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윤’ 박성민 비서실장 전격 사퇴 배경 놓고 전운 감도는 국민의힘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1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 참석을 마치고 성남 서울공항에 도착한 윤석열 대통령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1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 참석을 마치고 성남 서울공항에 도착한 윤석열 대통령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사면초가의 위기에 놓였다. 오는 7일 성상납 증거인멸 교사 의혹과 관련한 당 윤리위원회 심사를 앞둔 상황에서 당 대표 비서실장을 맡았던 박성민 의원이 지난달 30일 전격 사퇴한 것이 발단이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정치권에서는 ‘윤핵관’(윤석열 대통령 측 핵심 관계자) 측이 이 대표를 대표직에서 하차시키기 위한 본격적인 움직임이 시작됐다는 해석이 나오기 시작했다. 사실상 이 대표를 고립시키기 위한 시나리오가 작동했다는 것이다.

박지원 "이준석, 사형선고 받기 전 사퇴 후 재기 노려야”

정치 9단을 자처하는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은 지난달 30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나와 박 비서실장의 사퇴와 관련해 “이준석 고립작전”이라면서 “험한 사형선고를 받고 죽는 것보다 자기 스스로 물러가서 다시 재기하는 방법을 택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원장은 이어 "오동잎 떨어지면 가을이 온 것을 알아야 한다"라며 "이 대표는 견딜 수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태양은 둘이 아니다”라며 “집권 여당의 대표가 어떤 처신을 해야 되는가 이걸 잘 알았어야 된다”고 덧붙였다. 

또 박 원장은 "‘친윤’(친윤석열) 비서실장까지 사퇴하고 대통령이 나토 가시면서 권성동 원내대표만 공항에 나오게 하고 대표는 못 나오게 하고"라며 "형사소송법상 종범인 김철근(정무실장)이 징계 처분을 받게 돼 있으면 주범은 유죄가 되는 거 아닌가"라고 했다.

'알아서 그만두라는 대통령의 사인처럼 느껴지나'라는 진행자의 질문에는 "저는 그렇게 본다. 거취를 결정해라 하는 경고라고 봤다"며 "저는 모르지만 (이 대표가) 관둔다고 본다. 그렇게 해야 되는 거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국민의힘 당내에서도 하루 내내 술렁이는 분위기를 보였다. 이는 대표적인 친윤계로 꼽히는 박 의원이 대선 이후 지금까지 비서실장을 맡은 것도 윤석열 대통령의 ‘가교 역할’ 부탁을 받고 수용했던 배경도 작용했다. 박 의원의 사퇴가 윤 대통령의 의중이 담긴 것 아니냐는 해석들이 분분했기 때문이다.

박 의원은 “일신상의 이유로 당대표 비서실장직을 사임했다”고 밝혔다. 이 대표 비서실장을 맡은 지 3개월여 만이다. 박 의원은 울산 중구청장 시절 국가정보원 댓글 수사로 정권에 밉보여 윤 대통령이 대구고검에 좌천돼 내려왔을 때 깊은 교분을 쌓은 관계로 알려졌다. 비서실장을 맡으면서는 대통령실과 이 대표 사이를 조율하는 ‘평화유지군’을 자처하기도 했다.

이 대표를 둘러싼 이상기류를 암시하는 전조 현상은 이미 나타났다. 윤 대통령과 비공개 만찬 여부를 놓고 대통령실과 이 대표 사이의 진실공방전이 벌어진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통상적으로 대통령과 여당 대표의 회동 사실은 굳이 비공개로 차단막을 치는 경우가 없었다. 하지만 대통령실은 이 대표의 체면을 상관하지 않고 만남 자체를 공개적으로 부인하는 모습을 연출했다.

더욱이 윤 대통령이 취임 후 첫 해외순방을 배웅하는 자리에도 대표적 윤핵관인 권성동 원내대표는 참석했지만, 이 대표의 모습은 보이지 않아 입방아에 오르내렸다. 이때부터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 대해 ‘거리두기’에 나선 것 아니냐는 이야기들이 급속도로 나돌기 시작했다. 

