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정유사 가격 담합 조사, 국회는 정유사 초과이윤 회수하는 ‘횡재세’ 거론 

지난달 14일 서울 시내 한 주유소 모습. (연합뉴스)
지난달 14일 서울 시내 한 주유소 모습. (연합뉴스)

“주유소 가기가 두렵다.” 휘발윳값이 지난해 10월 리터(L)당 평균 1800원을 넘었을 때 하소연처럼 나온 말이다. 

8개월이 지난 지금은 여기서 300원 넘게 더 올랐다.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서비스 오피넷에 따르면 전국 주유소에서 판매되는 휘발유의 평균 가격은 지난달 28일 기준 리터당 2137.3원으로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경유 역시 리터당 2158.2원으로 역대 최고 수준이다. 유류세를 30%까지 인하했어도 이 정도다. 

이달부터 유류세 인하 폭을 법정 최대한도인 37%까지 확대하지만, 기름값이 잡힐 것이라 기대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종전과 비교해 휘발유는 리터당 57원, 경유는 38원 추가 인하 효과가 있다고 하지만 이미 리터당 2200원을 바라볼 정도로 기름값이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벌써 화물차주들이 파업에 나서는 등 고유가에서 파생된 사회불안은 갈수록 고조되고 있다. 고유가를 어떻게든 잠재워야 하는 정치권에서는 정유사 이익을 환수하는 방안까지 거론하고 나섰다. 

정유사에 ‘고통 분담’ 요구하며 칼 빼드는 정치권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가 지난달 21일 오전 유가 폭등 대책 마련을 위해 서울 양천구 양천현대셀프주유소를 방문, 관계자와 대화하고 있다.(연합뉴스)

국회에서는 유류세 탄력세율 범위를 50%까지 늘리는 방안이 입법된 데 이어 정유사의 초과이윤을 세금으로 환수하는 이른바 ‘횡재세’까지 거론되고 있다. 

지난달 21일 더불어민주당에서 김성환 정책위의장이 “정유사의 초과 이익을 최소화하거나 기금 출연 등을 통해 환수하는 방안을 마련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박홍근 원내대표도 이에 찬동하며 “정유업계에 고통 분담을 요구하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여당인 국민의힘에서도 이틀 뒤인 23일 권성동 원내대표가 “정유사들도 고유가 상황에서 혼자만 배 불리려 해선 안 된다”며 정유사를 겨냥하는 발언을 거들었다. 

기름값 인상이 대표적 민생 과제라는 점에서 정치권에서도 여야 구분 없이 입법에 힘을 모으는 모양새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원내대표도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정유사들이) 손실은 보상도 안 해주면서 이익에는 왜 과세를 하느냐는 항변이 있는데 에너지 회사는 엄청난 규모의 보조금 혜택을 누리고 있다”며 횡재세 도입 여론에 가세했다.

이런 가운데 당국이 기름값을 놓고 정유사들의 담합 여부까지 조사하고 나서 이들 업계에선 초긴장 상태다. 공정거래위원회와 산업통상자원부는 합동점검반을 구성하고 정유업계에서 불공정행위가 이뤄지지 않는지 점검할 예정이다. 유류세 인하분이 정유사 공급가격과 주유소의 판매가격에 반영되고 있는지, 유가 상승 분위기에 편승해 부당하게 가격을 올리지는 않았는지 등을 확인하자는 취지다.

실제로 담합 소지가 발견될 경우 횡재세를 비롯한 석유 업계 압박 기조는 본격화될 수 있다. 정부 관계자는 "산업부 주관으로 (유류세 인하분이 제대로 반영되고 있는지) 점검하면서 비정상적으로 가격을 올린다든가 공정위 소관 법률 위반 정황이 있는지도 한번 보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제 마진 높아져 초호황 실적 이어가는 정유사

지난 1일서울의 한 주유소. (사진=연합뉴스 제공)
지난 1일서울의 한 주유소. (사진=연합뉴스 제공)

최근 정유사들이 ‘초호황기’라고 불릴 정도로 업황이 좋은 점도 횡재세 도입에 사실상 빌미를 제공했다. 

SK이노베이션, 에쓰오일, GS칼텍스, 현대오일뱅크 등 국내 정유 4사는 올해 1분기에 영업이익 4조 7668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1분기와 비교해 2조 5079억원이나 늘었다. 

2분기 실적도 호조가 예상된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 집계에 따르면 SK이노베이션 2분기 영업이익 컨센서스(증권가 평균 전망치)는 1조 936억원으로, 기존 전망치(1조144억원)에서 800억원 가까이 증가했다.

에쓰오일(S-Oil) 2분기 영업이익 컨센서스도 9163억원으로 기존 전망치 8687억원보다 500억원 가량 늘었다. GS칼텍스와 현대오일뱅크도 2분기 실적 호조를 보일 것으로 업계에서는 전망하고 있다.

소비자단체 E컨슈머 에너지·석유시장감시단은 이 같은 정유 업계 호조의 배경으로 유류세 인하분을 충실히 반영한 주유소가 극소수에 불과하다는 자체 분석 결과를 내놨다. 

국제 휘발유 가격은 유류세 인하 전인 작년 11월 11일에 비해 리터당 420원 올랐고(지난달 18일 기준),  유류세는 247원 내렸지만  휘발유 가격은 이 둘의 차액인 173원보다 더 많이 올랐다는 지적이다. 이 기간 전국 주유소의 휘발유 가격은 평균 294.52원 올랐고, 주유소 1만792곳 중 99.24%가 차액 173원보다 휘발유 가격을 많이 인상한 것으로 집계됐다. 

