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차 의무법’ 시행 1년…적발 사례 단 한 건도 없어 실효성 의문

연일 내린 집중 호우에 침수 피해를 입은 차량들이 지난 11일 오후 경기도 과천 서울대공원 주차장에 마련된 한 손해보험사 임시 보상서비스센터에 주차돼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연일 내린 집중 호우에 침수 피해를 입은 차량들이 지난 11일 오후 경기도 과천 서울대공원 주차장에 마련된 한 손해보험사 임시 보상서비스센터에 주차돼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주간한국 송철호 기자] 115년 만에 내린 기록적 폭우로 서울·수도권 일대가 침수돼 막대한 피해가 발생하면서 이번에 집계된 침수 차량만 약 1만 1000대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는 침수차가 중고차 시장에 대거 유입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다. 

실제로 보험 미가입 차량의 경우 폐차 의무가 없다. 게다가 침수 사실을 숨긴 채 중고차 시장에서 거래될 경우 중고차 구매자가 외관상으로 구분하는 것도 쉽지 않다. 현재는 침수 이력이 있는 차량을 모르고 구매한 후 나중에 이 사실을 알게 됐더라도 구매 후 30일이 지나면 환불을 받기가 어려운 실정이라 논란이 더 확산되고 있다.

침수 이력 관리 강화 등 소비자 보호 시급

이번 집중 호우를 계기로 침수차의 이력 관리가 도마에 오르고 있다. 

손해보험협회에 따르면 지난 8일부터 17일까지 국내 보험사에 접수된 침수 차량은 총 1만 1488대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손해액만 1620억원 규모에 이르고 침수 차량 피해자가 속출하다 보니 침수차가 대거 중고차 시장으로 흘러 들어갈 우려가 커지는 상황이다.

중고차 구매를 희망하는 이씨(44)는 “침수차에 대한 철저한 이력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는지를 믿을 수 없어 중고차를 사는데 망설이게 된다”며 “침수차에 대한 이력 관리가 부실하면 일부 침수 차량 피해자가 침수 사실을 숨기고 중고차 시장에 침수차 거래를 시도할 수 있는 만큼 선의의 추가 피해자를 막기 위한 제도 개선이 시급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완전 침수 차량의 경우 자기차량손해(자차) 보험에 가입돼 전손 처리 결정을 받으면 현행 ‘자동차관리법’에 따라 반드시 폐차를 해야 한다. 폐차를 하지 않으면 300만원 이하의 과태료 처분을 받게 돼 어느 정도 안정망이 구축됐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자차 보험 등에 가입하지 않은 경우 침수차를 폐차할 의무가 없는 것이 문제다. 또한 부분 침수 정도의 피해를 입은 피해자가 보험사에 신고하지 않고 침수차를 중고차 시장에서 거래하는 경우가 허다해 실제로 얼마나 침수 차량이 투명하게 관리되는지 알기가 쉽지 않다.

자동차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한 침수차 피해자가 “내가 판매한 침수차의 침수 이력이 사라지고 무사고차로 둔갑해 중고차 거래 사이트에서 판매되는 경우를 목격했다”면서 “실제로 운전자가 자차 보험을 들지 않은 상태로 차량이 침수됐거나 나처럼 차량이 침수된 후 보험 처리를 하지 않고 미수선을 한 차량은 폐차이행확인제 대상에 속하지 않기 때문에 침수 이력이 확인되지 않은 채 중고차 시장에서 유통되는 경우가 많다”고 폭로했다.

침수차 불법 유통을 막겠다고 나선 국토교통부의 침수차 폐차 기준도 명확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22일 박상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국토부는 침수차 관리 실태 관련 질의에 “침수차 폐차 기준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답변했다. ‘폐차 의무법’이 시행되고 1년이 지났지만 구체적인 침수차 폐차에 대한 기준이 없어 차량 정비업계에 침수 진단을 맡긴다는 것이 국토부 측의 설명이다.

일단 지난해 폐차 의무법 시행 후 미폐차 침수차로 적발된 사례가 단 한 건도 없다. 국토부 보고에 따르면 지난해 4월 침수차를 폐차하도록 한 법이 시행된 후 과태료 처분 사례는 한 건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침수차가 무사고 차량으로 둔갑해 유통된다는 사례가 속출하는 상황에서 현실과 괴리감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중고차업계가 강조한 침수차 대처 방법

중고차업계도 난감하기는 마찬가지다. 침수차가 중고차 시장에 대거 유입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고조되는 것이 중고차업계 입장에서도 반가운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에 중고차업계는 적극적으로 침수차에 대처하는 방법을 발표하고 있다.

케이카에 따르면 다양한 침수차 확인법 중 가장 쉬운 방법이 ‘카히스토리’ 홈페이지에 접속해 차대번호 또는 차량번호를 입력 후 바로 확인하는 방법이다. 보험 이력 조회는 약간의 비용이 발생하지만 침수 이력 조회의 경우 무료로 제공되는 것이 특징이다. 

차량 실내 냄새로도 침수차를 확인할 수 있다. 차량 내장재들은 물을 잘 흡수하는 재질이어서 제대로 세탁과 건조를 거치지 않으면 차량 실내에 냄새가 남을 수밖에 없다. 차량 내 매트를 들어 올린 후 매트 아래 내장재에 흙먼지나 물자국 등을 점검하거나 시트 레일이 연식에 비해 부식이 많은지를 확인하는 방법도 유용한 식별법이다.

국토부 인가 중고차 대표 단체인 한국자동차매매사업조합연합회 관계자는 “침수차에 대처하기 위해 정식 매매사업자(딜러)를 통해 중고차를 구입하면 자동차관리법의 법적 효력을 갖는다”며 “개인 직거래의 경우 보상을 받을 수 없어 주의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정식 딜러에게 구입한 경우 침수 사실을 허위로 고지한 후 침수 사실이 밝혀지면 자동차관리법에 따라 100% 환불된다”며 “계약할 때 ‘침수 사실이 밝혀지면 배상한다’는 특약사항을 별도 기입해 두면 더 확실한데, 정식 딜러 여부는 연합회 홈페이지 메뉴에서 검색 가능하고 매매 현장에서 딜러의 종사원증과 신분증을 직접 확인하는 방법도 있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다양한 침수차 대처 방법이 공개되고 있지만 작정하고 속이려는 중고차업체가 있다면 소비자가 판별하기 쉽지 않다. 특히 침수차 문제는 다소 시간이 지난 후 발견될 수도 있다. 중고차 소비자가 구매한  차량의 침수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됐더라도 구매 후 30일 지나면 환불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특히 우려되는 점이다. 

이에 정치권에서도 침수 차량 중고차 구매시 환불 기간을 대폭 늘리는 내용의 관련 법안이 발의되는 등 소비자 보호 강화를 위한 제도 개선 움직임이 일고 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김병기 민주당 의원은 중고차 판매업자가 차량의 침수 사실 등을 속이고 판매한 경우 90일 동안 환불을 보장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자동차관리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한 상황이다.


송철호 기자 song@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