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여 슬럼프 딛고 LPBA 새여왕 등극

프로당구 선수 김민아가 스포츠한국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혜영 기자
프로당구 선수 김민아가 스포츠한국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혜영 기자

아마추어 최강자로 군림하다 프로로 전향한 후 LPBA에서 모든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선수가 있다. 2020년 8월 전격 프로행을 선언한 김민아(32·NH농협카드) 선수 이야기다. 아마추어 시절부터 국내 정상권 실력을 발휘한 김민아는 프로 데뷔 때만해도 우승후보 1순위로 점쳐졌다. 하지만 LPBA 투어의 우승은 결코 쉽지 않았다. 프로와 아마의 격차를 느낀 것일까.  2년간 그의 최고 성적은 준결승 진출만 두 차례였을 뿐 우승과는 인연이 없었다. 하지만 김민아는 ‘2022~23 시즌’ 2차전인 지난 7월 '하나카드 PBA-LPBA 챔피언십'에서 13전14기만에 우승을 거머쥐며 압박에서 벗어났다. 감격의 첫 우승을 달성한 김민아를 서울 강남구 브라보캐롬클럽 PBA스퀘어점에서 만났다.

주변 기대감으로 압박감 시달려 부진

김민아는 아마추어 시절 자주 결승전에 진출했다. 우승 경험도 많다. 그래서 그가 프로리그에 진출하면 선수층이 상대적으로 약한 LPBA에서 ‘돌풍’을 일으킬 것이라는 기대감이 컸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김민아는 성적에 대한 압박감에 시달려야 했다. 그렇게 2년이 지나면서 ‘아마추어 최강자’ 타이틀 역시 서서히 잊혀지기 시작했다.

“프로로 전향하고 2년이란 시간이 흐르면서 우승을 못하다 보니 부모님 역시 ‘이제 힘들 수도 있겠구나’라고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이번에 우승을 하니 저보다 더 기뻐하시고 좋아하셨습니다. 사실 제가 처음 프로로 전향했을 때 많은 분들이 좋은 성적을 거둘 거라는 막연한 기대를 하셨어요. 한 번에 제가 스포트라이트를 받다 보니까 저도 모르게 부담이 되고 잘해야 된다는 막연한 압박을 이기지 못해서 그동안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에 대한 기대감은 김민아가 8강에 진출했을 때 엿볼 수 있다. 프로 전향 후 두번째 대회만에 8강 진출에 성공한 김민아였지만 대중들의 기대감은 김민아의 8강 진출이 아닌 결승전 무대였다.

주변의 기대감을 피부로 느낀 김민아는 감당하기 힘든 압박감에 더욱 시달렸다. 그래서3차 대회에서는 예선에서 탈락하는 부진을 겪었다. 자신도 모르게 주변의 기대감을 의식하는 부담감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는 슬럼프를 겪고 있던 것이었다. 

김민아는 성적이 나오지 않자 아마 시절과 다른 경기방식과 환경을 탓하며 외부에서 원인을 찾으려 한 것도 사실이다. 2021년 개막전에서 4강 진출에 성공한 그녀는 프로에 완벽하게 적응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섣부른 판단이었다. 그 이후 대회에서 생각한 만큼 성적이 오르지 않았다. 생소한 서바이벌 예선전에 적응하는 과정이 어려웠다고 여겼다. 대내외적으로도 그런 점을 강조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하면 스스로 문제가 컸다는 점을 나중에 깨달았다.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다는 조바심이 스스로를 위축시켰던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는 서바이벌 예선에서 1등으로 앞서 나가도 점수차가 좁혀지면 불안감에 휩쓸리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들의 기대감이 점차 줄어들자 김민아는 오히려 압박감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이번 시즌 시작하기 전 어차피 지금 우승해도 늦었고 1년이나 2년 뒤에 해도 늦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생각을 하니까 ‘왜 내가 그렇게 조바심을 내지’라는 생각이 들면 마음이 갑자기 편해지더라고요. ‘왜 내가 그렇게 조바심을 내지’라는 생각이 들면서 마음도 편해졌고, 당구 훈련 역시 연습에 치중하기보단 심리적인 거에 조금 더 치중을 하며 관리했던 것 같아요.”

심리적인 안정을 되찾자 김민아의 실력도 제자리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스포츠 심리학 등 관련 서적도 찾아 읽으면서 긍정적 사고로 무장했다. 그 결실이 이번 우승으로 연결됐다.

