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정부는 금리 인상과 외환 시장 개입을 통해 환율 전쟁에 대응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현재 정부는 금리 인상과 외환 시장 개입을 통해 환율 전쟁에 대응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환율 전쟁이라는 말이 있다. 경쟁적으로 자국의 통화 가치를 낮춰 수출을 촉진하는 것이다. 자국의 경기는 나아지겠지만 경쟁국의 생산과 고용은 줄어들어 불경기가 심화된다. 불경기를 수출하기 때문에 ‘인근궁핍화’ 정책이라고 불린다. 세계적으로 경기가 좋지 않을 때 흔히 등장한다.

요즘에는 반대로 ‘역환율’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각국이 경쟁적으로 금리를 올려 자국의 통화 가치를 높이는 것이다. 수입 물가를 낮춰 인플레이션을 완화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걷잡을 수 없이 번지는 세계적인 인플레이션이 이러한 기현상을 빚어냈다. 

지난 3월 기록적인 인플레이션에 견디다 못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금리 인상을 개시한 이후 각국에서 경쟁적으로 금리를 올리고 있다. 미국의 기준금리는 현재 1.75%에 이르고 있는데 여전히 금리를 0.75% 올리는 자이언트 스텝 얘기가 끊이지 않는다. 

우선 우리나라는 지난해 8월(0.75%)부터 금리 인상을 시작해 현재 2.25%에 이르고 있다. 끈질기게 버티던 유럽중앙은행(ECB)도 2011년 이후 처음으로 기준금리(0%)를 올리기로 결정해 손을 들었다. 전 세계적으로 금리 인상을 했거나 할 예정인 각국 중앙은행은 75곳에 이른다고 한다. 

다만 일본과 중국 두 나라만이 역주행을 하고 있다. 일본은 기준금리(-0.1%)를 동결하고 기존 양적완화 정책을 유지한다고 발표했다. 중국 역시 사실상의 기준금리인 1년 만기 대출우대금리를 3.75%로 동결했다. 전년 대비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이 일본은 2.5%(5월), 중국은 2.5%(6월)로 비교적 낮은데다 두 나라 모두 금리를 올리기 어려운 사정이 있다. 

일본은 과도하게 발행한 국채 때문에 빚 감당이 우려되고, 중국은 강력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봉쇄와 부동산 시장 붕괴로 성장 목표(5.5%)를 달성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나라 모두 기조를 바꿀 것이라는 전망이 그치지 않는다. 

금리를 올려 미국과의 격차를 줄이면 자국 통화 가치가 지나치게 내려가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그래서 수입 물가가 계속 올라가는 것을 막고 인플레이션의 기세를 억누를 수 있다. 또한 환차손을 우려해 자국에서 빠져나가려는 해외 자금을 돌려세우는 효과도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미국이 기준금리를 지속적으로 올리는 상황에서 달러 대비 환율이 올라가는 것은 불가피하다. 금리 인상은 불경기를 불러오며 이럴 때는 가장 믿을 만한 미국의 달러 자산을 보유하는 것이 안전하기 때문이다. 연초 이후 달러 대비 통화 가치는 엔화 20.2%, 유로 11.3%, 파운드화 12.2%, 위안화 6.3% 하락했고 원화도 11.5% 낮아졌다. 

금리만으로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하자 각국은 외환 시장에 직접 개입하고 있다. 외환 시장에다 달러를 내다팔고 자국 통화를 사들이는 것이다. 중국은 지난 6월 기준 3조 713억달러로 세계 최대의 외환을 보유하고 있으나 이는 지난 1월말과 비교하면 5.5% 줄어든 수치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지난해 11월(4692억달러) 이후 외환보유고가 지속적으로 감소해 이번 달 현재 4382억달러에 그치고 있다. 더구나 최근 들어 감소추세는 더욱 가팔라져서 지난달에만 94억달러가 줄어들었다. 이는 글로벌 금융 위기가 한창이던 2008년 11월 117억달러 감소 이후 13년 7개월 만에 최대폭이다.

