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해보지 못한 혹독한 경제 환경 대비 필요

독일의 5월 소비자물가지수(PPI)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33.6% 상승률을 기록했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인 1949년 이래의 최고치이다.

이 때문에 5월의 유럽은 전기료를 작년 동월대비 90% 더 납부했고, 농부들은 비료값으로 110%를 더 지불했다. 부인할 수 없는 인플레이션의 증거다.

최근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행한 하원 은행소위원회 청문회 등에서의 발언은 비교적 단순하게 해석이 가능하다.

우선, 파월 의장은 6월에 75 bps 정책금리를 올렸고, 오는 7월에는 50bps 또는 75 bps 인상 중 하나를 선택하겠다고 했다. 즉, 인플레이션 도래에 대한 공적 진단이다. 또 한편으로 미국 경제가 불황에 접어들 가능성이 높다고도 했다.

따라서 파월 의장이 언급한 두 가지 키워드인 ‘인플레이션’과 ‘불황’을 결합하면 글자 그대로 스태그플레이션이 된다. 전세계 자본시장 총사령관의 진술이다. 1970년대에 사라진 스태그플레이션이 50년 만에 도래하고 있다는 경고이기도 하다.

이와 같이 이미 텃새가 된 ‘블랙 스완’(도저히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일이 실제로 일어나는 현상)의 시기에 줄 수 있는 투자조언은 겸손하라는 말이다.

최근 자금조달을 원하는 벤처회사들 중의 일부가 밸류에이션을 큰 폭으로 하향조정하고 있다. 기업공개(IPO)를 준비 중인 회사들 중 일부도 심지어 최종 프리IPO 가격보다 낮은 IPO가격도 감수하겠다고 한다. 시장에 대한 겸손한 태도가 표출되고 있는 것이다.

반면에 기관투자자들은 투자위탁을 원하는 펀드들의 자격조건으로 과거의 성과와 실적, 투자처 파이프라인뿐만 아니라 운용역들의 이력을 꼼꼼히 따지기 시작했다. 최소 2~3번의 글로벌 위험을 극복하고 리스크관리를 제대로 해본 경험이 있는 인력의 비중이 낮다면 최종 후보명단에서 제외하는 모펀드들이 점점 늘어가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우리가 경험해 보지 못한 초유의 시장 급등락이 향후 1~2년 내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를 반영한 행태들이다.

이 때문인지 홍콩 자산운용시장에서는 모처럼 은퇴한 펀드매니저들을 고문으로 찾는 곳이 많아졌다는 후문이다. ‘고령자 우대’라는 흔치 않은 조건이 헤드헌터들의 전단지 하단에 붉은 글씨로 적혀 있기도 하다. 젊은 패기와 더불어 진중한 경험을 확보해 대비하는 것이다.

예컨대 2021년 한 때 3% 초반까지 하락했던 미국 30년물 모기지 대출금리가 오일쇼크와 스태그플레이션의 충격파가 휩쓴 1980년대에 평균 13%까지 급등했던 사실을 알고 있는 젊은 세대는 많지 않다. 만일 1980년대처럼 주택담보대출금의 13%씩을 매년 이자로 납부해야 한다면 4년이면 주택 값의 50%를 주택보유비용으로 지불해야 한다는 말이다.

2022년 6월 현재 해당 모기지 대출금리가 6%에 육박해 있어, 향후 12개월 사이에 2~3% 가량의 정책금리 인상이 추가된다면 동 수치는 9~10% 전후를 향하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 같은 금융시장 환경에서는 지난 10년 넘게 적용하였던 자산가치평가 방법론은 180도 다시 써야 한다. 할인율이 모든 자산의 밸류에이션을 지배하는 변수가 작동하는 시대가 왔기 때문이다.

돈 가치 하락하자 중간선거 고심 깊어진 바이든 대통령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틈만 나면 기자회견을 통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러시아를 공급망 붕괴와 인플레이션의 원흉으로 비난하고 있다.

