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양수익 제한돼 공사비 충당 못하면 사업 좌초 위기…둔촌 주공은 파산 직전

지난 18일 오전 둔촌주공 재건축 사업 현장 모습. (사진=연합뉴스 제공)
지난 18일 오전 둔촌주공 재건축 사업 현장 모습. (사진=연합뉴스 제공)

[주간한국 이재형 기자] 보통 10년 단위의 긴 호흡으로 진행되는 재건축·재개발은 사업 도중 공사비가 수백억~수천억 원씩 뛰면서 조합과 시공사 사이에 분쟁을 낳곤 한다.

조합 입장에선 막대한 공사비를 주로 분양에서 조달해야 하는데, 분양가상한제(분상제)로 분양 수익이 제한되면서 공사비를 충당하지 못해 사업이 좌초될 위기에 처한 사업장이 발생하고 있다.

특히 서울 지역은 거의 전역이 분상제가 적용되는 토지거래허가구역에 해당하는 반면 1군 건설사 비중이 높다. 따라서 분양가를 한 푼이라도 더 받기 위해 분양 시기를 최대한 조율하는 게 지상과제로 떠올랐다.

특히 이들 정비사업장은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오는 6월로 예고한 분상제 개편 방안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분상제 폐지 요구도 나오지만, 자칫 건설사가 다양한 구실로 공사비를 올리고 분양가 인상을 견인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서울 행당제7구역 분양가 낮아 공사비 못 낼 지경

행당7구역 주택재개발 정비사업기획안. (사진=행당7구역 조합 제공)
행당7구역 주택재개발 정비사업기획안. (사진=행당7구역 조합 제공)

최근 서울시 정비사업 종합포털인 정비사업 정보몽땅에 따르면 행당제7구역 주택재개발정비사업조합(이하 행당7구역)은 지난 19·26일 두 차례에 걸쳐 ‘분양가 상한제 관련 택지 감정평가에 따른 한국부동산원 택지비 검토 보류’ 요청을 성동구청에 보냈다. 행당7구역은 과거 감정평가를 받았지만, 앞으로 있을 일반분양에서 좀 더 자금을 조달할 수 있도록 다시 평가해달라는 취지다.

행당7구역 재개발은 서울시 성동구 행당 1동 128번지 일원의 4만9018㎡ 부지에 지하 4층~지상 35층, 7개 동, 총 958세대 규모의 아파트 단지를 조성하는 사업이다. 총 공사비는 2192억3000만원이며 조합은 이 중 510여억 원을 올해까지 시공사인 대우건설에 지급해야 한다.

하지만 사업비가 한참 부족한 게 문제다. 조합원들이 계약금(현재 분양가의 10%)과 1차 중도금(10%)을 지불하고 일반분양에서 청약당첨자에게 계약금(10%)을 받더라도 모인 돈이 고작 400억원대에 불과해 약속한 공사대금을 지불할 수 없어서다.

행당7구역이 당장 올해 사업비 납기를 지키려면 오는 6월 정부가 예고한 대로 분상제 규제가 풀려 분양가를 좀 더 올리는 계획이 들어맞아야 한다.

하지만 행당7구역은 앞으로 공사비가 추가 인상될 리스크도 안고 있어 조합원 부담이 또 늘어날까 시름이 깊다. 행당7구역의 공사비는 지난 2017년 5월 계약에선 1676억원이었는데 최근 계약에선 여기서 500여억원 더 인상됐다. 게다가 지난해 9월 착공했지만 공정 진행률이 약 7.4%(지난 3월 기준)에 불과할 정도로 공사 진척이 더뎌 대우건설 측이 공기 연장을 요청하고 있다. 공기가 길어지면 공사비가 다시 인상될 수 있다는 우려가 조합 내부에서 나온다.

조합 관계자는 “지금은 터파기 작업이 한창인데 공사장에 암석이 많아 기초공사가 계획보다 더디다”며 “시공사에서 공사 연장 요청을 계속 제기하고 있는데, 공기가 연장될 경우 공사비 증액은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대우건설 관계자는 “현장 변수로 조합 측과 여러 협의를 할 순 있겠지만, 통상 민간 공사는 계약을 함부로 고치기 어렵다”라며 이런 우려를 일축했다.

