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통화 스와프에 목맨 인상 주면서 러시아산 원유 가격 상한제 "OK"
美 반도체 전선 "칩(Chip) 4 검토" 선물까지 안겨 대중 수출 감소 우려
강달러로 인한 원화 방어도 버거운데 무역수지 악화 땐 충격 더 커져

[주간한국 김병수 기자] "양국 정상 간 합의 취지에 따라 경제안보동맹 강화 차원에서 외환시장 안정을 위해 다양한 방식의 실질적 협력 방안을 양국 당국 간 깊이 있게 논의해 달라."

지난 19일 방한한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을 용산 대통령실에서 면담한 윤석열 대통령이 한 말이다. 윤 대통령의 이 발언에 옐런 장관이 어떻게 화답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통화 스와프 등 외환시장 안정과 관련한 구체적인 방안이 논의됐느냐는 질문에 "구체적인 방안을 확인해 주기 어렵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의) 재무장관 회담을 위해 온 것"이라며 선을 그었다.

대화하는 윤석열 대통령과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서울=연합뉴스) 안정원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이 19일 오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과 만나 대화하고 있다. 2022.7.19 jeong@yna.co.kr
대화하는 윤석열 대통령과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서울=연합뉴스) 안정원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이 19일 오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과 만나 대화하고 있다. 2022.7.19 jeong@yna.co.kr

대통령 면담 후 추경호 부총리와 회담한 옐런 장관은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한 잔혹하고 불법적인 전쟁에 러시아가 책임지도록 하는 노력을 논의할 것"이라며 "러시아가 원유로부터 얻는 수익을 빼앗고 소비자 원유 가격을 낮추기 위해 러시아산 원유 가격 상한제를 논의하는 것도 포함한다"고 말했다. 두 장관의 만남에는 필립 골드버그 주한 미국대사, 박일영 기재부 국제경제관리관 등도 동석했다. 배석자의 면면을 보면, 이날 회담의 성격을 가늠해볼 수 있다.

우리 정부와 미국은 이렇게 결이 다른 목표를 가지고 회담장에 앉았다. 옐런 장관은 지난 5월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방한했을 때와 꼭 닮은 행보로 나섰다. 바이든이 삼성전자를 첫 행선지로 잡은 것처럼, 옐런은 입국하자마자 LG화학을 방문했다. 옐런 장관은 신학철 LG화학 부회장에게 배터리 충전 시간과 1회 충전 시 전기차 운행 거리, 재활용 배터리 사용 가능 시간 등을 묻는 등 관심을 표시했다.

◇ 헛물켠 한미 통화 스와프

우리나라에선 양국 재무장관 회담을 앞두고 한미 통화 스와프 체결에 관심이 컸다. 우리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 위기를 겪은 처지여서 '달러 부족'이라는 단어에 유독 민감하다. 글로벌 인플레이션으로 미국이 금리를 빠르게 올리면서 예전에 보지 못한 강달러 시대가 열렸다. 이미 국가 부도 사태를 맞은 스리랑카를 보면서 아픈 기억은 더 선명하게 솟아났다.

게다가 지난 6월 말 우리나라 외화보유액은 4382억 8000만달러. 전달보다 무려 94억 3000만달러나 줄었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8년 11월(117억 5000만달러 감소) 이후 13년 7개월 만에 가장 큰 감소 폭이다. 줄어든 보유액의 상당량은 환율 방어에 쓰인 것으로 추정한다. 국민의 눈앞에 'IMF 외환 위기'가 소환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옐런 장관의 방한 보따리에 선물(통화 스와프)은 없었다. 한미 양국이 외환 시장과 관련해 합의한 문안은 "양국이 필요시 (외화) 유동성 공급 장치 등 다양한 협력 방안을 실행할 여력이 있다는 데 인식을 공유했다. 외환 이슈에 선제적으로 협력해 나가기로 했다"는 것이다. 한미 통화 스와프를 명시하지 않은 채 '여력, 인식 공유, 협력' 등으로 퉁쳤다.

그나마 구체적인 단어가 '유동성 공급 장치 여력'이다. 금융시장에선 지난해 12월 21일(현지시간) 한국은행과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합의한 상설 피마 레포(FIMA Repo Facility)를 말한 것으로 해석한다. 이 제도는 한은이 보유한 미국 국채를 연준에 담보로 맡기고 달러화를 빌리는 것이다. 당시 합의한 규모는 총 600억달러로 금리는 0.25%다. 통화 스와프보다는 낮은 수준의 초단기 담보대출이다.

