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구 노력 부족한 한전 호통치고 대기업 임금 인상 자제 읍소
제 주머니 터는 고통 분담엔 눈 감은 정부, 정책 효과 기대 난망

[주간한국 김병수 기자]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연일 동분서주하고 있다. 취임 후 첫 물가 인상 요인이었던 올해 3분기 한국전력 연료비 조정단가 조정에선 근래에 보기 드물게 ‘호통’을 치며 시작했다.

역정을 크게 내고도 분기 조정 폭(±3원)을 연간 한도(±5원)에서 할 수 있도록 약관까지 개정해 최대치인 5원을 올려줬다. 4분기에 올릴 2원을 앞당겨 생색도 냈다. 두 번에 걸쳐 먹을 욕을 한 번으로 끝낸 효과(?)도 얻었다.

전기요금 인상은 불가피했다. 한전의 누적 적자를 더 두고 볼 수 없는 상황에 부닥쳤다. 문재인 정부의 문제였다고 치더라도, 현 집권 여당도 야당 시절에 전기 요금을 올려야 한다고 강하게 말한 적도 없다. 서로 표 떨어지는 요금 인상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지금은 글로벌 공급망 붕괴와 인플레이션에 따른 금리 인상이라는 외통수에 걸려 어쩔 수 없이 올린 측면이 강하다.

이번 요금 인상으로 올해 한전의 수입은 1조 3000억원 늘어난다. 한전은 올해 1분기에 사상 최대 규모인 7조 7869억원의 적자를 냈다. 액화천연가스(LNG)·석탄·석유 등 전기생산에 사용되는 연료비 국제 가격이 고공 행진해서다. 

올해 한전의 추정 영업손실 규모는 평균 23조 1397억원(FN 가이드, 증권사 평균)이다. 한전은 출자 지분·부동산 매각, 해외사업 구조조정 작업 등을 통해 6조원 규모의 자금을 마련할 예정이지만, 턱없이 부족하다. 전기 요금 인상은 내년에도 계속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 6%대 물가 언급하며 미리 경고한 추경호 부총리

(서울=연합뉴스) 한상균 기자 = 추경호 경제부총리가 28일 마포구 경총에서 손경식 회장 등과 간담회를 하고 있다. 2022.6.28 [공동취재] xyz@yna.co.kr
(서울=연합뉴스) 한상균 기자 = 추경호 경제부총리가 28일 마포구 경총에서 손경식 회장 등과 간담회를 하고 있다. 2022.6.28 [공동취재] xyz@yna.co.kr

추 부총리는 6월엔 물가가 6%대로 치솟을 것이라며 미리 경고하고 나섰다. 경제 위기 경각심을 높여 국민의 씀씀이를 줄여야 한다는 점을 상기시키는 발언이다. 

실제로 금융 전문가들의 물가 전망은 계속 올라가고 있다. 통계청은 오는 5일 6월 소비자물가를 발표한다. 추 부총리의 예상대로 물가가 6%대에 진입하지 않더라도, 7월부턴 전기·가스 요금 인상분이 물가에 반영되기 시작한다.

통계청은 전기료의 소비자물가지수 지출목적별 가중치(2020년 기준)를 15.5, 도시가스는 12.7이라고 밝혔다. 전기요금이 1% 오르면 소비자물가 0.0155%포인트 끌어올리는 효과가 있다는 의미로 해석한다.

이를 토대로 전년 대비 요금 상승률과 가중치를 계산하면 전기요금은 0.18%포인트, 가스요금은 0.25%포인트가량 7월 물가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추산한다. 전기요금과 가스요금 인상만으로 물가가 0.43%포인트 오른다는 것이다.

급기야 추 부총리는 지난달 28일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를 만나 "최근 일부 정보기술(IT) 기업과 대기업에서 높은 임금 인상 경향이 나타나면서 다른 산업·기업으로 확산할 조짐을 보이는 매우 우려스러운 상황"이라며 과도한 임금 인상 자제를 공식 요청했다. 추 부총리는 "각종 비용 상승 요인은 가급적 투자 확대 등을 통한 생산성 향상으로 흡수하는 방향으로 노력해주면 감사하겠다"며 인플레이션에 따른 국민 고통을 낮추기 위해 대기업들이 솔선수범해 달라는 취지를 숨기지 않았다.

◇ 7월이면 7%대 물가 입에 올려야 하는 상황

물가 고공 행진은 시간의 문제일 뿐이라는 분석이 많다. 한국은행이 지난달 29일 발표한 '6월 소비자동향조사' 결과를 보면, 기대인플레이션율은 3.9%로 5월(3.3%)보다 0.6%포인트 올랐다. 2012년 4월(3.9%) 이후 10년 2개월 만에 가장 높았다. 0.6%포인트 상승 폭은 2008년 관련 통계가 시작된 이래 최대 기록이다. 기대인플레이션율은 앞으로 1년간 예상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말한다. 현재 시점에서 일반 소비자들이 앞으로 1년간 4% 정도 물가가 더 오를 것으로 본다는 뜻이다.

