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에는 ‘친명’ ‘친문’ 두 개의 팬덤이 존재
팬덤의 원조 ‘친문’이 새로운 팬덤의 공격받는 아이러니
‘개딸’ 팬덤정치에 고무된 이재명, ‘독’이 될까, ‘약’이 될까
‘친명 vs 친문’ 팬덤정치의 갈등은 혁신경쟁 아닌 권력투쟁

6·1 지방선거 이후 더불어민주당의 수습과 쇄신을 이끌 새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선임된 4선 중진 우상호 의원(오른쪽 두번째)이 지난 7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 참석해 자리에 앉아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6·1 지방선거 이후 더불어민주당의 수습과 쇄신을 이끌 새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선임된 4선 중진 우상호 의원(오른쪽 두번째)이 지난 7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 참석해 자리에 앉아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민주당을 팬덤정당이 아니라 대중정당으로 만들겠다.” 6.1 지방선거 기간인 지난달 24일에 열린 긴급 기자회견에서 박지현 전 더불어민주당 공동비대위원장이 했던 말이다. “맹목적 지지에 갇히지 않고 대중에 집중하는 민주당을 만들겠다. 우리 편의 큰 잘못은 감싸고 상대편의 작은 잘못은 비난하는 잘못된 정치문화를 바꾸겠다”는 것이 그의 다짐이었다. 

사실 새삼스러운 문제도 아니고, 다수 국민들의 마음 속에 진작부터 자리하고 있던 얘기였다. 그런데 그런 다짐을 했던 박 전 위원장은 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팬덤정당이 되어버린 민주당을 환골탈태시키는 일은 여전한 숙제로 남아 있다.

선거가 민주당의 참패로 끝나자 다시 팬덤정치와의 결별을 거론하는 민주당 정치인들이 눈에 띈다. 민주당의 5선 중진인 이상민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금기와 성역’ ‘맹종과 팬덤’ ‘일색과 패거리, 배척’, ‘계파성’ 등을 무엇보다 산산조각내 부숴버려야 될 것이다.” 

온갖 부정적인 의미들이 망라된 이 한 마디 말이, 지금의 민주당을 바라보는 민심의 평균치일지 모른다. 지난해 4.7 재보선 패배에 이어 3.9 대선 패배, 그리고 6.1 지방선거 패배라는 3연패 행진은 그만큼 민주당을 향한 국민의 시선이 싸늘함을 말해주는 사건이었다.

5년 전 대선에서 정권을 잡았던 민주당이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섰을 때 국민들은 80%가 넘는 지지율을 나타내며 한껏 기대를 표했다. 그리고 2020년 21대 총선에서 민주당과 위성정당인 더불어시민당에게 무려 180석의 의석을 안겨주었다. 그랬던 민주당이 정권교체 여론을 끝내 못 이겨 대선에서 패하더니, 다시 한 달도 되지 않아 지방선거에서도 참패를 기록하고 말았다. 

정당에 대한 지지율이라는 것이 상황에 따라 언제든 변하는 것이지만, 이렇게 단기간에 정점에서 바닥으로 추락하는 것도 보기 드문 일이다. 대체 민주당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진영논리가 낳은 ‘내로남불’의 정치, 부동산 정책 실패 등 무능했던 국정운영에 대한 민심 이반 등의 온갖 이유들을 새삼 열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제 중요한 것은 ‘과연 민주당은 달라질 수 있을 것인가’, 그래서 ‘2년 뒤에 치러지는 22대 총선에서 4연패 당하는 사태를 막을 수 있을 것인가’ 하는데 있다.

그동안 선거에서 패했을 때마다 그랬듯이, 이번에도 민주당은 국민에 대한 사과와 함께 패배의 책임을 지겠다고 말했다. 민주당 지도부인 비대위원회는 선거 다음날 총사퇴를 밝히며 국민과 당원들에게 ‘사죄드린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윤호중 당시 공동비대위원장은 “민주당의 더 큰 개혁과 과감한 혁신을 위해 회초리를 들어주신 국민 여러분께 감사드린다”며 이번 지방선거 결과에 책임을 지고 전원 사퇴하기로 했다”고 했다. 

