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크하는 흥국생명 김연경. (사진=한국배구연맹 제공)
스파이크하는 흥국생명 김연경. (사진=한국배구연맹 제공)

여자배구의 부흥을 이끌어 낸 중심에는 역시나 최고의 재능을 뽐낸 월드스타 김연경(34·흥국생명)이 있었다. 그리고 그 배구 여제가 다시 국내로 돌아오면서 악재가 겹쳤던 배구계에는 다시 물이 들어왔다. 이제 튼튼한 노를 찾아 저을 준비를 해야 한다.

찬란했던 女배구 인기… 그러나

국내 4대 프로 스포츠(축구·야구·농구·배구) 중 여자배구가 손에 꼽히는 인기 종목이 됐다는 점은 이제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과거부터 꾸준히 팬 및 시청률 증가 추이에서 이미 낌새가 잡히기 시작했던 그 인기는 지난 2020년 김연경의 국내 리턴과 지난해 도쿄올림픽 호재가 연달아 겹치며 폭발했다.

지난 2020~2021시즌을 앞두고 길었던 해외 생활을 잠시 접고 ‘여제’ 김연경이 친정팀 흥국생명으로 돌아왔다. 그와 함께 여자배구를 향한 관심이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2020년 컵대회 GS칼텍스와 흥국생명의 결승전은 지상파를 통해 중계되며 시청률 3%를 찍었다. 본 시즌도 마찬가지였다.

2020~2021시즌 여자부 경기당 평균 시청률은 1.23%를 기록했는데 이는 2018~2019시즌 남자부 평균 1.078%를 넘은 역대 최고수치였다. 특히 김연경이 붕대 투혼을 발휘한 플레이오프 3차전은 V-리그 역대 최고 시청률 2.564%, 순간 시청률 3.74%를 찍는 기염을 토했다. 

이렇게 피어난 불에 기름을 들이 붓는 격인 감동적인 도쿄올림픽 4강 신화까지 찾아왔다. 국제 대회 선전은 국내 스포츠 인기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2002 한일 월드컵 4강은 말할 것도 없고 2008년 베이징올림픽 야구 전승 금메달도 그랬다. 여자배구가 순식간에 국민스포츠급의 위상을 얻은 데에는 올림픽 호성적에 8할의 지분이 있다.

여자배구의 인기는 그렇게 상수가 되는 듯 했다. 그러나 이 대회를 끝으로 김연경, 양효진, 김수지 등 국가대표팀의 주축 선수들이 대표팀 은퇴를 선언하면서 변수가 생겼다. 여기에 더해 김연경마저 흥국생명발 이재영-이다영 쌍둥이 자매 사건으로 인한 잡음과 함께 다시 중국 상하이 브라이트 유베스트로 떠나면서 V-리그를 비우고 말았다. 이미 이때부터 배구 인기 유지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실제로 뚜렷한 상승곡선이 다소 주춤했다. 지난 시즌 극강 현대건설의 독주, 눈에 띄는 상·하위권 격차 등이 시즌의 재미요소를 몇 가지 제거하고 말았고, 거기에 더해 코로나19 확산까지 겹치면서 리그가 끝을 보지 못하고 문을 닫으며 포스트시즌이 열리지도 않는 악재까지 겹쳤다. 

그리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국제무대에서의 부진까지 꼬리를 물었다. 세대교체에 접어든 대표팀이라는 점을 감안해도 성적이 처참했다. 지난 2022 발리볼네이션스리그(VNL)에서는 예선 12경기 전패, 최하위(16위)라는 대굴욕을 겪었다. 이 기간 따낸 세트는 3개에 불과했다. 이대로라면 다가올 세계랭킹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영향을 끼칠 2024 파리올림픽 출전 여부도 불투명하다.

위기의 순간에 다시 등장한 ‘배구여제’ 김연경의 이름 석 자

그늘이 드리워지는 여자배구계였다. 그런데 이 그늘을 일순 날려버리는 쨍쨍한 햇빛이 찾아왔다. 바로 김연경의 국내 무대 복귀 소식.  상하이에서의 1년을 성공리에 마친 김연경의 향후 거취를 둘러싸고 숱한 예측들이 있었지만, 그는 결국 지난 6월 흥국생명과 1년 총액 7억원에 도장을 찍으며 화려한 귀환을 알렸다.

그 파급력은 대단했다. 지난 7월 8~10일 열렸던 2022 여자프로배구 홍천 서머매치가 그 징조였다. 당시 흥국생명이 서머매치에 참여하는 것은 물론 김연경의 복귀 기자회견까지 예고되면서 엄청난 팬들과 미디어가 강원도 홍천을 찾았다. 최대 1300명까지 수용 가능한 홍천체육관은 흥국생명의 경기가 열린 날 김연경이 뛰지 않았음에도 총 964명의 관중이 자리를 지키기도 했다.

그리고 지난 13일부터 20일까지 전남 순천 팔마체육관에서 성황리에 마무리 된 2022 순천·도드람컵 프로배구대회(KOVO컵) 여자부에서 그 열기가 더욱 거세졌다. 지난 13일 흥국생명과 IBK기업은행이 펼친 개막전은 인터넷 예매분 3300장의 티켓이 약 20분 만에 동났다. 이어 현장 판매분 200장의 티켓도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다. 뜨거운 열기에 KOVO는 경기장 만원 관중을 넘겨 입석 295장까지 추가 판매해야만 했을 정도다.

17일 열린 예선 A조 마지막 경기 흥국생명-GS칼텍스전(3-2 GS칼텍스 승리)도 마찬가지였다. 온라인 예매분이 당연히 매진된 가운데 현장 판매분과 당일 취소표를 얻기 위한 팬들이 일찍부터 팔마체육관 앞에 모여들며 장사진을 이루기도 했다. 그렇게 경기장을 가득 메운 팬들의 함성은 우렁찼다.

3년 전 같은 장소인 순천에서 열렸던 당시 KOVO컵 대회와 비교해보면 이 열기를 더욱 체감할 수 있다. 당시 예선 12경기 중 관중 1000명을 넘긴 경기는 3개에 불과했다. 예선 최다관중(1979명) 또한 2000명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흥국생명 경기 매진은 물론 흥국생명이 나오지 않는 다른 평일 경기에도 대부분 1000명이 넘는 관중이 들어오며 여자배구 전체의 인기를 급상승시켰다.

시동도 걸었고 기름도 충분… 이젠 가속 페달을 힘껏 밟을 때

이 정도 관중동원력과 화제성을 갖춘 희대의 배구 스타가 바로 김연경인 것이다. 김연경이라는 이름의 급류가 찾아오면서 여자배구는 속도를 더욱 낼 수 있는 환경이 갖춰졌다. 이제 노만 저으면 된다. 

높아진 관심도 속에서 여자 배구 인프라, 유소년 시스템들을 바로 잡으면서 지속가능한 인기를 위한 발판을 마련해야 할 것이고 국제대회 경쟁력에 대한 심도있는 고민의 시간도 필요하다. 하다못해 대승적인 차원에서 김연경의 대표팀 복귀 혹은 플레잉 코치로의 합류도 하나의 방편으로 떠올려 볼 수 있다.

무슨 방안을 시도하든 시동이 걸린 차를 공회전 상태로 두는 것보다는 낫다. 김연경과 함께할 2022~2023시즌의 여자배구는 어떤 모습일까, 그리고 어떤 결말을 맞이할까. 배구여제의 발걸음에 모두가 촉각을 곤두세우게 됐다.


허행운 스포츠한국 기자 lucky@sportshankoo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