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상혁. ⓒAFPBBNews = News1
우상혁. ⓒAFPBBNews = News1

우상혁(26·국군체육부대)이 실외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높이뛰기 은메달을 따내며 한국 육상 역사에 새장을 열었다.

우상혁은 지난 19일(이하 한국시간) 미국 오리건주 유진의 헤이워드 필드에서 열린 2022 실외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높이뛰기 결선에서 2m35을 뛰어넘어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동안 한국 육상은 실외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 철저한 약자였다. 입상은커녕 결선 진출도 매우 어려웠다. 불가능의 영역으로 생각됐던 실외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 한국 선수로 당당히 은메달을 거머쥔 우상혁의 쾌거, 그래서 더 값졌다.

한국의 역대 세계육상선수권 성적

한국 선수 중 실외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 메달을 획득한 선수는 경보의 김현섭이 유일하다.

김현섭은 2011년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남자 20㎞ 경보 결선에서 1시간21분17초로 6위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그러나 도핑 재검사에서 금지약물 성분이 검출된 선수가 발견됐고 김현섭은 3위까지 올라섰다.

세계육상연맹은 2019년 10월 1일 뒤늦게 김현섭에게 동메달을 전달했다. 이것이 한국의 첫 번째 세계육상선수권 메달이었다.

높이뛰기에선 이진택이 실외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 족적을 남겼다. 이진택은 1997년 아테네 실외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 2m28을 넘어 예선을 통과한 뒤 결선에서 2m29로 8위를 기록했다. 1999년 세비야 실외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 2m29로 예선을 통과한 뒤 결선에서도 2m29를 넘어 6위에 등극했다.

그러나 이진택 이후 아무도 실외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높이뛰기에서 결선 진출에 성공한 사람은 없었다. 우상혁이 나타나기 전까지 높이뛰기 종목은 ‘한국인이 세계적인 스타로 발돋움할 수 없는’, 불가능에 가까운 영역이었다.

우상혁의 등장

우상혁. ⓒAFPBBNews = News1

우상혁은 2013년 IAAF 세계청소년육상선수권대회 남자 높이뛰기 금메달을 따내며 혜성같이 등장했다. 2014년엔 세계주니어육상경기선수권대회 남자 높이뛰기 동메달을 획득해 2013년에 활약이 우연이 아니었음을 증명했다. 이러한 활약을 바탕으로 2014 아시안게임 대표팀에 발탁되기도 했다.

성인 무대로 옮긴 우상혁은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 출전했다. 2m26의 기록으로 결선에 진출하지는 못했지만 우상혁의 가능성을 확인한 무대였다, 이후 2017년 2m30, 개인 최고 기록을 세운 우상혁은 2018 아시안게임에서 은메달을 따내 이름을 알렸다.

그러나 우상혁은 이후 슬럼프에 빠졌다. 기록이 더 이상 향상되지 않았고 2019 런던 세계선수권에서는 출전도 하지 못했다. 2020년 개최 예정이던 도쿄올림픽은 1년 뒤로 미뤄졌고 우상혁은 2021년 3월 군에 입대했다. 사람들의 기억에서 우상혁이 잊히고 있던 때였다.

하지만 우상혁은 거짓말 같은 반전을 써 내려갔다. 2021년 6월 29일 2m31을 기록하며 자신의 기록을 넘어서더니, 도쿄올림픽에 나서 결선 진출, 그리고 한국신기록 2m35를 넘으며 4위를 기록했다. 올림픽에서 한국 육상 트랙-필드 최고 성적이었다.

발동이 걸린 우상혁은 지난 2월 6일 체코 후스토페체 실내대회에서 2m36을 넘어 한국 기록을 또다시 경신했다. 이어 지난 3월 20일 세르비아 베오그라드에서 펼쳐진 2022 실내 세계육상선수권에서는 2m34를 기록해 한국 육상에 메이저 대회 첫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제 남은 것은 실외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무대였다. 

실외 세계육상선수권에서 2번째로 높이 날다

우상혁. ⓒAFPBBNews = News1

우상혁은 지난 16일 펼쳐진 높이뛰기 예선에서 2m17과 2m21을 가볍게 넘으며 쾌조의 컨디션을 자랑했다.

우상혁은 이후 가장 먼저 2m25를 넘었고 이어 2m28을 여유있게 성공시키며 클린시트(1차시기에 모두 통과)로 결선 무대에 올랐다.

우상혁은 결선 무대에서도 클린시트 행진을 이어갔다. 2m19부터 2m24, 2m27, 2m30까지 모두 1차시기만에 넘어 강력한 우승후보로 떠올랐다.

그러나 우상혁에게도 곧 고비가 찾아왔다. 2m33, 1차시기와 2차시기에서 연달아 실패했다. 반면 경쟁자 프로첸코와 바심은 1차시기에서, 탐베리는 2차시기에서 통과하며 우상혁을 압박했다.

하지만 우상혁은 쉽게 쓰러지지 않았다.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박수로 관중의 호응을 유도하더니 3차시기에서 2m33을 넘으며 선두 경쟁을 이어갔다.

우상혁은 2m35을 1차시기에 실패했지만 2차시기에 통과하며 포효했다. 2m35를 넘은 선수는 우상혁과 바심뿐이었다. 이미 은메달을 확보한 것이다. 

우상혁은 2m37과 2m39에 도전했지만 실패했다. 반면 경쟁자 바심은 2m37을 넘었고 우상혁의 금메달 도전은 마무리됐다.

그러나 우상혁은 올 시즌 가장 중요한 대회였던 유진 실외 세계선수권대회에서도 2m35를 기록하며 한국 육상 역사상 처음으로 실외 세계선수권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제 명실상부한 세계 정상급 선수로 올라선 셈이다.한국인 최초의 길을 걸으며 세계 정상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우상혁. 2024 파리올림픽에서는 금메달을 목에 걸고 환하게 웃는 그의 모습을 기대해본다. 


이정철 스포츠한국 기자 weeklyhk@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