경유 역시 같은 기간 국제 경유 가격이 리터당 558원 오르고 경유 유류세는 174원 내렸지만 전국 주유소의 평균 경유 판매 가격은 507.25원 오른 것으로 조사됐다. 주유소 1만792곳 중 99.65%가 차액 384원보다 경유 가격을 많이 인상한 것이다.

반면 유류 사용량은 증가했다. 지난달 24일 한국석유공사의 석유정보 사이트 페트로넷에 따르면 5월 국내 휘발유·경유 합계 소비량은 2482만 2000배럴로 4월보다 43.0% 증가했다. 5월 국내 휘발유·경유 소비량이 전월보다 40%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서혜 에너지·석유시장감시단 연구실장은 "휘발유는 주유소 단계에서 (유류세 인하분이) 덜 반영되는 측면이 있고, 경유는 정유사가 더 문제인 것 같다"며 "경유에 대한 정유사 마진(이윤)이 재작년 중순께 크게 오른 뒤 지나치게 높게 유지되고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재 글로벌 정유 업계에서 벌어지는 특수한 상황을 감안하면 고유가의 책임을 정유사들만의 문제로 치부하기도 어렵다는 말도 나온다. 

현재 정유업계 전반의 호황은 정제마진 때문이다. 정제마진이란 정유사가 휘발유와 경유 등 제품을 생산하면서 원유가격과 수송비 등 원가를 제외하고 남긴 차익을 말한다. 정제마진은 보통 고유가 국면에 높은 경향이 있는데 통상 배럴당 4~5달러를 넘어야 손익분기점으로 본다. 

정제마진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여파로 2020년 한때 마이너스 수준까지 떨어졌지만 최근 각국이 엔데믹 이후 경제활동을 재개하면서 수요가 급증했다. 여기에 세계 3위 산유국인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원유 공급을 끊으면서 공급 불안은 심화됐다. 

결국 지난 1~2월까지만 해도 배럴당 5~7달러 수준이던 정제마진은 3월 둘째 주 12.1달러로 치솟더니 3월 넷째 주에는 13.87달러로 역대 동기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후 폭등을 거듭해 5월 첫째 주(24.2달러)까지 매주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특히 6월 넷째 주 싱가포르 복합 정제마진은 배럴당 29.5달러로 관련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2000년 이후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 주 앞선 셋째 주 기록인 24.41달러에서 다시 5.09달러가 더 올라 최고치를 경신했다.

미국과 유럽도 석유 및 가스 회사 ‘세금 때리기’ 나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2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에서 고유가 대응 방안에 대해 연설하고 있다. 그는 사상 최고 수준을 이어가고 있는 유류 가격과 관련해 의회에 향후 3개월간 연방 유류세를 면제하도록 하는 내용의 입법을 요구했다. (워싱턴 AFP=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2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에서 고유가 대응 방안에 대해 연설하고 있다. 그는 사상 최고 수준을 이어가고 있는 유류 가격과 관련해 의회에 향후 3개월간 연방 유류세를 면제하도록 하는 내용의 입법을 요구했다. (워싱턴 AFP=연합뉴스)

금융 제재로 코너에 몰리는 듯했던 러시아가 버티면서 고유가 국면은 서방세계가 당분간 해소하기 어려운 난제가 될 가능성이 커졌다. 국제 금융결제망인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스위프트) 배제로 곤두박질쳤던 러시아 루블화 역시 대중 무역 등에 힘입어 급등하고 있다. 러시아는 서방세계의 금융제재로 104년만에 디폴트(채무불이행) 상황에 빠졌지만, 달러당 루블화 가치는 지난달 29일(현지시간) 기준 장중 달러당 50.01루블로 2015년 5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러시아 경제가 버틸 수 있었던 건 중국과 인도가 러시아 석유 수출 물량을 받아낸 데다 현실적인 여건상 유럽연합(EU) 각국이 수입 금지에 나서지 않은 영향으로 분석된다. 

지난 5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에너지 자문기구인 국제에너지기구(IEA)가 발표한 월간 시장보고서에 따르면 러시아의 석유 판매수입은 올해 초보다 50% 증가했다. 하루 원유 생산량 1000만 배럴 중 800만 배럴을 팔아 치워 월간 200억달러(약 25조원) 수준의 수입을 올리는 것으로 집계됐다.

결국 러시아 제재에는 실패하고 고유가 고통을 감내하게 된 미국과 유럽은 ‘정유사 때리기’ 움직임을 확산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상원 론 와이든 금융위원장이 이윤율이 10%를 넘어서는 석유기업에 추가로 연방세 21%를 물리는 법안을 다음달에 제출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10일(현지시간) 연설에서 "엑손모빌은 지난해 하느님보다 더 많은 돈을 벌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영국은 석유 및 가스 회사의 이익에 25% 횡재세를 부과하기로 했으며 이탈리아, 헝가리, 스페인도 초과이윤세를 매기고 있다.

한편 전문가들은 섣불리 정유사에 대해 과세하기보다는 다방면의 고려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정준환 에너지경제연구원(KEEI) 에너지산업연구본부장은 "횡재세를 도입하자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제도를 도입하기 전에 종합적으로 공론화하고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 본부장은 이어 "횡재세를 도입한다면 어떤 방식으로 세금을 걷고 어떻게 분배할 것인지, 정유사가 과거 사례처럼 큰 손실을 맞게 된다면 손실보전과 같은 정부의 지원책이 있는지, 자동차나 기타 다른 산업군에 미치는 파급 효과 등을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재형 기자 silentrock@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