“결승에 올라갔을 때 제가 스롱 피아비(블루원엔젤스) 선수한테 1대3으로 지고 있었는데, 욕심을 부렸던 개막전을 생각하면서 좋은 생각, 긍정적 생각만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지고 있는데 지고 있다는 기분이 들지 않았어요. 그 심리 상태가 역전의 발판이 됐고 결국 우승까지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된 것 같아요. 역시 중요한 것은 스스로의 ‘마인드 컨트롤’이었습니다.”

아버지 속여가며 선수 생활
결국 아버지도 응원해줘 큰 힘

프로당구 선수 김민아가 스포츠한국과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혜영 기자

김민아는 대학교 1학년 때 당구 동아리에 가입하면서 당구와 첫 인연을 맺었다. 대학 동아리에서 그의 진로를 바꾼 인물을 만났다. 

 “교내 당구장이 있었는데 당시 사장님이 선수 출신이신 김창호 선배님이었어요. 당구를 그분한테 처음 배웠는데 너무 재밌는 거예요. 2학년 땐 제가 동아리 회장도 할 정도로 열심히 당구를 치니까 사장님이 대구당구연맹 경기가 있던 날 저를 구경시켜줄 겸 데려갔습니다. 단순히 구경하러 가는 줄 알았는데 제 인적사항을 물어보시더니 덜컥 저를 선수로 등록시켜서 그때부터 선수생활을 하게 됐죠.”

대부분의 선수들은 당구 동호인 활동을 하면서 아마추어 대회에서 성적을 내 선수 생활로 이어진 경우가 많았다. 이와 달리 김민아는 학교에서 취미로 당구를 즐기다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선수가 된 경우다. 실제로 그는 동호인 대회에 출전해본 경험이 없다.

선수 등록을 하고 1년 뒤 김민아는 전국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당시 대학교 4학년 시절이었다. 막상 우승을 하자 자신감이 생긴 그는 취업 대신 당구 선수의 삶을 선택하겠다고 어머니를 설득했다. 2년만 해보고 여의치 않으면 그때 취업하겠다는 전제를 달기도 했다.

하지만 김민아의 고민거리는 따로 존재했다. 워낙 보수적 성격인 그의 아버지의 반대에 부딪친 것이다

“당구 선수가 되겠다고 하자 아버지가 당구 이야기는 꺼내지도 말라면서 완강히 반대하셨죠. 그래도 어머니를 비롯해 가족들은 제가 하고 싶은 걸 반대하지 않아서 가족들이 합심해 아버지를 속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서울의 작은 회사에 제가 직장 생활을 한다고 가족 전체가 거짓말을 한 거죠.”

김민아의 거짓말은 결국 들통이 났다. 5년 전 아르바이트 플랫폼 회사인 알바몬이 주최한 여자프리미어당구리그(WPBL) 생방송 경기에 나온 장면을 아버지가 목격한 것이다. 아버지로부터 연락을 받은 그는 거짓말을 한 원죄 때문에 이실직고를 하면서도 불호령이 어떻게 떨어질지 불안했다. 하지만 의외의 반전이 일어났다.

2022 하나카드 PBA-LPBA 챔피언십 우승, 스롱 피아비 선수와 함께, 어릴 적 김민아 선수와 아버지, 21-22시즌 팀 리그 모습. 사진=선수제공

“진짜 처음엔 혼날까 봐 조마조마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첫마디는 ‘미안하다’였어요. 제가 그동안 시합에 나가면서 본인을 속이고 있다는 죄책감에 얼마나 마음이 불편했을지 생각하면 너무 미안하다는 말씀을 하신 거죠. 이제부터 응원을 할 테니 열심히 하라고 격려해 주시는 바람에 큰 힘이 되는 계기가 됐죠.” 

프로 무대로 옮긴 후 NH농협카드 팀원이 된 김민아는 올해 팀리그 성적 또한 기대하고 있는 모습이다. 특히 그동안 다른 팀과 달리 우승자가 한 명도 없었던 NH농협카드는 시즌 2번째 경기에서 벌써 2명의 우승자가 나오는 기염을 토했다. 그 기세를 모아 팀리그 성적도 올리고 싶은 마음이 크다.