일정 부문 맞는 말이다. 우선 팍스아메리카나의 이권이 작동하지 않게 됐다. 수십년간 미국은 저개발국들이 생산한 초저가 생필품부터 값싼 내구재를 편하게 사들였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은 이 같은 미국 중심의 공급망을 흔들었다.

하지만 전세계 초저가 공급망이 막힌 것은 전쟁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이 더 큰 원인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을 위협하는 인플레이션은 근본적으로 유동성 버블에 기인한 것이다. 그래서 모든 것을 싸잡아 러시아를 악당으로 모는 것은 뭔가 찜찜하다.

바이든 행정부가 전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시행한 무역전쟁 즉, 관세과금(최대 25%)을 슬쩍 풀어줄 수 있다고 하면서 중국에 갑작스런 회유책을 꺼내 보인 것도 미묘한 이중성을 드러내는 일이다.

헨리 키신저 이래 미국의 대외정책에 있어서 가장 똑똑한 천재로 불리는 제이크 설리반 백악관 외교안보 보좌관이 수주 내 미·중 정상회담이 있을 수 있다는 뉴스브리핑을 했다. 하지만 대만해협을 위협하는 중국의 제3호 항공모함이 푸젠호 이름으로 비장한 진수식을 하는 장면과 교차되면서 뭔가 불편하다.

진실은 미국 정치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우크라이나 전쟁의 향배도, 대만해협 긴장고조도, 기후 위기도 아니라는 것이다.

문제는 표심이다. 표심은 돈과 불가분의 관계이다. 그래서 돈의 가치가 떨어지는 소리는 오는 11월 중간선거에서 바이든 정부와 민주당의 패배를 경고하는 전조등과 같다.

먹고 사는 것이 팍팍해질 때, 독재국가를 제외하고 집권당이 승리한 사례는 극히 드물다. 신자유주의로 풀려나간 초과 유동성 해체라는 위기적 현실 앞에 미국 집권당인 민주당의 입장에서는 중국을 향한 선택적 데탕트(화해)가 비록 이중적으로 보일 지라도 정답이 될 수 있다.

따라서 불거진 인플레이션 압력을 중국의 저가 공급망을 신속하게 복원해 방어해 나가고, 다른 한편으로는 러시아를 인플레이션 악당으로 만드는 프로파겐다를 지속하는 전략이 지금으로서는 효율적 정권 방어전략으로 보인다. 최소한 오는 11월까지는 그러하다.

물론 망외의 과실은 중국이 취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중국은 트럼프 행정부가 부과한 불공정한 관세를 이 참에 벗어나는 것을 노릴 것이다.

연간 약 100조~150조원에 달하는 보복관세가 사라지면 소규모 국지전 한두 개쯤 피한 정도의 비용절감이 중국에 선물로 가게 된다. 없는 살림에 단비가 아닌 수 없기에 중국 또한 미묘한 시기에 발생한 매력적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최선을 다해 무역협상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리만 사태 또는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민간부문의 부채를 공공이 떠안았던 것을 역으로 바로잡겠다는 연준의 유동성의 회수는 중단될 수 없다. 악당 러시아가 오늘 사라지고 미·중 무역분쟁이 원만히 타협된다고 한들 부풀어 올랐던 유동성버블은 하루아침에 사라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현금이 왕’…유동성 위기 해결 위한 대비책 필요

당분간 최선의 투자전략으로 현금비중을 늘리는 것을 추천하는 이가 많아졌다. 리스크가 높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무한정 돈을 금융시스템에 퍼 넣던 미국의 연준과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본격적으로 물고를 잠그기 시작하자 취약 자산부터 버블의 붕괴가 가시화되고 있다. 글로벌 금리인상이 향후 1년 내 누적 200~300 bps를 넘어선다면, 20~30개의 신흥국이 외환위기로 빠져들 것이라는 괴설도 난무하고 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연준의 유동성 공급지표인 자산규모 또한 아래 그래프에서와 같이 하방으로 꺾였다는 것이다.

 

 

위 그래프는 양적완화가 양적긴축으로 넘어가고 있는 변곡점을 분명히 나타내고 있다. 지난 4월 12일 약 8조9700억달러로 역사상 최고점을 찍었던 연준의 자산규모는 5월말 약 8조9200억달러로 500억달러(약 65조원) 가량이 축소됐다.

