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신자들이 입장에 앞서 발열 체크 및 손소독을 하고 있다. 여의도순복음교회는 코로나 재확산 우려 선제조치로 이날 주일예배부터 발열 체크를 다시 실시한다. ⓒ연합뉴스
17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신자들이 입장에 앞서 발열 체크 및 손소독을 하고 있다. 여의도순복음교회는 코로나 재확산 우려 선제조치로 이날 주일예배부터 발열 체크를 다시 실시한다. ⓒ연합뉴스

“인류가 출현하기 전부터 존재했던 전염병은 앞으로도 인류의 운명과 함께할 것이며, 지금까지 그랬듯이 앞으로도 인간의 역사에 근본적인 영향을 미치는 매개변수이자 결정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위 문구는 저명한 역사학자인 윌리엄 맥닐이 한 말이다. 전염병은 인류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쳐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글로벌 공급망의 붕괴, 식량 위기, 원격 근무 등등 다양한 분야에서 인류 생활의 급진적인 변화가 있었다. 

우리는 이제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대비해야 한다. 온고지신의 심정으로 과거 인류가 겼었던 전염병 등이 인류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고 세상을 변화하는 동력으로 작용하였는지 알아보는 것은 앞으로 다가올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대비하는 데 의미가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 동안 세기를 구분할 때에 BC (Before Christ)와 AD (Anno Domini) 로 나눈 표기법은 ‘코로나 이전’과 ‘코로나 이후’로 BC (Before Corona)와 AD (After Disease)로 바뀔 수 있다는 우스개 이야기처럼 코로나는 현대 인류역사에 매우 큰 영향을 끼치고 있고 이는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라고 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팬데믹의 발생은 문명적 전환기와 교차해왔다. 수렵과 채집에서 농경으로 정착할 때, 농경에서 산업사회로 전환될 때, 문명과 문명이 충돌할 때 새로운 질병이 발생했고, 인류는 대변혁을 통해 문명의 진화를 이루어 왔다. 

1. 페스트(흑사병)와 장원제도의 붕괴  

14세기경 유럽에 번진 흑사병은 유럽 전체 인구의 3분의 1가량을 죽음으로 내몰며 봉건제도의 붕괴 등 중세 유럽 사회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페스트는 쥐나 다람쥐 같은 설치류에 기생하는 벼룩이 옮기는 병으로 불에 덴 것처럼 수포가 생긴다. 고열과 고름에 시달리다가 정신을 잃고, 결국 발병 5일 이내에 피를 토하며 사망하게 되는 무서운 병으로 인류가 경험한 첫 팬데믹이라고 할 수 있다. 

페스트는 너무 빠른 속도로 전염되는 데다 죽은 시신에 검은 반점이 나타나기 때문에 ‘흑사병’이라고도 불렸다. 불과 4년 만에 흑사병으로 인해 전체 유럽 인구의 3분의 1이 사라질 정도로 전염력과 치명률이 높은 병이었다. 

이탈리아 피렌체는 11만 명이나 되던 인구가 4만 5,000명으로 줄었고, 영국 사람의 평균수명은 17세까지 낮아질 정도로 유럽에 페스트는 인구 구성과 국가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페스트로 인해 다양한 사회·문화·경제·종교 등의 변화가 촉발됐다. 페스트 사태 해결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은 종교는 그 권위를 급속히 잃었다. 세속 군주와 귀족들이 권력을 차지하면서 유럽은 빠르게 지방분권화 됐으며, 합리적인 사고에 기반한 철학이 부상했다. 

페스트가 휩쓸고 지나간 뒤 유럽에는 특히 경제 분야에 큰 변화가 일어났는데 죽은 사람으로 인해 노동력 부족이 가장 큰 원인이 됐다. 중세시대에는 영주와 농노 구조로 영주는 장원을 소유하며 농노를 지배하던 형태로 경제 활동이 이루어졌다. 페스트로 인한 노동력의 부족으로 영주들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각종 세금을 줄여주거나 돈을 받고 신분을 해방해 주게 됐다. 

실제로 페스트가 유행하기 전 일당 2실링을 받던 영국의 한 농부는 10실링 6펜스를 받게 됐다. 이는 갑자기 5배나 임금이 급상승한 수준인데, 지금 비유로 연봉 5천만 원 직원이 갑자기 연봉 2억5000만원이 된 것이다. 당시 경제 구조에 페스트가 미치는 충격이 얼마나 컸었는지 짐작해볼 수 있을 것이다. 

페스트의 공포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농노의 신분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었다. 장원 질서는 서서히 붕괴했으며 중세 유럽을 지탱하던 영주와 농노의 관계가 깨지면서 페스트는 중세 유럽의 경제 구조를 붕괴시키고 새로운 변화의 중심이 됐다. 

2. 대항해 시대와 천연두 

15세기에 개막한 대항해 시대는 단절된 지구가 하나로 통합되는 대전환이었다. 사람, 가축, 작물이 서로 이동될 뿐 아니라 천연두, 홍역, 발진티푸스 등 인류를 괴롭히던 전염병도 처음으로 함께 전파되는 계기가 됐다고 할 수 있다. 

천연두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증세가 전신으로 퍼지기 전에 우선 피부와 입, 목의 작은 혈관들에 증상이 집중되며 특유의 발진이 피부에 발생한다. 이 발진은 시간이 지나면서 유체가 채워진 수포가 되며 고열과 발진으로 사망하게 되는 병이다. 