“김보미 선수가 저희 팀에 들어왔는데 우리 팀이 가장 약할 것 같다고 말한 적이 있어요. 다른 팀들은 팀원들 중 남자나 여자 선수 중 우승자가 있는데 저희 팀은 한 명도 없었거든요. 하지만 올해 개막전에서 조재호 선수가 우승을 했고, 2번째 대회에선 제가 우승을 하면서 우리 팀은 이제 2명의 우승자가 있는 강팀이 됐기 때문에 우승 후보 아닐까요?” 

김민아는 이번 ‘2022 하나카드 PBA-LPBA 챔피언십’ 무대에서 최강자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 피아비를 상대로 역전승을 거두며 우승을 차지했다. 김민아는 LPBA 최단 기간 최다 우승(4회)에 도전한 피아비를 이기면서 그동안의 우승에 대한 부담감도 털어냈다.

김민아와 피아비는 라이벌이기 전에 동갑내기 친구로 친한 사이다. 피아비는 김민아가 부진을 겪는 동안 우승을 먼저 경험하는 등 강자로 자리매김을 한 상태다. 그래서 그에게 친구이자 라이벌인 피아비는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었다.

“피아비 선수와 저는 진짜 친한 친구에요. 라이벌이라고 칭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피아비를 결승에서 꼭 만나고 싶었거든요. 지난해부터 피아비를 결승에서 이기고 우승하는 시나리오를 혼자 상상했는데 이번 대회에서 그 시나리오가 펼쳐졌어요. 거기다 역전우승까지 했으니 완벽한 드라마죠.”

“우승자 2명, 이제는 팀리그 우승이 목표"

프로당구 선수 김민아가 스트로크 시범을 보이고 있다. ⓒ이혜영 기자

김민아는 당구가 자신에겐 ‘운명’이라고 말한다. 부모님이 운영하는 중국집의 전화번호 뒷자리는 우연하게도 ‘3949’였다. 어머니가 소개해준 첫 아르바이트 역시 당구장이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쓰던 저희 집 전화번호 뒷자리가 3949였어요. 저야 어릴 때부터 쓴 전화번호이니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당구장 아르바이트를 하러 갔다가 대뜸 사장님이 ‘너 어디 당구장에서 왔어’라며 뭐라고 하시는 거예요. 처음엔 무슨 말인가 했는데 당시 당구장들이 전화번호 뒷번호를 그 번호로 사용했거든요. 그래서 제가 당구장에서 온 스파이라고 생각하신 거였죠. 아무리 봐도 저는 당구를 칠 운명이었나 봅니다.”

김민아는 선수 생활을 이끌어준 여러 명의 스승에 대한 고마움이 크다. 당구의 기본을 세워주고 선수로 이끌어준 김창호를 비롯해 정현철, 김동룡 선수 등이다. 현재 팀리더인 조재호 선수도 그의 새로운 스승이다.

“당구 선수가 될 수 있게 해준 김창호 선배님은 당구의 기본을 알려주신 스승이고요. 지금의 제 당구 스타일을 만들어준 분은 정현철 선배님이에요. 그리고 ‘키스’를 피하는 방법이나 공이 유용성 있게 돌아다니는 방법을 알려준 분은 김동룡 선배님입니다.” 

프로 무대로 옮긴 후 NH농협카드 팀원이 된 김민아는 같은 팀 주장인 조재호 선수에게도 배움을 이어가고 있다. 같은 팀 선수에게 배움을 이어가다 보니 복식을 비롯한 팀리그 호흡에도 큰 도움이 됐다.

흔히 당구를 멘탈 스포츠라고 부른다. 아무리 실력을 잘 갖춘 선수라도 멘탈이 흔들리면 좋은 경기력을 선보일 수 없다. 김민아 역시 자신의 가장 큰 단점으로 ‘유리 멘탈’을 꼽았다.

 “다음 정규 투어 때도 이번 경기처럼 긍정적 생각을 통한 마인드 컨트롤을 잘 하도록 노력할 생각입니다. 마인드 컨트롤이 된 상태라면 제 것을 다 보여주지 못한 경기는 없을 것이라 생각하거든요. 그래도 지면 상대방이 잘한 거니까 마음 편하게 인정해줄 생각입니다. 그래서 경기의 승패와 상관없이 모든 게임에 이 같은 마음가짐으로 임할 수 있도록 목표를 잡고 싶습니다. 그러다 보면 올해 1번은 더 우승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개인전 우승을 해봤으니 올해 진짜 팀리그 우승도 노려보고 싶습니다.”


김동찬 스포츠한국 기자 weeklyhk@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