그러자 외환 위기의 공포가 되살아나면서 시장의 심리가 불안해지고 있다. 주가는 하향 일방이 된 지 오래됐고, 움직임이 무거운 부동산조차 하락으로 방향을 전환하고 있다. 이러다가 또 한 번의 외환 위기를 겪는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으로 미국과의 ‘통화스와프’를 서둘러 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통화스와프는 현재의 환율로 돈을 상대국과 교환하고 일정 기간이 지난 후에 원금을 재교환하는 거래를 말한다. 우리 입장에서는 일종의 달러 마이너스 통장을 가진 셈이므로 심리적인 안정감을 줄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통화스와프는 미국의 국익에 따라서 체결 여부가 결정되는 것으로, 우리나라가 원한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또한 미국과 통화스와프 계약을 맺고 있는 일본·유럽·영국 등의 통화 역시 원화 못지않게 가치가 하락했기 때문에 통화스와프를 맺는다고 반드시 원화 가치 하락이 멎을 것이라고 장담하기 어렵다. 

불안감에 휩싸여 우왕좌왕하지 않기 위해서는 우선 현상을 정확히 파악할 필요가 있다. 우선 시장에서 돌고 있는 외화 유동성은 아직 부족하지 않다. 금융위기가 발생할 경우 외화 유출을 감당할 만큼 현금화가 가능한 외화 자산을 갖고 있는가를 측정하는 지표가 단기 유동성 비율(LCR)이다. 국내 은행의 외화 LCR 평균은 지난 5월 기준으로 119.2%로 정부 권고 수준인 80%를 초과하고 있다. 

통화 가치의 하락과 외환보유고의 감소가 우리만 겪는 일이 아니라는 점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일부 자원 부국을 제외하면 공통적으로 맞고 있는 현상이다. 이것은 세계적인 원자재 가격 상승과 미국 등 선진국의 방만한 통화 정책이 가져온 불가피한 결과이며 모든 나라가 어느 정도 부담을 나눠 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최근 환율 불안의 상당한 요인이 국내 투자자에게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최대 투자자인 국민연금의 해외 자산 보유 규모는 2700억달러에서 3300억달러로 지난해에만 600억달러 증가했다. 

해외 주식·채권 비중은 2017년 말 21.2%에서 지난해 말 33.8%로 늘었고, 대체 투자까지 고려하면 해외 투자 비중은 40%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수익률 증대를 위한 국민연금의 장기 전략에 따른 것이지만 달러 환율을 올리는 큰 요인 중 하나다. 

미국 주식 등에 투자하는 개인 투자자를 의미하는 서학개미도 환율 상승을 뒷받침하는 세력이다. 지난해 이들의 해외 주식 순매수 금액은 219억달러에 달해, 2019년 25억달러에 비해 크게 늘었다. 

국내 기업들의 해외 투자 확대도 환율 상승의 중요한 요인이다. 이들은 최근 해외 기업을 인수하거나 공장을 설립하는 방식으로 해외 진출을 확대하고 있는데 그 규모는 지속적으로 커지고 있어 지난해에는 700억달러를 넘어선 것으로 추정된다. 그 밖에도 해외 금융 자산에 대한 투자도 적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국내 요인은 어느 정도 정부가 관리할 수 있는 부분이다. 직접적으로 해외 투자를 막을 수는 없겠지만 운용 상황과 잠재적인 손실 가능성을 파악하고 해외 투자의 규모와 속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현재 정부는 금리 인상과 외환 시장 개입을 통해 환율 전쟁에 대응하고 있다. 그것만으로 부족해 혹시나 외환 위기로 번지는 사태를 막기 위해 다양한 조치를 강구하고 있다. 그러나 과거와 달리 환율 변동 요인의 상당 부분이 국내에 존재한다. 

그러한 요인들을 관리하면서 시장의 불안감을 가라앉히는 것이 현재로서는 최선의 방책으로 보인다. 우리 힘으로 얻기 쉽지 않은 통화스와프 등을 자꾸 거론하는 것은 오히려 시장의 불안감을 부추겨 사태를 악화시킬 우려가 더 클 것이다. 

정인호 객원기자 프로필

▲캘리포니아 주립대 데이비스 캠퍼스 경제학 박사 ▲KT경제경영연구소 IT 정책연구 담당(상무보) ▲KT그룹 컨설팅지원실 이사 ▲건국대 경제학과 겸임교수 등을 지낸 경제 및 IT 정책 전문가


정인호 객원기자 yourinho@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