구대륙과 바다로 단절된 신대륙 사람들에게 천연두는 처음 접하는 질병이었다. 멕시코 중부의 원주민 수는 2500만 명에서 70년 만에 16분의 1 수준인 100만 명으로 줄어들 정도로 신대륙의 인류에게 천연두는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원주민들은 면역력이 없어서 신대륙에서 천연두로 인한 치사율은 25~50%에 달했다. 1518년경을 시작으로 유럽인들이 대서양을 건너 신대륙으로 진출하는 16세기 모든 섬과 대륙에서 원주민 공동체를 무너뜨렸다. 이로 인해 신대륙의 원주민들은 천연두 이후 끝없는 내리막길을 걸었으며 신대륙은 ‘제2의 유럽’ 이 될 정도로 천연두는 신대륙의 경제, 사회, 문화에 큰 영향을 끼쳤다. 

천연두 환자는 1978년 마지막으로 영국에서 보고됐으며 세계보건기구(WHO)는 1980년 ‘천연두 박멸’을 선언했다. 최근 감염이 보고되고 있는 ‘원숭이두창’도 일종의 천연두와 같은 병인데, 만약 국내 유입된다면 50대 이하의 감염 위험이 상대적으로 높을 것이란 예상이다. 왜냐하면 원숭이두창과 유사한 천연두를 앓은 적도, 천연두 백신을 맞은 적도 없는 세대들이기 때문이다. 

3. 스페인 독감과 2차 세계대전 

스페인 독감은 1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인 1918년에서 1919년 주로 참전 군인들에 의해 전염이 일어났다. 조류 독감의 일종이었던 스페인 독감으로 5000만명이 사망했는데, 이는 1차 세계대전의 사망자수보다 세 배 이상 많은 숫자라고 한다. 

사실 스페인 독감이라는 명칭만 보면 스페인에서 창궐한 독감으로 오해할 수 있다.하지만 이 독감 때문에 스페인이 유명해진 이유는, 당시 제1차 세계 대전으로 인해 많은 관련국들이 보도 검열로 이 독감을 다루지 않았으나 스페인은 1차 세계대전 당시 중립국이었기 때문에 검열로부터 자유로워 이를 집중 보도했기 때문이다. 

스페인 독감이 세계 1차 대전을 빠르게 종결시키는 한 원인이 됐다는 주장도 있었다. 세계 1차대전 이후 영국은 경제적으로 몰락했으며 미국이 신흥 경제대국으로 떠오르면서 세계 경제 재편이 시작됐다. 1919년 제1차 세계대전을 끝으로 세계의 패권은 영국에서 미국으로 넘어갔다. 영국은 전쟁 비용을 미국에서 조달했는데, 미국이 전쟁을 치른 뒤에는 세계 최대의 채권국으로 변하게 된 것이다. 

영국과 프랑스는 전쟁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1919년 6월 체결된 베르사이유 조약을 통해 패전국 독일에 과한 배상금을 부담시켰다. 이로 인해 1923년 10월 독일의 국내 물가는 1년 전보다 75억 배 오르게 될 정도로 독일은 엄청난 어려움에 당면했다. 

그 결과 독일 국민의 엄청난 분노는 히틀러의 파시즘을 불러오게 됐다. 만약 과도한 배상금을 반대하던 미국의 우드로우 윌슨 대통령이 스페인 독감에 걸리지 않았다면 베르사이유 조약이 체결되지 않게 되었을 것이고 나치의 등장과 제2차 세계대전도 피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일각의 주장처럼 스페인 독감의 영향은 인류 근대사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할 수 있다.

전염병으로 인행 코로나19 사태는 문명이 발전할 기회일 수도 있을 것이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특히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류는 코로나19로 인한 어려움을 극복해왔다. 원격회의, 재택근무, 동선 추적, 앱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활용한 디지털 방역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정보통신기술(ICT)과 스마트 서비스 등을 활용해 코로나19를 극복해 왔다. 백신 또한 디지털 기술 등을 활용해 빠르게 개발이 됐고 이러한 점들이 과거 페스트, 천연두, 스페인 독감 때와는 다른 인류의 도전과 응전이라고 할 수 있다. 

앞으로도 바이러스는 더욱 다양하게 인류 앞에 모습을 드러낼지 모른다. 하지만 과학기술을 활용하고 미리 대비한다면 오히려 이로 인해 인류는 다른 발전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위기는 곧 기회’라는 말처럼 코로나19 사태가 인류에 기회로 다가오기를 희망한다.

● 손연기 강릉영동대학교 부총장 / 한국정보통신보안윤리학회장

1958년 강원도 강릉 출신으로, 고려대학교 심리학과를 졸업했다. 그후 미국 유타주립대에서 사회학과 학사를 거쳐 텍사스 A&M 대학교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숭실대 정보사회학과 학과장을 거쳐 한국정보문화센터에서 소장으로 근무했다. 특히 한국정보문화진흥원(현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 원장을 연임한데 이어 ICT 폴리텍대학 학장 과 행안부 산하 한국지역정보개발원 원장도 역임했다. 청소년보호위원회 위원장, 서울대 행정대학원 객원교수와 우송대학교 IT융합부 교수를 거쳐 현재는 강릉영동대학교 부총장 및 한국정보통신보안윤리학회장으로 활동중이다.

 

 

 


주간한국편집부 weeklyhk@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