반성과 쇄신의 목소리들은 뒤늦게야 터져 나왔다. 국회에서 ‘검수완박’ 입법 독주를 이끌었던 박홍근 원내대표는 “국민께서 왜 회초리를 드셨는지 하나부터 열까지 제한 없이 철저히 성찰하겠다”면서 “재창당의 심정으로 ‘그만하면 됐다’고 하실 때까지 혁신하겠다”고 말했다. 

이낙연 전 대표는  “대통령 선거를 지고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지방선거를 치르다 또 패배했다”면서 “패배의 누적과 그에 대한 이상한 대처는 민주당의 질환을 심화시켰다”고 진단했다. 

이재명 의원의 출마가 잘못이었음을 비판하는 목소리들도 이어졌다. 홍영표 의원은 “사욕과 선동으로 당을 ‘사당화’시킨 정치의 참담한 패배”라며 “대선 이후 ‘졌지만 잘 싸웠다’는 해괴한 평가 속에 오만과 착각이 당에 유령처럼 떠돌았다”고 비판했다. 

전해철 의원도 “대선 패배에 책임 있는 분들이 납득하지 못할 이유로 자기방어와 명분을 만드는 데 집중했다”며 “선거 패배에 책임이 있는 분들은 당의 쇄신 과정에서 한발 물러서 달라”고 이 의원을 겨냥했다. 

경기도지사 선거에서 생환한 김동연 경지도지사 당선인은 “지난 대선 패배 이후 이번 지방선거까지 성찰이 부족했다. 국민 눈높이에 맞는 개혁과 변화가 필요하다”는 성찰의 목소리를 냈다.

사실 새로운 얘기들도 아니요, 이미 언론과 여론에 의해 충분히 지적되었던 문제들이다. 그럼에도 내내 귀를 막고 있다가 다시 한번 참패를 당하고 나서야 사후약방문 식의 얘기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것이다.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가 지난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가 지난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물론 이제라도 민주당이 민심의 요구에 부응하는 환골탈태의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는 길을 간다면, 2년 뒤에 총선에서는 반전의 상황을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원래 정권이 들어서고 2년 정도 지나서 치러지는 총선은 대개 정권에 대한 중간평가의 장이 되기 쉽다. 지금 윤석열 대통령이 드러내고 있는 ‘검사 편중인사’ 등 여러 문제들을 보노라면, 민주당이 제대로 달라질 경우 다음 총선은 윤석열 정부에 대한 중간평가의 장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그런 길을 놔두고 민주당이 민심에 역행하는 모습을 계속 고집한다면 민심은 다시 한번 민주당 심판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결국 민주당이 하기에 달린 일이다.

그런데 문제는 바닥까지 추락한 민주당이건만, 의미가 있는 변화의 가능성이 그리 밝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민주당의 변화를 가로막고 있는 팬덤정치의 굴레가 워낙 강고해 보이기 때문이다. 강성 지지층들로 구성된 팬덤층은 당의 노선을 극단화로 치닫게 만든다. 

팬덤들은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이나 정치인을 절대선으로 믿는다. 그러니 선악의 이분법에 따라 모든 일에 ‘아군’과 ‘적군’을 가르는 진영 간의 대결을 추구하는 속성을 갖는다. 팬덤들은 정치의 요체인 공존과 타협의 논리를 불온한 것으로 단죄한다. 그래서 팬덤정치와 극단주의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지난 5년간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에게서 민심이 떠나가도록 만든 것도 그런 팬덤정치였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자신들이 의존했던 팬덤정치가 낳는 폐해에 대해 아무런 문제의식을 갖고 있지 못했다. 

경쟁자들을 적으로 간주하고 악플과 문자폭탄을 날리는 팬덤들의 행동을 ‘경쟁을 흥미롭게 만들어주는 양념’이라고 했던 그의 발언은 두고두고 전해지는 악담이 되고 말았다. 

