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플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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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다음 컴퓨터는 컴퓨터가 아니다.”

터치형 태블릿 PC 이용자가 늘어남에 따라 미국의 IT기업 ‘애플’이 내세운 광고 카피다.

그렇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고 우리의 고정관념은 더 이상 옳지않다. 이제 휴대폰은 전화만 받는 용도가 아니며 예전에는 한 대씩 꼭 있던 집전화가 사라져가고 있고, 자기 지역번호도 모르는 사람들이 태반이다. 그리고 마을에 한 대씩 있는 ‘부의 상징’이던 TV는 아예 없는 집이 많아져 설 곳을 잃어가고 있다.

미디어도 마찬가지다. 스포츠를 보고 싶으면 직관을 하거나 TV를 통해 중계방송을 봐야했고 드라마를 보고 싶으면 TV를 틀어야했다. 하지만 OTT(Over-the-top, 영화, TV 방영 프로그램 등의 미디어 콘텐츠를 인터넷을 통해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서비스)의 발전으로 더 이상 TV로 송출되지 않는 미디어 콘텐츠가 많아지고 있다.

지난 13일과 16일 열린 토트넘 훗스퍼의 방한 경기는 한국 스포츠 역사에 변곡점이 될 수 있 는 이벤트였다. 이 경기는 TV로는 어떤 방법으로도 볼 수 없는, 오직 유료 OTT를 통해서만 생중계됐다.

연예 분야는 OTT가 장악

스포츠에서만 특이했던 중계 형태지 사실 연예 분야는 OTT와 이미 익숙하다. 드라마, 영화, 예능 프로그램이 OTT를 통해서만 공개되고 이용된지 꽤 오래됐다. 세계적으로 유행됐던 ‘오징어 게임’은 넷플릭스 독점작이었고 영화계 최고 권위인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OTT에서만 공개된 영화가 상을 받는게 익숙한 일이 됐다.

세계적 거장인 마틴 스콜세지나 봉준호 등도 넷플릭스와 협업하고 있다. 물론 스콜세지는 자신이 만든 넷플릭스 영화에 대해 “내 영화를 휴대폰으로 보지 말아달라”고 호소하긴 했다. 영화관 비율을 고려해 만든 영상미가 퇴색되기 때문.

이제 더 이상 영화나 드라마, 예능을 방송사가 제작한 TV로만 본다는 것은 연예 분야에서는 고리타분한 구시대적 얘기가 됐었다.

‘라이브’가 중요한 스포츠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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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연예 분야에는 익숙한 OTT가 스포츠에 서서히 도입되고 있다. 이미 스포츠 방송사 스포티비는 TV로는 유료 채널, 온라인으로는 유료 사이트를 통해서만 EPL, 유럽 챔피언스리그, UFC, 메이저리그 등을 중계하고 있다.

하지만 스포츠에는 이런 서비스가 익숙하지 않은 것은 스포츠는 그 어떤 콘텐츠보다 ‘실시간 생중계’, 즉 라이브가 중요하다. 각본없는 드라마이기에 스포츠가 성립하고 분노와 눈물, 감동이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실시간으로 가장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는 TV를 통한 생중계가 아닌 유료로, 그것도 TV로는 아예 볼 수 없는 플랫폼과 OTT로만 송출되는 것은 이용자가 모이지 않았을 때 오는 리스크가 너무 크다.

그렇기에 그동안 유료 채널 혹은 TV로는 볼 수 없는 방식으로 스포츠 대형 이벤트가 송출된 사례는 없었다. 하지만 이번 쿠팡 플레이의 토트넘 내한 경기는 오직 인터넷, 휴대폰 등 TV를 제외한 플랫폼으로만 생중계된 국민적 관심도가 큰 스포츠 대형 이벤트 중계였기에 의미가 크다.

스포츠 중계의 변곡점에 서다

이런 생중계 방식에 대한 우려도 크다. 일단 ‘보편적 시청권’ 침해에 대한 우려다. 방송법은 월드컵이나 올림픽과 같은 대형 스포츠 행사의 경우 전 국민의 90% 이상이 시청할 수 있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물론 토트넘 방한 경기의 경우 이에 해당하지 않았지만 실질적인 관심은 올림픽에 준할 정도로 큰 관심이었다. 유료로 가입해야만 볼 수 있는 플랫폼에서만 중계할 경우 자연스레 시청자들의 거부감과 금액에 대한 부담이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

또한 TV로 아예 중계가 되지 않는다는 것은 인터넷, 휴대폰, 태플릿 등 전자기기 사용에 익숙지 않은 연령층은 돈을 내고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상황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어차피 토트넘이 해외축구라는 카테고리 안에서 젊은 시청층만 타겟을 하고 노년층은 관심이 없을 주제이기에 크게 문제 되지 않는다고 보기도 한다.

또한 현재의 방송법은 현대 기술 발전을 고려치 않은 오래된 법으로 향후 월드컵과 올림픽 등 대형 스포츠 행사도 OTT와 유료채널이 독점하는 것을 허용해야한다는 주장을 제기하기도 한다. 콘텐츠를 사와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수익을 내는 것도 결국 시장경제의 논리라는 것.

분명한 건 더 이상 TV가 스포츠 생중계의 유일한 통로가 아니라는 점이다. TV보다는 인터넷, 인터넷보다는 휴대폰 등 스마트기기를 활용해 보는 시청층이 늘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쿠팡 플레이의 토트넘 방한과 같은 이벤트가 계속 있을 경우 앞으로 이런 방식의 생중계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다시 '당신의 다음 컴퓨터는 컴퓨터가 아니다'는 문구를 떠올려보자. 어쩌면 우리가 볼 다음 대형 스포츠 이벤트는 TV를 통한 시청이 아닐지도 모른다. 기술과 플랫폼의 변화에 따라 스포츠 중계 방식도 변하고 있다. 토트넘 방한은 그 시작을 알리는 변곡점이었는지 모른다. 


이재호 스포츠한국 기자 weeklyhk@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