신을 위한 자율·책임경영을 강화해 나갈 필요가 있다”며 “향후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공공기관 운영에 대한 정책 방향을 구체화하겠다”고 밝혔다


장서윤 기자 ciel@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