문 전 대통령이 팬덤정치가 낳은 문제들에 조금이라도 유념하며 지지자들의 자제를 설득하려 했다면 오늘 민주당의 팬덤정치가 이렇게까지 극단으로 치닫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문 전 대통령이 ‘양념’이라고 했으니, 오늘 그의 사저 앞에 극렬 반대자들이 모여 연일 집회를 하는 부메랑이 날아오게 된 셈이다. 

문 전 대통령은 집권 기간의 대부분 동안 지지자들의 목소리에만 귀 기울이는 대통령으로 갇혀 버렸다. 전체 국민이 아니라 팬덤들이 이끌고 있는 지지자들만의 대통령이 되었던 것은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의 치명적인 한계가 되어 버렸다.

언제부터인가 민주당 하면 극단주의 강경파 정치인들만 눈에 띄는 정당이 됐다. 강경파 그룹인 ‘처럼회’에 모여 있는 십여 명의 초선 의원들이 당을 쥐락펴락하면서 강경일변도의 노선을 이끄는 사실상의 지도부가 된 것이다. 

대선 패배의 한 원인으로 진단되는 검수완박의 입법폭주도, 임대차 3법과 공수처법의 무리한 밀어붙이기도 모두 이들 강경파에 이끌려서 한 것이다. 그 앞에서 다른 목소리라도 냈다가는 극성 팬덤층의 문자폭탄에 시달리거나 공천 탈락의 위험에 처하게 되니, 좀처럼 입을 열기 어렵다. 다양성은 사라졌고 하나의 강경론만이 존재하는 곳이 오늘의 민주당이 된 것이다.

본래 민주당은 지금처럼 극단주의가 당을 지배하는 정당이 아니었다. 과거 군사독재정권에 맞서 민주화 투쟁을 벌이던 시절에야 ‘독재와 민주’의 이분법에 따른 선명노선이 불가피했다. 

하지만 6월 항쟁을 거쳐 제도적 민주화가 기본적인 틀을 갖춘 이후 민주당은 균형과 통합을 생각하는 정당이었다. 해마다 민주당의 정치인들이 모여 추모하는 김대중-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 모두 국민통합을 위해 공을 들였던 지도자들이었다. 

그랬던 민주당이 진영논리와 극단주의가 지배하는 정당으로 변질된 것은 과거 야당 시절 ‘친문’(친문재인) 정당으로 변모하면서부터다. 

인천 계양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당선이 확실시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1일 오후 인천시 계양구 자신의 선거사무소에서 소감을 밝힌 뒤 자리를 떠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인천 계양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당선이 확실시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1일 오후 인천시 계양구 자신의 선거사무소에서 소감을 밝힌 뒤 자리를 떠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2011년 이해찬 전 대표가 이끌던 당 밖의 친노(친노무현) 그룹 ‘혁신과 통합’이 손학규 대표가 이끌던 민주당과 통합하면서 친문 그룹이 당의 헤게모니를 구조적으로 장악하게 된다. 당시 친노 그룹은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당의 헤게모니를 장악하기 위해 온라인 권리당원의 영향력을 계속 키웠다. 

결국 통합 이후의 두 차례 전당대회에서 친노 그룹의 한명숙, 이해찬 전 대표가 잇따라 당 대표가 됐다. 이어서 2012년 대선 후보 경선에서는 모바일 투표에서 단연 앞선 문재인 후보가 대의원 투표에서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손학규 후보를 누르고 대선 후보로 선출됐다.

온라인 당원 가입을 통한 영향력의 강화는 문재인 대표 시절에 계속됐다. 친노 그룹을 사실상 계승한 친문 그룹은 온라인 당원제를 도입해 ‘문파’(문재인 극성지지자를 일컫는 말)들의 영향력을 비약적으로 강화해 나갔다. 

공천 과정에서 문파 권리 당원들의 영향력은 계속 커졌고, 금태섭 전 의원 같은 ‘이단자’에 대한 경선 탈락은 다른 의견을 봉쇄하는 무기가 됐다. 친문 그룹의 지원으로 당 대표가 된 추미애 전 대표 시절에는 ‘100만 권리당원 운동’까지 벌어져 민주당은 구조적으로 문파 정당이 된 것이다. 

