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승리 후 기뻐하는 세리나 윌리엄스. (사진=연합뉴스 제공)
경기 승리 후 기뻐하는 세리나 윌리엄스. (사진=연합뉴스 제공)

스포츠에서 어느 종목을 얘기할 때 ‘역대 최고’로 언급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분명 존재한다. 야구의 베이브 루스, 농구의 마이클 조던, 골프의 타이거 우즈처럼 말이다.

여자 테니스 역시 이견이 없다. 세리나 윌리엄스(41·미국)였고 우린 세리나의 시대를 관통했다. 그리고 이제 세리나의 시대가 막을 내렸다.

지난 8월 23일부터 열린 2022 US오픈에 참가한 윌리엄스는 605위까지 떨어진 랭킹에도 2회전에서 세계 랭킹 2위 아네트 콘타베이트를 누르는 저력을 선보여 많은 이들에게 기립박수를 받기도 했다. 그리고 이번 US오픈을 끝으로 선수 은퇴를 선언했다. 윌리엄스는 "은퇴가 아닌 진화"라는 말로 자신의 마지막을 설명했다.

윌리엄스가 역대 최고인 이유

고작 17세였던 1999년 US오픈 여자 단식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린 윌리엄스는 이후 메이저 대회 단식에서만 무려 23차례 우승했다. 여자 선수 역대 2위. 1위는 1960년대를 전성기로 보낸 호주의 마거릿 코트(24회)지만 프로 선수들의 메이저 대회 출전이 1968년부터 가능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훨씬 수준이 높아진 상황에서 역대 1위에 고작 1회 뒤진 우승 기록은 윌리엄스가 ‘역대 최고’라고 불리는데 부족함이 없게 한다.

또한 윌리엄스는 2012 런던 올림픽에서도 단식 금메달을 목에 걸며 남녀를 통틀어도 역대 4명뿐인 ‘커리어 골든슬래머(4대 메이저+올림픽 단식 우승)’가 됐다(남자 라파엘 나달, 안드레 아가시, 여자 슈테피 그라프). 역대 최장기간 세계랭킹 1위(186주), 최고령 세계랭킹 1위(31세) 등 온갖 여자 테니스의 기록은 모두 윌리엄스가 갖고 있다.

단순히 단식만 잘한 게 아니다. 언니인 비너스 윌리엄스(42)와 복식에서도 환상의 호흡을 보였고 2000 시드니 올림픽, 2008 베이징 올림픽, 2012 런던 올림픽까지 복식 금메달을 3개나 따냈다. 메이저 대회에서 복식으로 무려 14번이나 우승했고, 특히 2009년은 프랑스 오픈만 우승했다면 캘린더 그랜드 슬램(한해에만 4대 메이저 대회 모두 우승)을 복식에서 이룰뻔 했다.

게다가 혼합 복식으로도 메이저 대회 우승 2번을 했을 정도. 단식도 출전하면서 복식도 함께 나간다는 것은 엄청난 체력소모를 의미한다. 하지만 윌리엄스는 무려 7차례나 메이저 대회에서 단식을 우승하며 복식도 우승하는 기록을 남겼다.

대부분의 위대한 선수들은 단식에서만 뚜렷한 성과를 냈지만 복식은 물론 혼합 복식까지 테니스의 모든 조합에서마저 완벽했던 셈이다. 가히 테니스 그 자체에서 최고였다고 회상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흑인 스포츠 선수의 상징이자 논란의 중심

윌리엄스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흑인’이라는 점이다. 테니스계는 지금도 그리고 예전에도 백인의 전유물로 여겨져왔다. 하지만 윌리엄스가 1999 US 오픈에서 우승하며 흑인선수의 41년만에 우승으로 기록되며 흑인 스포츠 선수의 우상이 됐다.

2016년 US오픈 관중 중 약 25%가 흑인이었는데 윌리엄스가 출산으로 불참하자 2017년에는 전년대비 10%나 흑인관중이 줄었을 정도. 차기 세계 최고로 여겨지는 흑인인 코코 고프(18)도 “테니스 코트엔 흑인이 별로 없는데 윌리엄스가 경기를 지배하는 것을 보고,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얻었다”고 말했을 정도.

반면 2018 US오픈에서 심판에게 항의하다 징계를 받자 “남자 선수에 비해 징계가 가혹하다”고 말해 논란이 된 바 있다. 또한 10대시절 ‘200위권의 남자 선수 정도는 이길 수 있다’고 했다가 실제로 203위인 카스텐 브라쉬와 맞붙어 1-6 완패를 한 이후 말을 바꿔 빈축을 사기도 했다.

문제를 일으켰다 불리해지면 흑인, 여성 등의 ‘정치적 올바름’을 내세우는 모습도 보였기에 언론과 많은 팬들이 커리어 내내 ‘트러블 메이커’로 인식하기도 했다.

20년을 지배한 윌리엄스

1999 US 오픈 우승은 2000년대를 지배할 윌리엄스의 서막이었다. 2000년대 10번의 메이저대회 우승으로 황금의 20대를 보낸 윌리엄스는 대부분의 선수들이 운동능력이 떨어져 힘겨워하는 30대에 무려 12번의 메이저 대회 우승으로 오히려 20대의 자신을 뛰어넘었다.

윌리엄스의 위대함은 나락으로 떨어졌다가도 다시 세계 최고 자리에 선 것에서 나온다. 2006년은 윌리엄스가 1999년 첫 우승 이후 2019년까지 딱 한번 메이저 대회 준우승 이상을 해보지 못한 절망의 시즌이었다. 이유는 무릎 수술의 여파. 세계 140위권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윌리엄스는 이를 극복했고 38세의 나이까지 메이저 대회 결승에 오를 정도로 20여년을 테니스계를 군림했다. 역대 메이저 대회 우승 1위인 마가렛 코트가 26세에 첫 우승을 해 31세까지 5년간 짧게 불타올랐다면 윌리엄스는 17세부터 35세까지 20여년간 꾸준히 우승해왔다.

특히 윌리엄스가 2017년 임신 중인 상태에서 호주 오픈에서 우승하고 출산 후에도 메이저 대회 결승 무대를 4차례나 밟은 것은 가히 초인적인 모습이었다.

10대시절부터 20년간 테니스계를 완벽하게 지배한 윌리엄스. 윔블던 테니스 공식 SNS는 윌리엄스의 은퇴 직전 “‘세리나 시대’를 함께 할 수 있어 영광이었다”고 했다. 우린 그 시대를 살았고 이제 한 시대가 저물었지만 그 시대가 역대 최고였다는 것을 지금부터 더 뼈저리게 느끼게 될 것이다.


이재호 스포츠한국 기자 jay12@sportshankook.co.kr