이 같은 추세전환은 더 이상 연준이 채권보유를 늘리거나 유지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의미한다. 또한 이는 파월 의장의 자산축소 프로그램(양적긴축)이 청사진과 같이 집행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미국의 양적긴축은 비단 미국 내 유동성의 축소에만 영향이 제한되지 않고, 역외 유동성 축소에도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친다.

혹자는 1997~1998년 아시아의 외환 금융위기의 근원적 이유를 1993~1994년에 시행된 앨런 그린스펀 연준 의장의 300 bps 금리인상을 통한 미국 내 유동성 축소정책에서 원인을 찾는다.

만일 이 같은 유동성 썰물이 2022~2023년에 재현된다면 J커브 효과를 거쳐 몇 년 뒤에는 형태를 달리하는 글로벌 유동성 위기로 귀결이 될 가능성도 심도 있게 모니터링 해야 할 것이다.

달러화 가뭄이 현실화될 경우 각국은 한 줌의 달러화 유동성을 찾아 혈안이 될 수밖에 없다. 이같은 시나리오가 그려진다면 선제적으로 ‘외국인 직접투자’(FDI)를 유치하는 노력을 경주하는 것이 한국을 비롯한 비기축통화국이 시급히 고민하여야 할 정책포인트이다.

외환 사정이 정말 어려워져 ‘핫머니’에도 구걸했던 비굴함을 우리 역시 경험했다. 아직 조그만 잔칫상만 차려줘도 유입이 가능한 건전한 외국인 직접투자가 남아있을 때, 신속히 유동성을 선제적으로 확보하고 장기 우량 외국자본을 유치하는 것이 해법일 가능성이 높다.  미국의 바이든 대통령도 연일 아시아 제조강국의 미국 내 직접투자를 손수 독려하고있다. 심지어 일본도 구마모토 지역에 대만 반도체사인 TSMC의 투자유치를 위해 전대미문의 막대한 감세 등 투자 유인책을 보장하고 있는 것은 복합적 노림수에서 설계된 것으로 봐야 한다.

대외금리차에 따른 핫머니 유출설도 버려야 한다. 금리차에 따른 국가간 자본의 이동은 기축통화 사이에서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한미간 금리역전에 호들갑을 떨 필요도 없다. 극히 소수의 단기적 예외를 제외하고 한미간 금리차가 원달러 환율에 미치는 영향도 없거나 매우 적다.

만일 이 같은 금리역전현상으로 역내통화가 약세를 보이고 자본이 유출된다는 이론이 성립하려면 수 십년간 제로금리 수준을 유지하면서 막대한 금리역전 현상을 방치하고 있는 일본은 벌써 외자유출로 나라가 거덜났어야 맞다.

하물며 3대 국제 통화인 일본 엔화의 경우에도 이와 같은데 미 달러화 대비 한국 원화는 더더욱 금리 스프레드 민감도가 실체적으로 지속될 수가 없다. 정책이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아 소중한 국가자원이 낭비되지 않기를 바란다. 위기의 시대에는 더욱 절실하다.

벌써 한국에는 장마가 오고 있다. 장마철에는 비를 피하기 어렵다. 최근의 ‘버블붕괴의 시대’에 자산가격 하락은 장마철에 비를 피할 수 없는 것과 유사하다.

물론 장마철에도 하루 종일 비가 오는 것이 아니듯 가끔은 반등 장세가 보일 것이다. 하지만 스태그플레이션에서의 자산지수 패턴은 하락장의 톱니는 길고, 반등장의 톱니가 짧은 우하향의 궤적을 그릴 가능성이 높다.

저인플레이션과 제로금리에 중독된 개인, 기업 및 정부계정은 계절이 완전히 바뀌었다는 사실을 자각해야 한다. 이를 토대로 안전한 헷지전략으로 어려운 시기를 극복해 멀지 않은 미래에 더 큰 이익을 향한 좌표를 차지하기를 진심으로 염원한다.


주간한국편집부 weeklyhk@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