따라서 오늘 민주당의 고질적 문제가 된 팬덤정치의 원조는 친문 그룹이었다. 실제로 문재인 정부 시절 5년간 친문 그룹은 팬덤층의 지지를 등에 업고 진영의 정치를 강화해 나갔고, 이는 진영대결이 낳은 내로남불의 만연이라는 비판을 받게 된다. 오늘 민주당이 겪은 선거 3연패의 치욕은 이 같은 팬덤정치가 낳은 필연적 결과였다.

이제 민주당이 정권을 내놓고 야당이 된 마당에, 더구나 민심을 잃어 선거에서 연전연패당하는 마당에, 팬덤정치와 결별하는 것이 근본 과제임은 굳이 박지현의 말이 아니더라도 생각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그런 현실 속에서도 민주당은 여전히 팬덤정치에 갇혀 있는 모습이다. 친문 팬덤으로 모자라 ‘친명’(친이재명) 팬덤이 새롭게 등장해, 두 흐름의 팬덤정치가 대결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민주당 모습이다. 

지금 민주당에는 두 가지 줄기의 팬덤정치가 존재한다. 하나는 친문을 표방했던 ‘문파’ 팬덤이고, 다른 하나는 친명 ‘개딸’(개혁의 딸) 팬덤이다. 그런데 최근의 광경을 지켜보면, 팬덤정치의 원조격이었던 친문 그룹이 친명 개딸들의 팬덤정치에 의해 수난을 당하는 처지가 됐다. 코미디 같은 악순환의 장면이다.

친문 핵심으로 불리는 홍영표 의원이 방송에 출연해 선거 패배에 대한 이재명 의원의 책임론을 제기하며 그의 출마를 “많은 당내 사람들이 반대했었다”고 밝혔다. 그러자 이재명 의원을 지지하는 개딸들의 공격이 시작됐다. 홍 의원의 지역구 사무실에는 그를 맹비난하는 글이 담긴 길이 3m 대형 대자보가 붙었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우리 홍영표 의원님이 말하는 거 보고 있으니 치매가 아닌지 걱정되고, 중증 애정결핍이 심각한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개딸을 자처하는 이들은 6.1 선거 이후 이 의원을 조금이라도 비판하는 민주당 정치인들에 대해서는 ‘수박’이나 ‘똥파리’라고 부르며 문자폭탄을 대대적으로 투척하고 있다. 

“이재명 의원 측이 당 대표를 언급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말한 전해철 의원, "이재명 친구, 상처뿐인 영광! 축하합니다"라는 글을 올린 이원욱 의원 등이 모두 공격 대상이었다. 

팬덤정치에 기대어 정치적 영향력을 과시해왔던 친문 그룹이, 이제 친명 팬덤정치에 의해 공격받으며 수세에 몰리는 상황은 무척 그로테스크해 보인다. 지금 민주당에는 하나의 팬덤정치가 저물어 가고 다른 새로운 팬덤정치가 최대 세력으로 등장하는 광경이 벌어지고 있다.

이재명 의원이 국회의원으로 첫 출근을 한 지난 7일, 자칭 개딸들은 국회 담장과 민주당 당사 앞에 수많은 화환을 도열시켜 이 의원의 국회 입성을 축하했다. 이 의원의 출근을 축하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었지만, ‘건드리면 출동한다'와 같이 비판자들을 향한 지지자들의 경고를 담은 문구들도 눈에 띄었다. 