무엇보다 기대인플레이션 상승 속도가 매우 빠르다. 황희진 한은 통계조사팀장은 "금융위기 당시인 2008년 7월부터 2009년 7월까지, 경기 회복 과정에서 일본지진과 유럽 재정위기 등이 겹친 2011년 3월부터 1년 정도 기대인플레이션율이 3.9%를 넘어 4%대에 이른 적이 있었다"면서도 "0.6%포인트 상승 속도는 과거보다 빠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은은 정보의 유통 속도가 빨라지면서 인플레이션, 미국 빅 스텝(0.5%포인트 기준금리 인상) 등 관련 뉴스를 예전보다 많이 그리고 신속하게 접하면서 위기감이 빠르게 상승했기 때문으로 추정했다.

결국, 미국의 인플레이션 정점이 언제이냐가 우리나라에도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고 볼 수 있다. 자이언트 스텝(0.75%포인트 인상)으로 금리를 올리고 있는 미국이 물가와의 전쟁에서 승기를 잡으면, 우리나라도 어느 정도 안정 국면으로 들어갈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의 물가가 언제쯤 잡힐지는 여전히 안갯속이다. 전망이 엇갈린다는 것은 그만큼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커 불안정 상황이 이어질 것으로 해석한다.

최근 미국 투자 전문매체 마켓워치는 미국 시장 참가자들이 연방기금금리를 근거로 내년 3월쯤 금리 인상의 정점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하며 인플레이션 압력 완화를 기대하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이렇게 되면 대략 1년 정도에 인플레이션과의 전쟁에서 승기를 잡게 된다. 

그러나 마켓워치는 인플레이션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물가연동국채(TIPS) 시장과 연계한 파생상품인 픽싱을 거래하는 트레이더들은 미국의 소비자물가 예상치를 6월 8.9%, 7월 8.8%, 8월 9%, 9월 8.9%, 10월 8.1%로 제시했다는 내용도 같이 실었다. 이는 미국이 이번 달에도 금리를 0.75%포인트 올릴 가능성이 있다는 걸 고려한 것이라고도 밝혔다. 예상이 엇갈린다는 건 미국의 인플레이션이 아직은 어두운 터널에 갇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 물가 잡아도 경기 침체는 또 다른 문제

1~2년 이내에 물가가 잡힌다면 심각한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상승)에 빠지는 것은 피할 수 있다. 그러나 경기 침체라는 고통까지 벗어나는 건 아니다. 

물가를 잡기 위해 이미 자이언트 스텝을 밟은 미국은 물론 빅 스텝(0.5%포인트 인상) 가능성이 커지는 우리나라도 급격한 금리 인상에 따른 경기 침체를 피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이미 곳곳에서 경기 냉각의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중국에서 미국으로 가는 컨테이너 운임이 하락세다. 화물운송 가격 서비스 업체 프레이토스의 해상 운임 지수(FBX)를 보면, 최근 아시아에서 미국 서부 해안으로 가는 컨테이너 2TEU(40피트짜리 표준 컨테이너 1대)의 현물 운임은 8934달러(약 1158만원)를 기록해 17% 정도 하락했다. 중국의 강력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봉쇄가 어느 정도 풀리면 해상 물동량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미국의 소비 둔화가 더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파악한다. 미국의 6월 미시간대 소비자태도지수는 50.0으로 사상 최저치를 연이어 경신하고 있다.

미국 상무부는 지난달 29일(현지시간) 1분기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을 연율(전분기 대비 성장률을 연간 기준으로 환산)로 마이너스(-) 1.6%로 확정했다. 이날 확정치는 지난 5월에 공개한 잠정치에서 0.1%포인트 낮아진 것이다. 미국 경제의 마이너스 성장은 코로나19 사태 초기인 2020년 1∼2분기 이후 처음이다. 이로써 6개 분기 연속 플러스 성장세에도 마침표를 찍었다.

미국의 1분기 GDP 발표 후 모건스탠리 웰스 매니지먼트의 리사 샬럿 최고 투자책임자(CIO)는 "미국 경제의 침체 확률이 두 배 높아졌다"며 "S&P500 지수가 바닥을 보려면 10%는 더 떨어져야 한다"고 진단했다. 블랙록자산운용의 필립 힐데브랜드 부회장도 지난달 28일(현지시간) 외신 인터뷰에서 "실물 경제에 큰 피해를 주지 않고 인플레이션이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목표인 2%에 도달하지는 못할 것"이라며 "중앙은행이 경기 연착륙을 이끌 가능성에 회의적"이라고 말했다.

