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내 한 주택단지의 반지하 주택. (사진=연합뉴스 제공)
서울 시내 한 주택단지의 반지하 주택. (사진=연합뉴스 제공)

100년 만의 기록적인 폭우로 인해 발생한 반지하 주택의 참사는 그동안 잊고 있던 비정상 주거 문제를 표면 위로 끄집어냈다. 2020년 기준으로 전국의 지하·반지하 거주 가구는 32만 7320가구이다. 서울에 20만 1000가구, 경기도에 8만 9000가구 등 수도권에 31만 4000가구가 몰려 있다. 수도권의 높은 주거비와 관련이 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반지하는 원래 거주공간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유사시 방공호 또는 대피소로 사용하기 위해 정부가 1970년 건축법을 개정, 신축 단독주택과 다세대주택에 지하실을 의무적으로 만들도록 하면서 시작됐다. 

1960년대 경제 개발이 본격화되고, 이에 따라 수도권에 인구가 몰리면서 주택난이 심화된다. 지하에 세 들어 사는 사람이 늘어나자 정부는 1975년 건축법을 개정해 지하 거주를 양성화한다. 

1984년에는 다시 건축법을 개정해 거주공간으로서 지하의 활용을 촉진한다. 기존에는 바닥에서 천장까지 높이 중 3분의 2 이상이 지하에 있어야 했지만, 절반만 들어가 있으면 지하로 인정해준 것이다. 

반지하가 열악한 주거공간임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문제가 부각되는 것은 항상 폭우에 따른 침수 피해가 나타날 때였다. 2001년과 2010년 집중호우로 인한 침수 피해가 반지하 주택에 집중되자 그때마다 서울시는 ‘반지하에 사람이 살 수 없도록 하겠다’며 정책을 발표했으나 효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건축법 11조에 ‘상습 침수지역 또는 침수 우려지역 건축물 지하에 주거용 공간이나 거실을 설치하는 것을 건축위원회 심의로 불허할 수 있다’는 근거 규정을 마련했지만 그 후로도 서울시에 4만가구의 반지하 주택이 신규 공급됐다.

싼 월세 주택을 찾는 저소득층 수요가 계속되는데다 소규모 건축물의 건축 인허가는 자치구 소관이기 때문이었다. 이에 따라 이번에 서울시는 정부와의 협의 하에 주택법을 개정해 아예 반지하 주택 건축을 불법화하겠다고 발표했다. 

서울시가 내놓은 대책은 다양하다. 우선 2042년까지 재건축 연한 30년이 도래하는 노후 공공임대주택 11만 8000호를 재건축하면서 용적률을 상향조정해 23만호 이상을 공급하겠다고 발표했다. 장기 대책이기는 하지만 공공임대주택수가 11만호 정도 늘어나는 셈이다.

침수 이력이 있는 반지하 주택 밀집 지역을 공공재개발 등 정비사업 대상 지역으로 우선 선정하고, 반지하 가구가 지상층으로 옮길 때 월 20만원씩 최장 2년간 지원한다. 서울주택도시공사(SH)는 반지하 주택을 매입해 주민 공동 창고나 지역 커뮤니티시설 등으로 용도를 바꿔 나갈 예정이다. 10~20년에 걸쳐 지하·반지하 주택을 없애 나가는 ‘지하·반지하 주택 일몰제’도 추진한다. 

이러한 대책이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 반지하 가구를 공공임대주택으로 수용한다는 방향성은 옳다. 그러나 서울에는 그들을 받아들일 공공임대주택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서울시는 공공임대주택의 재건축을 통해 공급량을 늘리겠다고 하지만 매우 오랜 시간이 걸릴 뿐만 아니라 뜻대로 될지도 미지수다. 

2010~2020년 서울의 공공 임대주택 증가분은 19만 1136가구로, 연평균 2만가구를 넘지 않는다. 더구나 상당수는 분양전환형으로 시간이 지나면 임대주택에서 사라지는 물량이다.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하는 영구임대주택은 매우 제한적인 것이다. 