이 의원을 지지했던 개딸들의 전투력과 결집력은 대선이 끝난 이후 한층 강화돼 이제 민주당의 분위기를 좌우하는 상당한 변수로 등장하는 모습이다. 이 의원이 5년 후 대권을 잡기 위해서는 이제 자신들이 지켜줘야 한다는 것이다. 문 전 대통령의 팬덤들이 늘 ‘우리가 지켜드리겠다’고 하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지난 5년간 친문 팬덤들의 문자폭탄에 겁을 낸 민주당 정치인들이 입을 닫아버렸듯이, 이 의원을 향한 쓴소리도 눈치를 살펴야 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는 셈이다. 더구나 개딸들은 전당대회를 앞두고 민주당의 당헌.당규 개정까지 요구하고 있다. 현재 민주당 당규는 경선일 '6개월 전 입당', '12개월 이내에 6회 이상 당비 납부' 조건을 채워야 권리당원으로 인정한다. 8월 전당대회를 예상하면 대선일인 3월 9일 이후 대거 입당한 친명 개딸들은 투표권이 없게 된다. 

그래서 이들은 자신들이 투표할 수 있도록 당비 납부 기간 규정을 3개월로 줄일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현재 40%로 되어 있는 권리당원의 투표 반영 비율이 ‘표의 등가성’에서 문제가 있다며 권리당원의 반영 비율을 높일 것을 이재명계가 요구하고 있는지라, 전당대회 룰 논의를 앞두고 개딸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렇게 대선 이후로 개딸들의 목소리는 더욱 커지는 분위기이다. 권력의 논리상, 그동안 민주당의 팬덤정치를 주도했던 문파는 ‘지는 해’일 수밖에 없다. 문재인이라는 구심이 퇴임하였고, 무엇보다 뚜렷한 차기 대선 주자를 보유하고 있지 못하다. 

친문이 아무리 친명과 각을 세우며 대결한다 해도 그 힘을 당해내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결국은 개딸로 상징되는 새로운 팬덤정치가 민주당을 주도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 의원도 자신을 지지하는 이 같은 팬덤 현상을 적극 반기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난 선거 과정에서 이 의원은 개딸과 ‘양아들’(양심의 아들) 현상에 대해 “세계사적인 의미가 있는 새로운 정치 형태”라고 한껏 치켜세웠다. 팬 카페 ‘재명이네 마을’ 서포터스와의 만남 자리에서 이 의원은 “참 많은 우리 개딸, 양아들, 개이모, 개삼촌, 심지어 개할머니까지 함께해 주셔서 정말 큰 힘이 난다. 우리가 큰 대세를 만들고 있다. 얼마나 위대한 일인가”라고 자평하기도 했다. 

5년 후의 대권 재도전이 지상 과제인 이 의원으로서는 개딸들의 팬덤정치가 더 없는 원군으로 여겨질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8월 전당대회에서 자신이 당 대표로 출마하려는데 대한 당내 비판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자신의 당 대표 출마 분위기를 앞장 서서 조성해줄 것은 이들이라고 믿고 있을 것이다. 

6.1 지방선거에서 자신의 존재 가치를 보이지 못한 채 오히려 패배 책임론에 휩싸인 그로서는 팬덤 지지층의 영향력을 등에 업는 것이 정면돌파를 위한 최선의 길이라고 생각할 법하다. 팬 카페 ‘재명이네 마을’에서 개딸들로부터 ‘아빠’ 소리 듣기를 조금도 민망해 하지 않고 즐기는 그의 모습이 이를 말해준다. 이 의원은 자신을 지지하는 팬덤정치를 등에 업고 5년 후를 기약하며 가겠다는 의지가 분명해 보인다. 

박지현 더불어민주당 전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당대표 회의실에서 총사퇴 의사를 밝히는 입장문을 발표한 뒤 국회를 나서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박지현 더불어민주당 전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당대표 회의실에서 총사퇴 의사를 밝히는 입장문을 발표한 뒤 국회를 나서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박지현 전 위원장은 민주당의 당면 과제로 팬덤정치와의 결별을 말했다. 하지만 그를 비대위원장에 추천했다는 이 의원이 새로운 팬덤정치의 중심에 있다는 사실은 무척 아이러니한 일이다. 그렇다면 박지현이 말한 팬덤정치와의 결별이 민주당에서 이루어지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로 보인다.

지방선거 패배의 책임과 당의 진로를 둘러싼 친명과 친문의 공방전이 가열되는 가운데 민주당은 새 비대위원장에 4선 중진인 우상호 의원을 택했다. "국회의원 선거 불출마를 선언한 만큼 대선 이후 치우치지 않고 중립적으로 비대위 역할에 있어서 리더십을 발휘할 분”이라는 것이 민주당의 설명이다. 