악수하는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과 추경호 경제부총리(서울=연합뉴스) 박동주 기자 =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왼쪽)이 19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한미재무장관회의에서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과 악수를 하고 있다. 2022.7.19 [공동취재]
악수하는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과 추경호 경제부총리(서울=연합뉴스) 박동주 기자 =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왼쪽)이 19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한미재무장관회의에서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과 악수를 하고 있다. 2022.7.19 [공동취재]

◇ 원유 가격 상한제 받고 '칩4'까지

그런데도 우리나라는 옐런 장관의 제안(?)인 러시아산 원유 가격 상한제에 동의(OK)했다. 이달 초 추 부총리와 옐런 장관이 콘퍼런스콜(전화 회의)을 통해 동참 문제를 논의하기 시작해 이번 방한에 맞춰 답을 준 것이다. 사실 이 문제는 그리 어려운 사안은 아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각국이 러시아 제재에 나서는 만큼 명분도 충분했다.

그러나 미국은 한발 더 나아갔다. LG화학을 방문한 옐런 장관은 "한국은 반도체와 배터리 등 핵심 부품을 생산하는 공급망의 주요 역할을 하고 있다"며 "양국은 협력을 통해 공급망의 병목 현상을 해결하고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이 추진하는 '프렌드 쇼어링(friend-shoring)'에 참여를 강하게 압박한 것으로 풀이한다.

미국의 프렌드 쇼어링은 반중(反中) 전선 구축을 전제로 하고 있다. 옐런 장관은 이날 "특정 재료와 물질의 제조 환경에서 지배적 힘을 확보하려는 중국이 불합리한 시장 질서를 도입하고 있다"며 "공급망에서 특정 세력·국가에 지배적 권한이 넘어가는 것을 예방해야 한다"고 노골적으로 비판했다.

프렌드 쇼어링의 첫 아이템이 반도체다. 지난 5월 바이든과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의 만남이 이를 상징한다. 미국은 중국의 '반도체 굴기' 견제를 위해 올해 3월 한국·일본·대만에 제안했다. 4개국의 반도체 동맹이라는 점에서 칩4로 부른다. 우리 정부엔 "8월 말까지 칩4 동맹 참여 여부를 확정해 알려달라"고 시한을 제시한 상태다. 우리 정부는 "여러 회의체를 통해 (칩4 동맹에 대한) 입장을 정리하는 과정에 있다"고만 밝히고 있다.

옐런 장관은 우리나라의 배터리 본산 LG화학을 찾았다. 다음 프렌드 쇼어링 아이템이 배터리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예고했다. 이 역시 중국과 치열한 경쟁 관계에 있다. 옐런 장관의 발언이 알려지자 중국도 당일 정례브리핑에서 거세게 반발했다. 자오리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미국은 자유무역 원칙을 표방하면서 국가 역량을 남용해 과학기술과 경제무역 문제를 정치화, 도구화, 무기화하고 협박 외교를 일삼고 있다"고 날 선 반응을 보였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칩4 동맹은 결국 중국을 굉장히 압박할 가능성이 크고, 국내 기업뿐 아니라 우리 경제 전체에 그 영향이 돌아올 것"이라고 걱정했다. 사드 악몽을 떠올리는 분위기라고 관계자들은 전한다. 대중 수출을 고려해 칩4에 가입하지 않으면 미국과 일본으로부터 반도체 장비를 공급받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우리로선 진퇴양난이다.

삼성은 낸드의 40%, SK하이닉스는 D램의 42% 정도를 중국에서 생산한다. 중국 내 한국 공장이 장비를 제대로 공급받지 못해 가동을 멈추면 중국도 손해다. 그러나 중국의 보복은 항상 상상을 초월했다. 특히 우리나라와 중국의 무역 역조도 이미 시작됐다. 지난 5월 우리나라의 대중 무역은 27년 9개월 만에 적자를 기록했다. 1994년 8월 이래 처음 벌어진 일이다. 대중 무역적자는 이달 20일까지 3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강달러에 따른 환율 상승분을 외환 정책으로 상쇄하는 것만도 힘겨운데, 무역적자마저 커져 경상수지 악화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면 환율은 이제 외환시장의 문제가 아닌 나라 경제 구조의 문제가 된다. 우리 통화 및 외환 당국의 부담은 날로 커질 수밖에 없게 됐다. 환율이 오르면(원화 가치 하락) 수입 물가가 오르고 결국 우리 소비자 물가도 따라 올라갈 수밖에 없다. 미국처럼 자신 있게 금리를 올릴 처지도 아니다. 인플레이션 잡기는 더 어려워진다.


김병수 기자 bskim@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