그런데도 서울시는 30년에 근접한 서울 영구·공공 임대아파트 34개 단지를 타워팰리스 부럽지 않은 초고층 아파트로 짓겠다는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정책들이 서로 모순되지 않는 것인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설령 공공임대주택이 원활하게 마련된다고 하더라도 취약계층이 이들 주택에 거주할 수 있을지도 확실치 않다. 국토연구원에 따르면 수도권 지하주거 임차가구의 평균소득은 182만원으로 아파트 임차가구 평균소득 351만원의 절반에 그친다. 

공공임대아파트의 보증금이나 월세 수준이 이들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낮아지지 않는 한 서울시의 계획은 실현되기 어려울 것이다. 2년간 20만원의 보조금을 지원한다고 하더라도 이는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이미 서울시는 ‘주거 취약계층 주거상향 지원’ 사업을 추진하고 있으나 지난해 서울에서 이를 통해 공공임대주택에 입주한 가구는 1669가구에 불과하며, 이 중 반지하 가구는 247가구에 그친다. 이러한 상황에서 강제로 반지하 가구를 줄인다면 이들을 옥탑방, 쪽방, 고시원, 비닐하우스 등 보다 열악한 주거지로 몰아내는 부작용을 가져올 수도 있다.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 방향은 민간 주도에 방점이 찍혀 있다. 재건축·재개발 등 정비사업 규제를 완화하고 민간이 주도하는 도심복합사업을 도입하는 것이 핵심이다. 임대주택정책도 민간 주도로 궤도를 같이한다. 

민간부지를 활용해 임대주택을 공급하는 공공지원 민간임대는 분양 비율 상한을 현행 50%에서 올리고, 기부채납 비율을 50%에서 낮추는 방식으로 인센티브를 높인다. 민간이 공공택지에서 임대주택을 공급할 때는 청년·신혼부부 등에 대한 공급 비율을 현행 20%에서 30%로 확대한다. 

소득 수준이 높은 무주택자를 위해 ‘내 집 마련 리츠’라는 민간분양 모델을 도입한다. 수분양자가 분양가의 절반을 보증금으로 내고 임대로 거주한 다음, 분양 여부나 분양전환 시기를 선택할 수 있다. 무주택 서민, 취약계층 등을 위한 양질의 공공임대주택에 대해서는 점진적으로 늘린다는 정도의 선언적인 수준으로 언급돼 있다. 

2020년 서울의 주택 보급률은 94.9%이며 수도권 평균은 98%에 이른다. 아직 충분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정부의 집중적인 수도권 주택공급 정책에 따라 100%에 이르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상당수의 주택은 다주택자가 소유하고 있다. 이들 주택은 어차피 임대용으로 시장에 나올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책의 방점이 왜 민간이 주도하는 고급 임대주택 공급에 찍히는지 의문이다. 

예를 들어 서울시가 운용하는 장기전세주택 제도의 경우 강남의 요지에 주변 시세의 절반에 가까운 가격으로 제공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세보증금이 10억원이 넘으며, 지원자격도 도시근로자 월 평균 소득의 120% 이하로 문턱이 낮다. 정부가 세금을 동원해 이들에게 혜택을 주는 것이 과연 타당한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수익성이 높은 민간임대주택은 어차피 수요에 따라 시장에서 출현할 것이다. 정부의 정책은 시장이 해결하지 못하는 취약계층의 공공임대주택 공급에 중점을 두는 것이 옳다. 과거 공공임대주택은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물량 위주로 공급하다 보니 너무 좁고 입지가 나빠 빈집이 수두룩했다. 취약계층의 사정에 맞도록 교통이 좋은 곳에 저렴한 보증금과 월세로 제공되지 않는다면 한쪽에서 남아돌고 한쪽에서 부족한 사태가 지속될 것이다. 

한정된 재원은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하는 공공임대주택의 공급에 집중적으로 사용돼야 할 것이다. 품질이 좋은 임대주택은 민간이 제공하도록 시장에 내버려두면 된다. 이러한 역할을 혼동하면 반지하 주택 문제는 폭우가 내릴 때마다 반짝 거론되는 사회문제로 오랫동안 남을 가능성이 높다. 

정인호 객원기자 프로필

▲캘리포니아 주립대 데이비스 캠퍼스 경제학 박사 ▲KT경제경영연구소 IT 정책연구 담당(상무보) ▲KT그룹 컨설팅지원실 이사 ▲건국대 경제학과 겸임교수 등을 지낸 경제 및 IT 정책 전문가


정인호 객원기자 yourinho@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