좁혀지는 이준석의 선택지 ‘자진사퇴’ 아닌 ‘버티기’?

이 대표의 정치적 운명이 달린 윤리위 기류도 심상치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이전부터 이 대표에 대한 윤리위의 중징계 가능성은 계속 거론됐다. 대표직을 수행할 수 없는 ‘당원권 정지’라는 중징계 수위가 구체적으로 떠돈 것이다. 

윤리위 규정 21조를 보면 징계 수위는 강한 순서대로 제명·탈당권유·당원권 정지·경고 4단계로 구분한다. 경징계인 경고에 그치더라도 대표직을 유지할 수는 있지만, 정치적 타격은 불가피하다.

실제로 지난달 22일 윤리위는 이 대표 측근으로 증거인멸 교사를 받았다는 의혹의 당사자인 김철근 정무실장에 대한 징계 절차를 개시한 바 있다. 이 대표 징계에 앞선 징검다리 절차로 해석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이 대표는 일단 차분한 대응 모습을 보였다. 윤리위 개최 전 사퇴설과 관련해 “그런 경우는 없다”고 일축했다. 박 의원의 비서실장 사퇴에 관해서는 “박 실장에게 상황 설명을 듣고 박 실장의 뜻을 받아들이겠다고 해서 사임하게 된 것”이라고 했다. 별다른 의미 부여를 하지 않으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또한 이 대표는 지난달 30일 새벽 페이스북에 “뭐 복잡하게 생각하나. 모두 달리면 되지. 그들이 감당할 수 없는 방향으로”라는 글을 올렸다. 기자들이 글의 의미에 관해 묻자 이 대표는  “아무리 정치적 사안이 발생해도 개혁 동력은 이어나가야 한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최근 당과 정부의 지지율 하락을 언급하며 “돌파할 방법은 개혁에 박차를 가할 수밖에 없다”고도 했다.

당 혁신위원회를 앞세워 개혁 명분으로 현 상황을 타개하겠다는 의중으로 보인다. 하지만 달리 해석하면 윤 대통령과 당 지지율이 하락하는 추세를 빌미로 삼아 정치적 방어막을 세우려는 의지로도 읽힌다.

하지만 막상 윤리위에서 중징계가 결정된다면 정치적 후폭풍이 만만치 않으리라고 전망된다. ‘달변’인 이 대표가 인터뷰 등을 통해 여론전에 나서는 한편 징계 무효소송에 나설 수도 있다. 이 대표가 자진사퇴를 택할 가능성은 사실상 없다. 사퇴를 선택하면 성 상납 의혹을 인정하는 셈이고, 정치인으로서 회생하기 힘든 이미지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어서다. 이 대표가 ‘버티기’에 나서는 과정에서 당내 분란과 혼란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이는 앞으로 당권의 향방을 놓고 친윤계와 안철수 의원이 연대해 이 대표와 대립할 가능성을 염두에 둔 전망이다. 친윤계는 4~5개월짜리 과도기 대표로 안 의원을 대표로 앞세운 뒤 내년 1월 이후 전당대회를 기다릴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안 의원이 총선 공천권도 없는 허수아비 대표직을 맡을 것이냐 여부다. 당내 입지를 다진다는 차원에서 친윤계와 손을 잡을 것인지, 아니면 정치적 독립을 위해 친윤계와 경쟁하는 구도를 택할 것인지 두 갈래 길이 있다.

이에 따라 이 대표, 친윤계, 안 의원 등이 서로 복잡한 셈법이 얽혀 피비린내 나는 당권 투쟁 양상을 보인다면 국민의힘 내부가 크게 흔들릴 수밖에 없다. 그 여파는 윤 대통령의 지지율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재형 기자 silentrock@hankook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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