하지만 우 위원장은 자신의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고는 하지만, 바로 용퇴론의 대상인 ‘86’ 그룹의 대표적 인물이다. 물러난 박 전 위원장은 선거 와중에 ‘86 용퇴론’을 주장했다가 윤호중 전 위원장을 비롯한 당사자들의 격한 반발을 샀다. 이때 우상호 위원장도 “특정 세대 전체를 통으로 물러나라고 하는 것은 정합성도 떨어지고 좀 불합리한 얘기"라며 86 용퇴론에 대해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한 바 있다. 

더구나 우 위원장은 평소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 같은 팬덤 방송에 자주 출연하며 팬덤들의 입맛에 맞는 말들을 많이 해왔다. 그런 우 위원장이 팬덤정치의 청산을 머리 속에 그릴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개딸들의 목소리가 갈수록 커지는 상황에서 민주당의 팬덤정치도 수그러들지 않고 계속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김영춘 전 의원 같이 개인 차원의 자발적 용퇴가 아닌 한, 86그룹의 집단적 용퇴 같은 것은 쇄신 시나리오에 거론조차 되기 어려울 것이다. 결국 86 용퇴론은 더 이상 거론되지 못한 채 2년 후 총선에서 많은 86들이 다시 한번 출마에 나서게 될 것이다. 민주당의 86체제는 달라지지 않고 계속 간다는 의미이다. 민주당의 쇄신을 이끌어야 할 비대위원장 자리에 대표급 86 정치인이 들어선 상황은 민주당이 선택할 쇄신의 폭과 강도를 충분히 예상하게 만든다. 

민주당에서 균형적인 목소리를 내온 조응천 의원은 민주당내 친명-친문 갈등에 대해 "어느 쪽이 득세해서 당권을 잡아도 민주당이 쇄신하고 반성했다고 여기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두 그룹 모두 도긴개긴이기 때문에 남 탓할 일이 아니다"라는 것이 조 의원의 지적이었다. 

사실 국민들이 보기에 친명이나, 친문이나 팬덤정치에 기대어 극단의 정치를 해온 것은 매한가지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선거 패배 책임을 놓고 서로 ‘네 탓’이라고 싸우고 있으니 볼썽사나운 것이 사실이다. 

민주당이 정권을 내놓게 되고 다시 지방선거에서 참패하게 된 데는 두 세력 모두의 책임이 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친명과 친문 두 그룹의 책임 공방은 또 한번의 내로남불에 불과한 것이 사실이다. 그 대결에서 어느 쪽이 이기든 간에 팬덤정치와의 결별이라는 민주당의 숙제와는 무관해 보인다. 

친명과 친문은 지금 민심이 요구하는 혁신 경쟁이 아니라, 자기들끼리의 권력투쟁을 벌이고 있다고 보는 것이 맞다. 그러니 어느 쪽이 이긴들 결과는 공허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문제 삼아야 할 것은 팬덤정치가 낳은 극단적이고 반이성적인 정치문화이지, 그것이 친문의 것이냐 친명의 것이냐가 중요하지는 않다. 그 수혜자가 누구냐에 따라 좋은 팬덤정치가 있고 나쁜 팬덤정치가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친명도 친문도 아닌 새로운 세력이 등장해 팬덤정치를 끊어내고 극단주의 정치의 물갈이를 선도해야 하는데, 이것을 해낼 만한 구심이 없는 것이 민주당의 현실이다. 

그래서 민주당의 앞길은 짙은 안개에 가리워져 있다. 결국 22대 총선에서 민주당에 대한 민심이 다시 확인될 때, 그때 가서야 비로소 민주당의 앞길이 어떤 방향으로든 정리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외부의 충격 없이는 자기 힘으로 스스로 변화하기 어려운 상태, 그것이 민주당의 현주소이다.

 


유창선 시사평론가 weeklyhk@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