니혼게이자이는 금융정보 서비스업체 '퀵 팩트 세트'의 자료를 인용해 세계 2349개 상장 제조업체의 올해 3월 말 기준 재고가 1조 8696억달러(약 2415조원)로 작년 말보다 5.5%(약 970억달러) 늘었다고 보도했다. 조사 대상 업체의 전체 재고액과 증가액 모두 최근 10년 이내 최대치다.

삼성전자의 재고는 44억달러(약 5조 7000억원) 늘어난 392억달러(약 50조 7000억원)로 달러화 기준으로 주요 제조업체 중 가장 많이 늘었다. 삼성전자의 재고가 3개월 동안 13%나 늘어난 이유는 '공급망 혼란에 따른 원자재 비축'으로 꼽았다.

니혼게이자이는 "기업이 공급망 혼란 등을 고려해 재고를 쌓아놓는 측면도 있지만, 최근 인플레이션 압력이 커지면서 일부 제품의 수요가 둔화하고 있어 과잉 재고 우려가 나온다"며 "기업이 재고 조정으로 전환하면 생산활동이 정체돼 경기가 하강할 위험이 있다"고 분석했다.

◇ 호통치고 읍소는 해도 고통 분담 언급 없는 추경호

세계 경제가 스태그플레이션에 빠질지, 아니면 그보단 약한 둔화 수준일지는 여전히 논쟁 중이다. 금리를 빠르게 올려 일단 물가를 잡아야 한다는 데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물가가 잡혀가는 기미가 보이면 다시 금리 수준을 적정 수준으로 조정해 경기가 꺼지지 않게 방어해야 한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언제 마무리되느냐도 큰 변수다. 전쟁이 일찍 끝나면 에너지와 식량 무기화가 어느 정도 풀릴 가능성이 크다. 공급망이 드라마틱하게 회복하진 않겠지만, 최소한 스태그플레이션 우려만큼은 잦아들 가능성이 있다.

우리나라로선 글로벌 전쟁 이슈에 개입할 여지가 적다. 가능한 한 빨리, 잘 끝나길 바랄 뿐이다. 그래서 다시 물가다. 천정부지로 솟는 물가를 진정시키고 기다려야 한다. 추 부총리가 동분서주하고 있으나, 물가 전문가들은 정부의 역할에 의구심을 품는 이들이 많다.

1980년대 오일쇼크 때 '물가와의 전쟁' 현장 지휘관(1985~1987년 경제기획원 물가정책국장)을 했던 김인호 전 무역협회장(전 청와대 경제수석)은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결국 정부가 솔선수범해 지출을 억제해야 한다"고 일갈했다. 그는 "정부는 방만하게 쓰면서 기업과 국민만 씀씀이를 줄이라면 되겠나. 물가가 뛰면 사람들은 가격을 올려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이 심리를 잡는 것이 물가 관리의 절반이라고 보면 된다"고 역설했다.

김 전 수석은 당시에도 그런 취지에서 전년 재정지출에 대한 고려 없이 백지부터 예산을 다시 짜는 '영점기준예산(1982년, 1983년)'과 1985년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도 1984년 사상 최초의 국가 예산 동결이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당시 물가정책국의 사무관이 추경호 현 경제부총리다. 이런 과정을 몸으로 직접 겪었을 추 부총리의 입에선 나라 씀씀이를 줄이겠다는 얘기는 나오고 있지 않다.

우리나라 재정, 조세, 예산 관련 통계를 분석해 보고서를 내는 나라살림연구소는 지난 5월 18일, 윤석열 정부의 '2022년 2차 추경의 모든 것'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정부가 설명한 지출 구조조정에 대해 비판했다.

추 부총리는 당시 지출 구조조정을 통해 마련한 재원이 7조원이라고 했다. 그러나 금융지원 방식을 직접 융자에서 이차보전 방식으로 바꾼 것뿐이어서 지출량을 줄인 게 아니라 지출 방식을 바꿔 그대로 진행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 7조원을 유형별로 봐도 이차보전 사업 전환 1조 2000억원과 연차 보상비 등 인건비 삭감 552억원 등이 포함돼 있으나, 대부분 국방부 및 방위사업청 사업의 단순한 지출 시기 조정이라고 분석했다. 결국 7조원 중 공무원의 연차보상비 552억원만이 지출 구조조정을 통해 덜 쓰는 예산이라는 것이다.

현재까지 윤석열 정부의 제대로 된 재정 지출 구조조정 계획은 나오지 않고 있다.


김병수 기자 bskim@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