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공사 중단이 계속되고 있는 서울 강동구 둔춘 주공아파트 재건축 현장. (사진=연합뉴스 제공)
 지난 8일 공사 중단이 계속되고 있는 서울 강동구 둔춘 주공아파트 재건축 현장. (사진=연합뉴스 제공)

공사비 증액에 반대해 건설사를 상대로 분쟁을 일으킨 둔촌주공 조합이 자금 압박에 못 이겨 결국 백기를 들었다. 시공을 맡은 건설사들(현대건설·HDC현대산업개발·대우건설·롯데건설)은 3개월째 공사를 중단하고 버티고 있다. 사업비를 빌려준 대주단은 수천억원의 대출금을 당장 다음 달까지 갚으라고 통보했다. 결국 조합장이 책임지고 물러나면서 평행선을 그리던 조합과 건설사 간의 대립 양상은 조합이 한발 물러선 모양새가 됐다. 

조합장 사퇴로 새 국면 맞은 둔촌주공 

둔촌주공 재건축 정비사업(이하 둔촌주공)은 서울 강동구 둔촌1동 170-1번지 일대에 위치한 둔촌주공아파트를 헐고 ‘올림픽 파크 포레온’을 신축하는 사업이다. 재건축을 통해 지상 5~10층, 164개동, 5930가구에서 지상 최고 35층, 85개 동, 1만2032가구로 탈바꿈하게 된다. 단일 아파트 기준 국내 최대 규모다. 해당 사업을 통해 일반분양으로 4786가구를 추가 공급하고 1046가구를 임대해 상당량의 주택 물량이 서울에 풀릴 예정이었다. 

하지만 공사비 증액 등을 둘러싼 갈등으로 지난 4월15일부터 공사가 중단되면서 공정률은 52%에 머물러 있다. 조합은 지난 2020년 체결한 공사비를 2조6000억원에서 3조2000억원으로 증액하는 내용의 계약이 무효라고 주장하며 건설사와 대립했다. 

이후 3개월째 공사 중단된 둔촌주공. 사태는 그동안 건설사와 대립해온 김현철 조합장이 사퇴하면서 변화가 시작됐다. 지난 17일 김 조합장은 조합원들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에서 자진 사퇴 의사를 밝혔다. 조합 집행부는 이튿날인 18일 긴급 이사회를 열고 직무대행 체제에 돌입한 후 박석규 재무이사를 조합장 직무대행으로 선임했다. 현재 조합 내부에서는 현 집행부 임원들을 해임하려는 움직임도 전개되고 있어 추가적인 변화 조짐도 보인다. 

건설사와 협력해 공사를 조속히 마치고 싶은 조합원들이 ‘둔촌주공 조합 정상화 위원회’를 구성하고 집행부에 반대 목소리를 내왔다. 조합이 사업비로 빌린 7000억원 대출의 만기가 당장 오는 8월로 임박하면서 납기를 놓칠 경우 자칫 사업 부지와 건물 등 조합 재산이 압류될 수 있다는 위기에 처했고, 반대 여론은 더 커졌다. 

해당 사업비는 보증을 선 건설사가 대신 갚고 조합에 구상권을 청구하는 상황이었는데 조합과 건설사가 갈등하면서 이런 계획이 틀어질 위기에 놓였다는 게 문제였다. 조합 집행부는 상환 책임이 건설사에 있다는 논리를 펴면서 맞섰지만 내부 반발을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김 조합장이 조합원들에게 새로운 대주단에 8000억원을 대출받겠다고 밝혔지만 이조차 지지를 얻지 못했다. 

‘사업비 상환’ ‘상가 분쟁’ 사업 정상화 암초 산적 

김 조합장이 물러난 가운데 극한 대치 상태인 조합과 건설사들의 향후 교섭 향방이 관심을 끈다. 일단 조합이 당초 내세웠던 ▲사업비 새 대출안 마련 ▲시공사 교체 등 방안을 백지화한 것은 한발 물러선 것으로 보인다. 대행체제의 조합이 면담을 요청하기도 했지만 건설사측이 특별한 용건이 없다며 거부해 공사 재개 여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결국 협상의 주도권이 건설사 측으로 넘어간 가운데 사업 재개를 위해 조합이 풀어야 할 문제는 산더미처럼 남아있다. 당장 시급한 문제인 사업비는 건설사가 원래 약속대로 대신 갚아주기로 했지만 향후 구상권을 청구하는 과정에서 언제, 어떤 식으로 비용을 회수할지 알려진 바 없다. 건설사에 빚을 못 갚을 경우에도 사업부지와 건물 등은 경매로 넘어갈 수 있다.

상가와의 분쟁도 발목을 잡고 있다. 둔촌주공 내부의 상가 개발을 놓고 분쟁 중인데, 건설사들은 공사재개의 조건으로 해당 분쟁에서 합의를 끌어내고 이를 총회 의결까지 거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상가 건물관리업체(PM)인 리츠인홀딩스는 당초 상가대표기구 지위에 있었는데 지난해 12월 조합이 이를 무효로 돌리고 관련 계약을 해지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리츠인홀딩스는 이에 반발해 상가 건물 2개에 대한 유치권 행사에 들어간 상태다.

사업 위태롭자 급매물 쏟아져

그러나 이런 문제에 앞서 조합 내부의 리더십이 무너진 점도 사업 추진을 발목 잡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현재 조합 내부에서는 둔촌주공 조합 6월 월별자금 입·출금 세부내역 자료가 공개된 후 건설사와의 갈등 중재에 실패하고 불명예 퇴진한 조합장을 비롯한 집행부 임원들이 고액의 급여를 가져간 사실이 알려지면서 내홍이 되고 있다. 이들 임금, 상여금, 복리후생비 등 명목으로 많게는 1000만원, 적게는 수백만원을 가져갔다.

조합원들이 매물을 넘기고 사업에서 이탈하려는 움직임도 엿보인다. 부동산 빅데이터 업체 아실에 따르면 이달 들어 시장에 나온 둔촌주공 입주권 매물은 ▲저층 1단지 37건 ▲저층 2단지 25건 ▲고층 3단지 28건 ▲고층 4단지 37건 등 120건이 넘는다. 

조합장 사퇴 이후에는 ‘12월 잔금·이주비 승계’ 등의 조건을 걸고 매매가격을 수억원 낮춘 급매물이 나오고 있다. 이주비 승계 조건이 포함된 매물은 해당 금액만큼 은행에서 대출받을 수 있어 초기 투자금액은 수억원 더 낮아지는 효과가 있다. 중개업계에 따르면 전용면적 84㎡로 신축 배정된 물건은 이달 초 20억5000만원에 매매 등록됐는데 지난 18일에는 18억원으로 호가가 내려갔다. 같은 기간 신축 전용 95㎡ 배정 물건은 27억원에서 23억원으로 호가가 낮아졌다. 


이재형 기자 silentrock@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