신반포 등 주요 사업지 분양 일정 줄줄이 연기

지난 18일 오전 둔촌주공 재건축 사업 현장 모습. (사진=연합뉴스 제공)
지난 18일 오전 둔촌주공 재건축 사업 현장 모습. (사진=연합뉴스 제공)

서울 지역은 서초구 신반포15차, 동대문구 이문1구역, 은평구 대조1구역, 서대문구 흥은13구역 등 주요 재건축·재개발 사업지들이 분상제 개편 이후로 줄줄이 분양 일정을 연기하고 있다. 공사비 압박 속에서 분양가를 조금이라도 올려 받기 위한 조처지만 신규 분양 일정은 기약 없이 멈춰섰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올해 예정됐던 서울 아파트 분양 물량 4만8137가구 중 5월까지 실제 분양이 이뤄진 경우는 3390가구(7%)에 그쳤다.

실제로 공사비를 지급하지 못해 파산 위기에 놓인 현장도 나와 시장의 파열음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둔촌주공 재건축 사업은 강동구에 위치한 둔촌주공 아파트 단지를 헐고 지하 3층~지상 최고 35층, 1만2032가구(일반분양 4786가구)를 조성하는 사업이다.

둔촌주공은 분상제 개편 이후로 분양을 미루면서 그동안 1조6800억원의 공사비를 받지 못해 불만이 있던 시공사업단(롯데건설, 현대건설, 대우건설, HDC현대산업개발)이 지난달 15일부터 공사를 중단하고 타워크레인마저 철거하면서 극한 갈등에 직면했다.

여기에 NH농협은행 등 대주단(대출 금융사 단체)이 오는 8월까지 대출금 7000억원을 상환하라고 통보해 위기감은 고조되고 있다. 조합원이 직접 상환하면 1인당 1억2000만원가량을 분담해야 하는데 미 이행시 조합은 부도나고 사업권은 시공사에 넘어갈 수 있다.

대주단은 대출 연장 조건으로 조합과 시공사업단 간 갈등 봉합을 내건 상태다. 조합 측은 향후 시공사와의 협상을 통해 공사비 인하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분상가 완전 폐지 대신 이주비 분양가 반영 검토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지난 23일 정부세종청사 인근 한 식당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지난 23일 정부세종청사 인근 한 식당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이처럼 정비사업을 둘러싼 환경이 경색되면서 정부가 규제를 완화해 시장의 불안을 해소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최근 들어 분상제 폐지론이 힘을 받는 이유다. 하지만 서민의 내 집 마련 수단인 분양마저 가격 고삐가 풀릴 경우 무주택자의 주거 불안을 심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분상제 개편 얘기가 나오자 분양을 미루는 단지가 늘고 있는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 정부는 빨리 정책을 정리해서 시장의 불안을 해소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일단 폐지보다는 이주비 등을 분양가에 반영하도록 조정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원 장관은 지난 23일 기자간담회에서 “분양가 상한제는 분양 아파트의 가격을 관리해 수분양자들에게는 시세보다 저렴한 가격에 제공하고, 시공사가 분양가 가격 상승을 주도하는 것을 막기 위한 안전장치인 만큼, 한 번에 폐지하기에는 부작용이 커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시민사회계에서는 분상제를 일부 수정하더라도 건설사가 공사비 증액 시 근거를 조합 등에 밝히도록 입찰 과정을 투명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성달 경제정의실천연합 정책국장은 “조합과 시공사의 관계는 대부분 조합 측이 한참 전문성이 떨어지다 보니 정보의 비대칭이 발생해왔고, 시공사는 다양한 방법으로 이익을 남길 수 있었다”라며 “민간 재개발 사업도 조합원이 공사비 등을 적정하게 평가할 수 있도록 국토부나 서울시 등 지자체들의 관리 감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재형 기자 silentrock@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